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의 100만 달러 내기, 승부는 수수료가 갈랐습니다
2026-09-20 · 8분 읽기
2017년 12월 31일, 10년을 끌어온 내기 하나가 막을 내렸습니다. 한쪽의 10년 누적 수익률은 125.8퍼센트. 다른 쪽은 36.3퍼센트였습니다. 이긴 쪽은 미국 주가지수를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값싼 펀드였고, 진 쪽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수를 받는 헤지펀드들을 골라 묶은 바구니였습니다.
내기를 건 사람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투자자 워런 버핏이었습니다. 2007년 여름, 일흔을 훌쩍 넘긴 그의 제안이 뉴욕의 한 헤지펀드 운용사로 전해졌습니다.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지수를 따라가는 값싼 펀드 하나가, 헤지펀드 여러 개를 묶어 놓은 것보다 성적이 좋을 것이다. 틀리면 100만 달러를 내놓겠다.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내기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이 이야기가 지금까지 회자되는 건 누가 이겼느냐 때문만이 아닙니다. 10년 동안 두 진영의 격차를 벌린 것은 대단한 종목 발굴 능력도, 시장의 방향을 읽는 눈도 아니었습니다. 매년 계좌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던 숫자였습니다. 1년만 떼어 놓고 보면 거의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작은 숫자.
그러니 이 글은 어떤 상품을 사라는 권유가 아닙니다. 비용과 시간이라는 평범한 두 요소가 10년이라는 기간을 통과하고 나면 결과를 얼마나 다르게 만드는지, 그 과정을 숫자로 천천히 따라가 보는 기록에 가깝습니다.
오마하에서 날아온 도전장
버핏은 오래전부터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해 왔습니다. 시장에 참여한 모든 투자자의 수익률을 다 합치면 결국 시장 평균과 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비싼 비용을 내고 자주 사고파는 쪽은 그 평균에서 비용만큼을 미리 빼고 출발합니다.
평균에서 비용을 뺀 자리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평균을 이기려면, 그 비용보다 큰 초과 수익을 매년 만들어 내야 합니다. 버핏은 그 일이 집단 전체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습니다.
그가 겨냥한 상대는 헤지펀드였습니다. 헤지펀드는 소수 큰손의 자금을 모아 주식과 채권은 물론 파생상품까지 자유롭게 사고팔면서, 시장이 오르든 내리든 수익을 내겠다고 내세우는 사모 형태의 펀드입니다. 파생상품은 주가나 금리 같은 기초 자산의 가격 움직임에 따라 가치가 정해지는 계약을 말합니다. 남들이 못 하는 일을 하니 보수도 비싸게 받는다는 것이 이 업계의 오랜 논리였습니다.
당시 업계의 관행적인 보수 체계는 이른바 2와 20이었습니다. 맡긴 돈의 2퍼센트가량을 해마다 관리 보수로 떼고, 벌어들인 이익의 20퍼센트를 성과 보수로 또 가져가는 구조입니다.
게다가 버핏이 겨냥한 건 개별 헤지펀드가 아니라 헤지펀드 재간접펀드였습니다. 여러 헤지펀드에 자금을 나눠 담아 주는 펀드인데, 그 서비스에 대해 보수가 한 겹 더 붙습니다.
버핏은 2006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이 생각을 공개적으로 꺼냈습니다. 자신 있으면 돈을 걸어 보라는 취지였죠. 그런데 1년이 넘도록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업계 전체가 비싼 보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10년이라는 시간표 위에 자기 이름을 걸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 손을 들었습니다
2007년, 프로테제 파트너스라는 운용사의 테드 사이즈가 손을 들었습니다. 프로테제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력 있는 헤지펀드를 일찍 찾아내 자금을 배분하는 일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사이즈는 훗날 자신의 승률을 85퍼센트 정도로 봤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버핏의 논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좋은 운용사를 골라낼 수 있다면, 추가로 내는 보수 이상을 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이즈의 계산에도 근거는 있었습니다. 헤지펀드의 진가는 지수가 계속 오를 때가 아니라 시장이 무너질 때 드러난다는 겁니다. 지수를 그대로 따라가는 펀드는 시장이 내리면 똑같이 내릴 수밖에 없지만, 헤지펀드는 현금을 쌓아 두거나 하락에 베팅해 손실을 줄일 수 있습니다. 2007년은 이미 미국 주택시장에 금이 가기 시작하던 때였으니, 시점만 보면 오히려 사이즈 쪽이 유리해 보였습니다.
