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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5천만 달러에 살 수 있었던 회사

2000년, 텍사스 댈러스의 블록버스터 본사 회의실. 적자에 허덕이던 작은 인터넷 회사의 창업자들이 제안을 내밀었습니다. 우리를 5천만 달러에 사 가십시오. 맞은편에 앉은 최고경영자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썼다고 합니다. 그 작은 회사의 이름이 넷플릭스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 3월, 지구상에 남은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은 단 한 곳이 됐습니다. 미국 오리건주 벤드, 인구 10만 명 남짓한 도시에 걸린 파란 간판 하나. 불과 15년 전만 해도 이 회사는 전 세계에 9천 개가 넘는 매장과 8만 명이 넘는 직원을 거느린, 비디오 대여 시장의 절대 강자였습니다.

블록버스터의 몰락을 말할 때면 저 회의실 장면이 거의 빠지지 않고 따라붙습니다. 지금의 넷플릭스가 어떤 회사가 됐는지 떠올리면, 이보다 극적인 대비도 찾기 어렵죠.

블록버스터 매장 앞모습
오리건주 벤드에 남은 세계 마지막 블록버스터 매장의 앞모습.UpdateNerd · CC0 · 위키미디어 공용

그런데 이 이야기, 너무 깔끔하지 않나요. 교훈이 선명한 일화일수록 원래 모습에서 얼마나 다듬어졌는지 한 번쯤 의심해 볼 만합니다. 누가 언제 한 증언인지, 그날의 판단이 정말 어리석었는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깊고 오래된 이유가 따로 있었는지. 하나씩 따라가 봅니다.

금요일 저녁을 지배했던 파란 간판

블록버스터 1호점은 1985년 텍사스 댈러스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동네 비디오 가게들이 좁은 공간에 수백 편을 쌓아 두던 시절이었습니다. 블록버스터는 넓은 매장에 수천 편을 진열하고 재고를 전산으로 관리하는 방식으로 판을 뒤집었습니다.

1994년에는 미디어 대기업 바이어컴이 84억 달러를 들여 이 회사를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2004년, 다시 독립 회사로 떨어져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해가 정점이었습니다. 매장 9,094개, 직원 8만 4,300명.

돈 버는 방식은 단순해 보였지만 실은 정교했습니다. 신작을 대량으로 확보해 진열하고, 영화 스튜디오와는 대여 수익을 나누는 계약을 맺어 처음 사들이는 부담을 줄였습니다. 영화를 보려면 누구든 매장까지 직접 와야 했으니, 목 좋은 자리를 먼저 차지한 것 자체가 경쟁력이었습니다.

수입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연체료입니다. 빌린 비디오를 반납일까지 가져오지 않으면 하루 단위로 물리는 추가 요금이죠. 대여료는 몇 달러에 불과했지만, 반납을 며칠 잊으면 대여료보다 연체료가 더 나오는 일이 흔했습니다. 미국 가정에서 블록버스터 연체료는 농담거리이자 짜증거리였습니다.

이 연체료가 실적에서 차지한 몫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훗날 2005년 회사가 연체료 폐지를 선언하자, 첫 분기에만 1억 4천만 달러의 매출이 사라졌습니다. 한 분기에 그만큼이 날아갔다는 건, 연체료가 이미 회사 살림을 떠받치는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는 뜻입니다.

2000년, 5천만 달러짜리 제안의 진실

넷플릭스는 1997년에 세워져 1998년부터 우편으로 DVD를 빌려주던 작은 회사였습니다. 빨간 봉투에 DVD를 담아 우편함으로 보내고, 다 본 사람이 같은 봉투에 넣어 돌려보내면 다음 DVD가 오는 식이었죠. 2000년 무렵엔 가입자도 적었고 적자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해 넷플릭스의 리드 헤이스팅스와 마크 랜돌프, 재무책임자 배리 매카시가 댈러스의 블록버스터 본사를 찾았습니다. 제안은 이랬습니다. 블록버스터가 넷플릭스를 사서 자사의 온라인 부문으로 운영하고, 그 부문은 넷플릭스 팀이 맡는다. 부른 값은 5천만 달러. 맞은편에는 최고경영자 존 안티오코와 법무 총괄 에드 스테드가 앉아 있었습니다.

유명한 대목은 여기서 나옵니다. 랜돌프는 훗날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존 안티오코가 웃음을 참으려 애쓰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고요.

