하루에 22.6퍼센트, 1987년 블랙 먼데이
2026-09-13 · 8분 읽기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뉴욕증권거래소에 마감 종이 울렸습니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738.74. 직전 거래일에 2,246.74로 마감했던 지수가 하루 만에 508포인트를 잃은 것입니다. 비율로는 22.6퍼센트. 하루 하락률로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미국 증시 최악의 기록입니다.
숫자만으로 감이 오지 않는다면 1929년과 견줘 보면 됩니다. 대공황의 방아쇠로 기억되는 그해 10월, 최악의 하루조차 하락률은 13퍼센트 안팎이었습니다. 블랙 먼데이는 그 두 배에 가까운 일이 단 하루에 벌어진 날이었습니다. 그것도 전쟁이나 은행 파산 같은 뚜렷한 사건 하나 없이요. 미국 증시에서만 5천억 달러 안팎의 시가총액이 증발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날 거래소 바닥에 있던 사람들의 회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 나쁜 뉴스가 터져서 판 게 아니었습니다. 팔리니까 더 팔렸습니다. 그리고 그 '팔리니까 더 파는' 고리의 한가운데에는 사람이 아니라, 미리 짜 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다섯 해째 이어진 강세장, 그 밑에서 자란 균열
블랙 먼데이 전까지 미국 증시는 오랜만의 호시절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1982년에 시작된 상승장은 5년 넘게 이어졌고, 1987년 들어서만도 지수가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다우지수는 그해 8월 25일 2,722선에서 꼭대기를 찍었습니다. 기업 인수합병 소식이 연일 신문을 장식했고, 주식은 사 두기만 하면 오르는 물건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바닥에서는 균열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금리가 오르고 있었고,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둘러싼 불안이 커졌습니다. 달러 가치를 두고 주요국 사이에 잡음도 일었습니다. 여기에 의회가 기업 인수합병에 불리한 세제 개편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더해지자, 인수합병 기대로 올라 있던 종목들부터 흔들렸습니다. 하나하나는 시장을 무너뜨릴 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겹치자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블랙 먼데이 직전 주는 특히 나빴습니다. 10월 14일에 95.46포인트, 15일에 57.61포인트가 빠졌습니다. 금요일인 16일에는 108.35포인트가 떨어졌는데, 하루에만 4.6퍼센트였습니다. 한 주 동안 지수는 대략 10퍼센트를 잃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한 주였죠.
진짜 문제는 그 금요일 장이 끝난 뒤였습니다. 주말 사이 미국 재무장관이 달러 가치를 더 낮출 수 있다는 뉘앙스로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투자자들은 불안 속에 월요일 개장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한 주 내내 이어진 하락은, 시장 안에 들어 있던 어떤 자동 장치의 방아쇠를 이미 반쯤 당겨 놓은 셈이었습니다. 월요일 아침 종이 울리기도 전에 말이죠.
'보험'이라는 이름이 붙은 매도 기계
1980년대 중반 미국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 기법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포트폴리오 보험'. 이름에 보험이 붙었지만 보험회사가 판 상품은 아니었습니다. 주가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손실을 자동으로 막아 준다고 홍보된 운용 전략이었죠.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의 헤인 릴랜드와 마크 루빈스타인이 1970년대에 고안한 이론을 상품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원리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주가가 내려가면 주식에 걸린 위험을 줄이고, 주가가 오르면 다시 늘립니다. 다만 주식을 직접 파는 대신 주가지수 선물을 팔아 같은 효과를 냅니다. 선물이란 '미래의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으로 사고팔기로 지금 약속하는 계약'입니다. 지수 선물을 팔아 두면 지수가 내릴 때 이익이 나므로, 들고 있는 주식의 손실을 메울 수 있습니다.