조건은 이렇게 정해졌습니다. 기간은 2008년 1월 1일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꼭 10년. 버핏 쪽은 뱅가드의 S&P 500 지수 추종 펀드 하나, 사이즈 쪽은 그가 직접 고른 헤지펀드 재간접펀드 다섯 개. 다섯 펀드의 이름은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비교 기준은 모든 보수와 비용을 다 뺀 뒤 투자자에게 실제로 돌아가는 순수익률이었습니다.
내기는 장기 예측을 공개적으로 기록해 두는 롱벳츠라는 사이트에 정식으로 등록됐습니다. 판돈은 진 쪽이 이긴 쪽에 주는 게 아니라, 이긴 쪽이 미리 지정한 자선단체로 전액 넘어가는 구조였습니다. 버핏은 오마하 지역 소녀들을 지원하는 걸스 잉크 오브 오마하를, 프로테제는 아동 지원 단체인 앱솔루트 리턴 포 키즈의 후원 조직을 골랐습니다. 이기든 지든 돈은 두 사람 주머니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첫해, 버핏은 크게 졌습니다
시작하자마자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습니다. 2008년 한 해 동안 버핏의 지수 펀드는 약 37퍼센트 떨어졌습니다. 사이즈가 고른 다섯 펀드 묶음은 약 23.9퍼센트 하락에 그쳤습니다.
1년 만에 13퍼센트포인트가 넘는 차이로 사이즈가 앞섰습니다. 그가 내세운 논리가 그대로 증명되는 듯 보였습니다.
실제로 헤지펀드들은 하락장에서 제 몫을 했습니다. 주식 비중을 줄이고 현금을 늘리거나, 공매도로 손실을 메웠습니다. 공매도란 주식을 빌려 먼저 팔아 둔 뒤, 값이 떨어지면 싸게 되사서 갚고 그 차액을 남기는 거래입니다. 시장이 무너질 때 돈을 버는 몇 안 되는 방법이고, 2008년에는 이 방법을 쓴 쪽이 확실히 덜 다쳤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미국 증시는 2009년 봄을 바닥으로 길고 완만한 회복에 들어갔습니다. 지수 펀드는 시장이 오르는 만큼 그대로 따라 올랐지만, 방어에 무게를 둔 펀드들은 오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버핏은 내기 5년 차에 마침내 앞서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순위가 뒤집히지 않았습니다.
10년 뒤, 숫자는 이렇게 남았습니다
2017년 말 기준 최종 성적표를 다시 펼쳐 보겠습니다. 버핏이 고른 지수 펀드는 10년 누적 125.8퍼센트. 사이즈가 고른 다섯 재간접펀드의 평균 누적 수익률은 36.3퍼센트였습니다.
다섯 개 가운데 가장 잘한 펀드가 87.7퍼센트, 가장 못한 펀드는 2.8퍼센트였습니다. 그리고 다섯 개 중 단 하나도 지수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1년 단위로 바꿔 보면 지수 펀드는 해마다 평균 8.5퍼센트가량, 헤지펀드 묶음은 3.1퍼센트가량 불어난 셈입니다. 한 해 차이로는 5퍼센트포인트 남짓. 어느 해에도 극적인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저 매년 조금씩 뒤처졌을 뿐인데, 그 차이가 10년 동안 복리로 쌓이자 최종 누적 수익률은 세 배 넘게 벌어졌습니다.
사이즈는 기간이 끝나기도 전인 2017년에 먼저 패배를 인정하는 글을 냈습니다.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시점이었습니다. 그는 높은 보수가 결정적이었다고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단서를 하나 달았습니다. 이 10년은 미국 증시에 유난히 좋았던 기간이었고, 다른 10년이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 있다는 것. 새겨들을 만한 반론입니다.