이 장면의 출처는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랜돌프가 2019년에 펴낸 회고록입니다. 다른 하나는 같은 자리에 있었던 매카시의 언론 인터뷰로, 그는 블록버스터가 우리를 사무실 밖으로 웃어 내쫓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신빙성을 따져 보면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이 장면은 전적으로 넷플릭스 쪽 사람들의 기억에 기대고 있습니다. 블록버스터가 남긴 회의록이나 공식 기록이 공개된 적은 없고, 증언은 거의 20년이 지난 뒤에야 나왔습니다.

안티오코 본인은 이후 여러 글과 인터뷰에서 당시 판단을 다르게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웃었다는 묘사는 한쪽이 보고 해석한 내용이지, 양쪽이 합의한 사실 기록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 건 그때의 공기입니다. 2000년의 넷플릭스는 적자 기업이었고, 때는 닷컴 거품이 꺼지던 시기였습니다. 인터넷 회사에 수천만 달러를 얹어 준다는 건 누가 봐도 모험이었죠. 그 시점의 상식으로는 거절이 오히려 신중해 보였고, 실제로 당시엔 그렇게 평가받았습니다.

블록버스터의 진짜 문제는 그날의 거절이 아니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7년이었습니다.

연체료라는 이름의 감옥

넷플릭스 창업 신화에도 비슷한 각색의 흔적이 있습니다. 헤이스팅스가 영화 아폴로 13호를 늦게 반납해 40달러의 연체료를 물고, 화가 나서 회사를 차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동 창업자 랜돌프는 이를 두고 편리하게 지어낸 이야기라는 취지로 선을 그었습니다. 헤이스팅스 본인도 창업 동기에 대한 설명을 여러 번 바꿔 왔고요. 그런데도 이 신화가 퍼진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연체료야말로 소비자가 가장 싫어하던 지점이었으니까요.

여기에 블록버스터가 빠진 덫의 본질이 있습니다. 연체료는 고객이 불편할수록 회사에 돈이 되는 매출입니다. 고객의 짜증이 곧 수익인 구조에서는, 그 짜증을 없애는 혁신이 곧 제 매출을 깎아 먹는 일이 됩니다.

새 사업이 기존 사업의 매출을 갉아먹는 현상을 자기잠식이라고 부릅니다. 블록버스터에게 연체료 없는 월정액 모델은 정확히 그 자기잠식이었습니다.

블록버스터도 결국 칼을 뽑았습니다. 2005년 1월, 연체료를 없애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결과는 앞서 본 대로 첫 분기 매출 1억 4천만 달러 감소.

게다가 첫 단추부터 꼬였습니다. 반납이 크게 늦어지면 자동으로 구매 처리된다는 단서 조항이 문제가 됐습니다. 40개가 넘는 주가 허위 광고라며 소송을 걸었고, 회사는 환불과 표기 수정에 합의해야 했습니다.

매장 9천 개라는 자랑거리도 이 무렵부터 성격이 바뀝니다. 임대료와 인건비, 재고 관리 비용은 손님이 오든 안 오든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입니다. 우편으로 DVD를 보내는 회사에는 그런 짐이 없었죠. 한때 남들이 넘보지 못하게 막아 주던 자산이, 이제는 발목을 붙잡는 짐이 된 겁니다.

비디오 매장의 진열 통로
알래스카 앵커리지의 블록버스터 비디오 매장 진열 통로.Jon Konrath · CC BY 2.0 · 위키미디어 공용

여기에 주주와 경영진의 다툼까지 겹쳤습니다. 2005년부터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이 이사회 진입을 노리며 경영진을 압박했습니다. 그는 온라인 사업에 큰돈을 쓰는 전략을 탐탁지 않게 봤습니다. 가장 빨리 움직여야 할 때, 회사 안은 방향을 놓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우편함에서 스트리밍으로

넷플릭스의 무기는 기술이 아니라 요금 구조였습니다. 매달 정해진 금액만 내면 반납 기한도, 연체료도 없었습니다. 매달 같은 금액을 내고 계속 이용하는 방식을 구독이라고 하죠.

영화 대여에 이 방식을 붙인 순간, 블록버스터 고객들이 가장 미워하던 경험이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늦게 돌려줘도 벌금이 없다. 이 한 줄이 그 어떤 광고보다 강력한 마케팅이 됐습니다.

블록버스터의 반격은 늦었지만 허술하지는 않았습니다. 2004년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6년 말에는 ‘토털 액세스’라는 카드를 꺼냈습니다. 우편으로 받은 DVD를 매장에 반납하면 그 자리에서 새 영화를 한 편 더 빌릴 수 있게 한 겁니다.