핵심은 이 판단을 사람이 매번 내리는 게 아니라, 컴퓨터가 미리 정해 둔 규칙대로 자동으로 실행한다는 데 있었습니다.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기계가 대량 주문을 쏟아내는 이 방식을 당시에는 '프로그램 매매'라고 불렀습니다. 기관 입장에서는 밤에 발 뻗고 잘 수 있게 해 주는 기술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1987년까지 상당한 규모의 기관 자금이 이 전략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치명적인 결함은 이 전략이 모두에게 동시에 팔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투자자 한 명에게는 훌륭한 방패라도, 시장의 큰 몫이 같은 규칙을 공유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지수가 내려가는 순간 수많은 계좌에서 똑같은 '팔아라' 신호가 한꺼번에 나가기 때문입니다. 가입자 모두가 동시에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회사가 버티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였습니다.
10월 19일, 기계가 기계를 밀어냈습니다
월요일 아침, 뉴욕 시장은 시작부터 밀렸습니다. 지난주 하락으로 매도 신호가 이미 잔뜩 대기하고 있었고, 개장과 함께 주문이 쏟아졌습니다. 그다음은 연쇄 반응이었습니다.
지수가 내려가자 포트폴리오 보험 프로그램들이 지수 선물을 팔았습니다. 선물 가격이 떨어지자 현물 주식도 함께 밀렸습니다. 현물이 밀리자 다시 더 많은 매도 신호가 나갔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자료는 이 과정을 '초기 하락이 악순환을 시작시키는' 구조로 설명합니다.
거래소의 물리적 한계도 함께 무너졌습니다. 당시 뉴욕증권거래소에는 종목별로 매수와 매도를 짝지어 주는 '스페셜리스트'라는 중개인이 있었는데, 밀려드는 매도 물량을 받아낼 자금이 바닥났습니다. 그날 상장된 2,257개 종목 가운데 195개가 개장이 늦어지거나 거래가 멈췄습니다. 주가를 알려 주는 시세 전광판은 실제 체결보다 한참 뒤처져 흘러갔습니다.
더 고약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시카고의 지수 선물이 뉴욕의 현물 주가보다 훨씬 싸게 거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평소라면 두 시장의 가격 차이를 노리는 차익거래가 그 틈을 메워 줍니다. 그런데 현물 거래 자체가 멈춰 있으니 차익거래도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투자자들은 자기 주식이 지금 얼마인지조차 모르는 채로 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세계가 같은 날 함께 무너졌습니다
블랙 먼데이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시차 때문에 아시아가 먼저 열렸고, 홍콩 시장은 그달 한 달에만 45.8퍼센트가 빠졌습니다. 홍콩증권거래소는 사태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흘간 문을 닫았습니다. 세계 주요 산업국 스물세 곳 가운데 열아홉 곳에서 20퍼센트가 넘는 하락이 나타났습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날짜가 하루 넘어가 이날을 '블랙 튜즈데이'라고 부릅니다. 이들 시장은 그해 고점 대비 40퍼센트에서 많게는 60퍼센트 넘게 떨어졌습니다. 미국보다 훨씬 깊고 오래가는 상처였죠. 공포 그 자체가 국경을 넘어 번진 사례로 자주 인용됩니다.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포트폴리오 보험이 퍼진 정도는 크게 달랐는데, 프로그램 매매가 사실상 없던 시장에서도 똑같이 폭락이 일어났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프로그램 매매가 하락을 '만들어 냈다'기보다 '증폭시켰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불을 지르지는 않았어도, 기름을 부은 역할만큼은 분명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린스펀의 한 문장
진짜 고비는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증권사들이 서로에게 줄 돈을 제때 주지 못하면 결제가 줄줄이 막히고, 그러면 시장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 자체가 멈춥니다. 취임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10월 20일 화요일 개장 전, 단 한 문장짜리 성명을 냈습니다.
요지는 이랬습니다. 연방준비제도는 중앙은행으로서의 책무에 따라,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떠받치는 유동성 공급원이 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오늘 확인한다는 것. 짧지만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돈이 필요한 곳에는 돈을 대 주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연준은 그날 실제로 은행 시스템에 대규모 자금을 풀었고, 여러 대형 은행이 증권사에 대한 대출을 끊지 않도록 설득했습니다.