매년 2퍼센트가 10년 뒤에 하는 일
왜 이렇게까지 벌어졌을까요. 재간접펀드 구조에서는 보수가 두 겹으로 붙습니다. 개별 헤지펀드가 관리 보수와 성과 보수를 떼고, 그것들을 모아 놓은 재간접펀드가 다시 제 몫을 뗍니다. 투자자가 실제로 손에 쥐는 건 그 모든 단계를 지나고 남은 돈입니다. 반면 지수를 그대로 복제하는 펀드는 사람이 판단할 일이 거의 없으니 비용이 아주 낮습니다.
숫자로 감을 잡아 볼까요. 100이라는 돈이 매년 8퍼센트씩 불어나면 10년 뒤 약 216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년 2.2퍼센트포인트씩만 비용으로 빠져나가 5.8퍼센트로 불어난다면, 10년 뒤에는 약 176입니다.
차이는 40. 원금의 40퍼센트에 해당하는 돈이, 잘못된 판단 한 번 없이 그저 매년 2퍼센트포인트씩 새어 나간 것만으로 사라진 셈입니다.
비대칭도 하나 더 있습니다. 성과 보수는 이익이 났을 때만 붙지만, 관리 보수는 손실이 나도 꼬박꼬박 나갑니다. 수익은 불확실한데 비용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확실한 쪽이 불확실한 쪽을 갉아먹는 힘은 커집니다. 버핏이 10년이라는 긴 기간을 고집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판돈에 숨어 있던 반전
판돈을 마련한 방식에도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318,250달러씩을 제로쿠폰 국채에 넣었습니다. 제로쿠폰채는 이자를 따로 주지 않는 대신 액면가보다 훨씬 싸게 발행하고, 만기가 되면 액면가를 돌려주는 채권입니다. 10년 뒤 두 사람 몫을 합치면 정확히 100만 달러가 되도록 설계한 것이죠.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각국이 금리를 끌어내리면서 채권 가격이 크게 뛰었습니다. 2012년 11월 무렵 이 채권은 이미 100만 달러에 가까운 값이 돼 있었고, 남은 5년 동안 기대할 수 있는 수익률은 연 1퍼센트에도 못 미쳤습니다. 버핏은 이대로 만기까지 들고 가는 건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두 사람은 합의하에 채권을 팔고, 그 돈으로 버크셔 해서웨이 B주 11,200주를 샀습니다. 판돈 자체를 주식에 태운 겁니다. 남은 5년 동안 이 주식은 크게 올랐고, 내기가 끝났을 때 판돈은 약 220만 달러로 불어 있었습니다. 처음 약속한 100만 달러의 두 배가 넘는 금액입니다.
그 220만 달러는 전액 걸스 잉크 오브 오마하로 전달됐습니다. 오마하 지역 소녀들에게 방과 후 교육과 진로 지원을 제공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10년에 걸친 논쟁이 남긴 실질적인 결과물은 어느 쪽 이론이 옳았다는 선언이 아니라, 한 지역 단체의 예산이 두둑해진 일이었습니다.
수익은 끝에 알고, 비용은 첫날 압니다
이 이야기를 어느 한쪽 상품이 우월하다는 결론으로 정리하면 오히려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사이즈의 반론처럼 표본은 딱 하나였고, 하필 미국 증시에 유난히 우호적이었던 10년이었습니다. 다른 10년을 잘라 냈다면 숫자는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의 내기로 세상의 모든 운용 방식에 등수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수익은 끝까지 가 봐야 알지만, 비용은 첫날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 내가 어떤 경로로 얼마를 비용으로 내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면, 10년 뒤 성적표에서 그 부분을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비용은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확인의 영역입니다.
시간의 단위도 기억해 둘 만합니다. 2008년 한 해만 보면 사이즈의 압승이었고, 그때 승부를 끝냈다면 세상에 전해지는 교훈도 정반대였을 겁니다. 1년짜리 성적표와 10년짜리 성적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숫자가 어느 쪽 시간표 위에 놓여 있는지 한 번쯤 되물어 보는 일. 이 내기가 남긴 가장 값싼 교훈은 아마 그것일 겁니다. 매년 조용히 새어 나간 몇 퍼센트가 10년 뒤의 승부를 갈랐듯, 그 작은 질문 하나가 먼 훗날의 성적표를 바꿔 놓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