매장과 우편을 묶은 이 조합은 넷플릭스가 흉내 낼 수 없는 구성이었습니다. 2006년 말 가입자는 220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2007년 어느 분기에는 넷플릭스가 가입자 5만 5천 명 순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2007년 1월, 넷플릭스는 조용히 다른 문을 열었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입니다. 파일을 내려받아 저장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곧바로 재생하는 방식이죠.

처음엔 대단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화질도 낮고 볼 수 있는 작품도 적었습니다. DVD를 우편으로 받는 고객에게 덤으로 얹어 주는 부가 서비스에 가까웠습니다.

같은 해 블록버스터에서는 경영권 다툼이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안티오코가 회사를 떠났고, 편의점 체인 출신의 짐 키스가 새 최고경영자가 됐습니다. 새 경영진은 돈이 많이 드는 토털 액세스의 조건을 손보고, 다시 매장 중심 전략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없앴던 연체료를 이름만 바꿔 되살렸습니다. 가장 아프게 내려놓았던 것을 다시 집어 들었다는 건, 그만큼 다른 돈줄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파산, 그리고 벤드에 남은 단 한 곳

2010년 9월 23일, 블록버스터는 미국 연방파산법 11장에 따른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흔히 ‘챕터 11’이라 부르는 이 절차는 회사를 곧바로 청산하는 대신, 법원 관리 아래 빚을 정리하며 재기를 꾀하는 제도입니다.

당시 부채는 약 9억 달러. 한때 바이어컴이 84억 달러를 주고 샀던 회사치고는 초라한 숫자였습니다.

회생은 없었습니다. 2011년 4월 위성방송 사업자 디시네트워크가 약 3억 2천만 달러에 블록버스터 자산을 사들였고, 매장은 빠르게 정리됐습니다. 2013년 11월부터 2014년 1월 사이 직영점 300여 곳이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그 뒤로 간판을 지킨 곳은 상표를 따로 빌려 쓰는 소수의 가맹점뿐이었습니다.

가맹점들도 하나둘 꺼져 갔습니다. 2018년 알래스카 앵커리지 매장이 닫혔고, 2019년 3월 호주 퍼스의 매장마저 문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오리건주 벤드의 한 곳이 세계 마지막 블록버스터가 됐습니다.

벤드 매장은 지금도 영업 중입니다. 2004년부터 이곳을 맡아 온 매니저 샌디 하딩이 운영하고, 회원은 4천 명 남짓, 진열된 타이틀은 1천 편을 조금 넘습니다. 요즘은 수입의 상당 부분이 대여료가 아니라 티셔츠와 기념품에서 나옵니다.

마지막 블록버스터 매장 내부
2018년 8월, 오리건주 벤드의 마지막 블록버스터 매장 내부.Coasterlover1994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2020년에는 이 가게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나왔습니다. 그 작품을 볼 수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넷플릭스라는 사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농담입니다.

회의실이 아니라 7년이 남긴 것

5천만 달러를 거절한 그 회의실은 사실 이야기의 핵심이 아닙니다. 블록버스터에게는 그 뒤로도 7년 넘는 시간과, 온라인과 매장을 묶은 꽤 괜찮은 카드가 있었습니다.

기회는 한 번의 통쾌한 오판으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그때그때는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보였던 선택들이 여러 해에 걸쳐 쌓이면서 조금씩 빠져나갑니다.

더 곱씹을 대목은, 잘 버는 사업이 가장 위험한 덫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객이 싫어하는데도 돈이 되는 매출은 회사의 눈을 가립니다. 그 매출을 지키는 결정은 하나하나 단기적으로 옳아 보입니다. 그 사이 경쟁자는 바로 그 불편을 없애는 방식으로 고객을 데려갑니다.

기업을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이 회사의 이익은 어디서 나오는가. 그리고 그 이익원이 회사의 미래 선택을 얼마나 묶어 두고 있는가. 실적표의 숫자가 좋아 보일 때조차, 그 숫자가 어떤 구조 위에 서 있는지 함께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하나만 더 덧붙이자면, 교훈이 선명한 이야기일수록 출처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웃음을 참던 최고경영자의 장면은 기억하기 쉽고 옮기기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 장면만 붙들고 있으면 정작 중요한 7년을 놓치게 됩니다. 시장에 도는 이야기에도 같은 원칙이 통합니다.

블록버스터를 무너뜨린 건 회의실의 웃음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고객의 짜증으로 돈을 벌던 구조를 끝내 내려놓지 못한 7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