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는 왜 비쌌을까
2026-09-14 · 8분 읽기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이 문장을 세상에 퍼뜨린 회사의 2025년 실적표에는 이런 숫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매출 35억 달러, 원석 판매 30억 달러, 그리고 기초 영업이익 5억 1,100만 달러 적자. 원석 생산량은 2,170만 캐럿으로 1년 만에 12% 줄었습니다.
회사의 이름은 드비어스입니다. 모회사 앵글로아메리칸은 장부상 가치를 거듭 깎아 내린 끝에, 이 회사를 팔거나 떼어 내는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한때 세계 다이아몬드 값을 혼자 정하다시피 했던 회사의 성적표라기엔 초라하죠.
귀한 물건을 팔던 회사가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그런데 질문의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다이아몬드는 귀해서 비쌌던 게 아닙니다. 비싸게 유지되도록 관리됐기 때문에 귀해 보였던 겁니다.
킴벌리 프로세스 집계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세계에서 캐낸 원석 다이아몬드는 약 1억 1,650만 캐럿이었습니다. 결코 극단적으로 드문 광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지난 100년 동안 다이아몬드가 사람이 사는 가장 비싼 작은 물건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지질학이 아니라 경영 전략에 있습니다. 그 전략의 이름이 바로 드비어스입니다.
땅을 팠더니, 너무 많이 쏟아졌다
19세기 중반까지 다이아몬드는 정말로 귀했습니다. 인도와 브라질의 강바닥에서 조금씩 건져 올리는 게 전부여서, 유럽 왕실과 극소수 부호나 만져 볼 수 있는 물건이었습니다. 희소성이 진짜였던 시절입니다.
그 균형이 1860년대 말 남아프리카에서 깨졌습니다. 오렌지강 유역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더니, 1870년대 들어 킴벌리 일대에서 거대한 광맥이 터져 나왔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채굴꾼들이 땅을 파헤쳤고, 예전 같으면 몇십 년에 걸쳐 나올 양이 몇 달 만에 쏟아졌습니다.

광부들에겐 노다지였지만, 경제 논리로 보면 재앙의 예고편이었습니다. 공급이 폭증하면 값은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다이아몬드는 곡물이나 석유처럼 꼭 써야 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값이 싸지면 신비감이 사라지고, 신비감이 사라지면 아예 안 사게 되는 상품이죠.
채굴업자들도 곧 계산을 마쳤습니다. 서로 먼저 팔겠다고 덤비면 다 같이 망한다는 것. 남은 문제는 수백 개로 쪼개진 광구를 누가 하나로 묶어 내느냐였습니다.
세실 로즈가 손에 넣은 건 광산이 아니라 수도꼭지
세실 로즈는 처음부터 광구를 사들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광부들에게 배수 펌프를 빌려주던 사람이었죠. 구덩이가 깊어질수록 물이 차올랐으니 펌프는 꼭 필요했고, 그는 그 임대료로 광구를 하나씩 사 모았습니다. 경쟁자이자 동업자였던 바니 바나토와 맞붙은 끝에, 1888년 드비어스 컨솔리데이티드 마인스가 탄생합니다. 회사 이름은 그 땅을 갖고 있던 데 비어 형제의 농장에서 따왔습니다.
로즈가 한 일의 본질은 채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생산을 한 회사 아래로 모은 뒤, 캐낸 돌을 전부 시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수요에 맞춰 조금씩만 흘려보내고 나머지는 금고에 쌓아 두었습니다. 광산이 아니라 수도꼭지를 손에 넣은 셈입니다.
이렇게 소수의 사업자가 짜고 생산량과 가격을 맞추는 구조를 카르텔, 우리말로 담합이라고 부릅니다.
이 구조를 제도로 완성한 건 다음 세대의 에른스트 오펜하이머였습니다. 그는 1926년 드비어스 이사회에 들어가 1929년 회장에 올랐고, 생산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이 사업의 핵심이라는 원칙을 회사의 뼈대로 심었습니다. 여러 나라 생산자와 계약을 맺어 물량을 한곳에 모으는 중앙판매기구, 이른바 CSO 체제가 이때 자리를 잡습니다.
판매 방식도 독특했습니다. 드비어스는 사이트홀더라 부르는 소수의 지정 구매자에게, 회사가 골라 담은 원석 상자를 정해진 값에 내밀었습니다. 구매자는 값을 깎을 수도, 돌을 고를 수도 없었습니다. 받든지, 말든지였습니다.