효과는 빨랐습니다. 시장은 거래일 이틀 만에 블랙 먼데이 손실의 60퍼센트 가까이를 되찾았습니다. 1987년 다우지수는 1,939로 한 해를 마쳤습니다. 그 폭락을 겪고도 연간으로는 소폭 상승이라는, 기묘한 성적표였죠. 다만 8월의 고점 2,722선을 다시 밟기까지는 1989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서킷브레이커는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미국 정부는 곧장 원인 규명에 나섰습니다. 니컬러스 브래디가 이끈 대통령 직속 조사단이 1988년 1월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흔히 '브래디 보고서'라고 부릅니다. 결론의 요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주식 현물 시장과 선물 시장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인데 감독과 규칙은 따로 놀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시장에 숨 돌릴 틈을 주는 장치가 전혀 없었다는 것.
그 해법으로 나온 것이 지금 우리가 서킷브레이커라고 부르는 제도입니다. 전기 회로에 과부하가 걸리면 차단기가 내려가듯, 지수가 일정 비율 이상 떨어지면 거래를 잠시 멈춰 세우는 장치입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1988년 10월 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우지수가 250포인트 떨어지면 한 시간, 400포인트 떨어지면 두 시간 거래를 멈추는 방식이었습니다.
제도는 그 뒤로도 계속 손질됐습니다. 지수가 오를수록 250포인트의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에, 1998년부터는 포인트 대신 비율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시장 전체 서킷브레이커는 S&P 500 지수가 7퍼센트, 13퍼센트, 20퍼센트 떨어질 때 차례로 작동합니다. 2013년에 정비된 이 기준은 2020년 3월 코로나19 충격 때 실제로 여러 차례 발동됐습니다.
한국 시장에도 같은 뿌리의 장치가 있습니다. 코스피200 선물이 급변하면 프로그램 매매를 5분간 멈추는 사이드카가 1996년 12월에 생겼습니다. 지수가 8퍼센트, 15퍼센트, 20퍼센트 떨어지면 단계별로 거래를 멈추는 서킷브레이커는 1998년 12월에 들어왔습니다. 개인투자자에게는 폭락장에서 화면이 멈춰 버리는 답답한 순간입니다. 하지만 그 20분은, 1987년 그날처럼 값도 모른 채 내던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시간입니다.
이유 없는 폭락이 남긴 질문들
블랙 먼데이가 지금도 자주 소환되는 이유는 낙폭 기록 때문만이 아닙니다. 뚜렷한 악재 없이도 시장이 하루 만에 4분의 1 가까이 날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 줬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원인을 파고든 연구에도, 딱 떨어지는 단일한 설명은 아직 없습니다. 시장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날이 존재합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방어 장치의 역설도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보험은 기관 하나하나에게는 합리적인 위험 관리였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규칙을 들고 같은 문으로 몰리자, 위험을 줄이기는커녕 키웠습니다. 요즘도 손절 주문이나 자동 매매 규칙은 흔합니다. 내 안전장치가 나만의 것인지, 수많은 사람이 똑같이 걸어 둔 것인지 한 번쯤 따져 볼 만합니다.
유동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날 정말 무서웠던 건 가격이 떨어진 일이 아니라 살 사람이 사라진 일이었습니다. 시세는 늦게 흐르고 거래는 멈춰, 내 자산의 값조차 알 수 없던 몇 시간. 그것이 공포의 본질이었습니다. 평소엔 당연해 보이는 '언제든 팔 수 있다'는 전제가 위기에는 가장 먼저 사라진다는 점, 기억해 둘 만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남은 것은 규제와 제도였습니다. 서킷브레이커도, 결제 시스템 개선도 누군가 미리 설계한 것이 아닙니다. 한 번 크게 데인 뒤에야 만들어졌습니다. 시장의 안전장치는 대개 그런 방식으로 생겨납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우리가 들여다보는 주식 화면에 붙은 규칙들 대부분은 누군가 혹독하게 치른 하루의 값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987년 10월 19일은, 그 값이 가장 비싸게 치러진 날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