1947년 어느 밤, 종이에 적힌 한 줄
공급을 잠그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으로 미국의 수요가 주저앉자, 드비어스는 광고대행사 N.W. 에이어에 일을 맡겼습니다. 주문이 특이했습니다. 브랜드를 알리는 게 아니라, 다이아몬드라는 물건 자체에 대한 감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1943년 이 대행사에 카피라이터 메리 프랜시스 제레티가 들어왔습니다. 1916년에 태어나 1999년에 세상을 떠난 사람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1947년 어느 날 밤늦도록 카피를 붙들고 있다가, 잠들기 직전 종이에 한 줄을 적어 두고 다음 날 아침 회의에 들고 갔습니다.
A Diamond Is Forever.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 이 문장이 광고에 처음 실린 건 이듬해인 1948년입니다.
이 한 줄이 무서운 이유는 감성이 아니라 계산에 있습니다. 영원하다는 말은 곧 되팔지 말라는 말입니다. 산 사람이 중고로 내놓지 않으면 시장에 흘러드는 물량이 줄고, 잠가 둔 수도꼭지의 효과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여기에 결혼 예물이라는 쓰임새를 붙이면 더 확실해집니다. 사랑의 증표를 되파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반지에 얼마를 써야 하는지 기준선을 그어 준 것도 광고였습니다. 월급 몇 달치라는 그 유명한 공식은 전통이 아니라 카피에서 태어났습니다. 약혼반지에 다이아몬드를 박는 관습이 서구에서 보편화된 것도 이 캠페인 이후입니다. 광고 전문지 애드에이지는 1999년 이 문장을 20세기 최고의 슬로건으로 꼽았습니다. 정작 제레티 본인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없던 전통을 들여온 나라, 일본
이 전략이 문화까지 만들어 낸다는 걸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 곳이 일본입니다. 일본에는 원래 약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고받는 풍습 자체가 없었습니다. 드비어스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광고를 시작한 1967년,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를 받은 신부는 스무 명 중 한 명꼴인 5%에 불과했습니다.
광고 전략은 노골적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전통이 아니라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삶의 상징으로 그렸습니다. 서양식 옷을 입은 젊은 부부, 세련된 실내, 그리고 그 곁의 반지. 마침 일본의 고도성장기와 정확히 맞물렸습니다. 미국에서 월급 두 달치였던 기준선은 일본에서 석 달치로 제시됐습니다.
결과는 광고의 역사에 남았습니다. 다이아몬드 산업을 오래 파고든 미국 언론인 에드워드 제이 엡스타인의 기록에 따르면, 캠페인 시작 14년 만에 그 비율은 60%까지 올라갔습니다.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없던 관습이 당연한 관습이 된 겁니다.
공급을 잠그는 손과 수요를 키우는 손을 한 회사가 동시에 쥐면 어떻게 될까요. 가격은 시장이 아니라 회의실에서 정해집니다.
수도꼭지가 여러 개로 늘어난 20년
카르텔은 참가자가 빠짐없이 들어와 있을 때만 돌아갑니다. 구소련 시베리아에서 대규모 광맥이 나왔을 때 드비어스는 그 물량을 사들여 체제 안에 묶어 두었지만, 소련이 무너진 뒤로는 통제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호주에서는 대형 광산 아가일이 1996년 계약을 끝내고 4,200만 캐럿을 직접 팔겠다고 나섰고, 1990년대에는 캐나다가 새 산지로 떠올랐습니다.
물량을 사들여 값을 떠받치는 데는 대가가 따랐습니다. 최후의 구매자 노릇을 하느라 쌓인 재고가 1990년대 후반 25억 달러에서 50억 달러 수준까지 불어난 겁니다. 결국 드비어스는 1998년을 전후해 노선을 바꿉니다. 점유율을 일부 내주더라도 브랜드와 수요를 키워 이익을 남기겠다는 방향이었습니다. 2000년에는 사이트홀더를 120곳에서 80곳으로 줄였습니다.
법의 압박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드비어스는 오랫동안 미국 반독점법 때문에 미국에서 직접 영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2004년에는 공업용 다이아몬드 가격 담합 혐의를 인정하고 1,000만 달러의 벌금을 냈습니다. 2008년에는 소비자 집단소송에서 2억 9,500만 달러를 물어주는 합의가 법원 승인을 받았고, 이 합의는 2012년 최종 확정됐습니다.
숫자는 정직합니다. 1980년대에는 세계 원석의 대부분이 드비어스 판매망을 거쳤습니다. 그 비중이 2000년에는 63% 수준으로, 2019년에는 29.5%로, 2021년에는 25%까지 내려왔습니다.
그사이 러시아의 알로사가 물량 기준 세계 1위 생산자로 올라섰습니다. 2024년 세계 원석 생산에서 러시아는 3,730만 캐럿으로 32%를, 보츠와나는 2,820만 캐럿으로 24%를 차지했습니다. 2011년에는 오펜하이머 가문의 지분 40%가 앵글로아메리칸에 51억 달러에 넘어가면서, 한 가문의 시대도 막을 내렸습니다.
실험실에서 자라난 균열
그런데 점유율 하락은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충격은 땅속이 아니라 공장에서 왔습니다. 고온고압 방식이나 화학증착 방식으로 탄소를 결정으로 키워 낸 실험실 재배 다이아몬드, 이른바 랩그로운입니다. 유리로 만든 모조품이 아닙니다. 원자 배열까지 천연과 똑같은 진짜 다이아몬드이고, 전문 감정 장비 없이는 구분하기도 어렵습니다.

드비어스의 첫 대응은 영리해 보였습니다. 2018년 라이트박스라는 브랜드를 내놓고 랩그로운을 캐럿당 800달러라는 단순한 정찰가에 판 겁니다. 저 돌은 값싼 액세서리일 뿐이고 진짜 예물은 천연이라는 선을 소비자 머릿속에 긋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희소성 이야기를 지키려고 스스로 경쟁 제품을 만든 셈입니다.
그 선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중국을 비롯한 생산자들이 뛰어들면서 랩그로운 도매 가격은 라이트박스 출범 이후 90% 가까이 무너졌습니다. 값싼 물건이라는 자리를 지키려 값을 계속 내리다 보니 사업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됐습니다. 드비어스는 2025년 5월 라이트박스를 접겠다고 발표했고, 계열사 엘리먼트식스는 보석 대신 반도체나 양자 기술 같은 산업용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소비자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미국 결혼 정보 업체 더낫이 1만 쌍 넘는 커플을 조사한 2025년 결과를 보면, 약혼반지 중앙에 올릴 보석으로 랩그로운을 고른 비율이 61%였습니다. 2020년보다 239% 늘어난 수치입니다. 평균 지출은 랩그로운 반지가 4,300달러, 천연 다이아몬드 반지가 7,000달러였습니다.
다이아몬드가 영원하고 희소하다는 이야기는 그 돌이 땅에서만 나올 때나 성립합니다. 같은 성분의 돌을 몇 주 만에 키워 낼 수 있게 된 순간, 그 희소성이 관리의 산물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희소성은 누가 만드는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먼저 챙길 것은 희소성이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자는 겁니다. 어떤 자산이 비싼 이유가 물리적으로 적어서인지, 누군가 적어 보이도록 관리하고 있어서인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뒤쪽이라면, 관리하는 주체가 사라지거나 관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값은 무너집니다. 드비어스는 그 비용을 수십억 달러어치 재고로 치르다 결국 노선을 바꿔야 했습니다.
이야기가 만든 웃돈은 이야기와 함께 흔들린다는 점도 기억할 만합니다. 다이아몬드 값의 상당 부분은 광물의 성질이 아니라 그 돌에 붙은 서사가 떠받치고 있었습니다. 서사가 붙은 가격은 오를 때 가파른 만큼 내려올 때도 가파릅니다. 어떤 자산의 가격표에서 얼마가 실제 쓸모이고 얼마가 이야기인지 나눠 보는 습관은 꽤 쓸모가 있습니다.
진입장벽에도 수명이 있습니다. 드비어스의 해자, 즉 경쟁자를 막아 주던 성벽은 광산 소유였습니다. 100년 가까이 아무도 넘지 못한 벽이었죠. 그런데 그 벽은 경쟁사가 더 큰 광산을 찾아내서가 아니라, 광산이 필요 없어지는 기술이 나오면서 허물어졌습니다. 지금 튼튼해 보이는 해자도 같은 방식으로 우회당할 수 있습니다. 같은 업종만 들여다봐서는 놓치는 경쟁자가 많습니다.
소비자의 습관도 만들어질 수 있고, 바뀔 수도 있습니다. 1967년의 일본인들에게 다이아몬드 약혼반지는 낯선 물건이었지만 14년 뒤에는 당연한 물건이 됐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십 년이 흘러, 지금의 젊은 세대는 같은 자리에 실험실에서 자란 돌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시장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일수록, 언제부터 당연해졌는지 한 번쯤 되짚어 볼 만합니다.
영원하다던 것은 돌이 아니라 한 시대의 약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도, 결국 영원하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