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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찍을 수 없는 나라의 10년

2015년 6월 29일 월요일, 그리스의 은행들은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현금자동인출기에서 한 사람이 하루에 찾을 수 있는 돈은 60유로로 묶였습니다. 유럽연합 회원국이자 유로를 쓰는 나라에서, 자기 예금을 마음대로 꺼낼 수 없는 날들이 시작된 겁니다.

이 장면의 뿌리는 2009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9년 10월 4일 총선에서 이긴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는 취임하자마자 국민에게 달갑지 않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해 재정적자가 GDP(국내총생산)의 12퍼센트를 넘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직전 정부가 유럽연합에 보고한 숫자의 거의 두 배였습니다.

유로존 회원국이 지켜야 할 적자 기준선은 3퍼센트. 살짝 넘은 정도가 아니라 네 배를 넘긴 셈이었습니다.

그마저 끝이 아니었습니다. 유럽연합 통계기구 유로스타트가 장부를 다시 뒤진 끝에 2010년 11월 15일 확정한 2009년 그리스 재정적자는 GDP 대비 15.4퍼센트였습니다. 한 나라의 회계장부가 이만큼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시장에는 더 무서운 신호였습니다. 숫자가 나쁜 것과 숫자를 믿을 수 없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 뒤 10년 가까이 그리스는 세 차례 구제금융을 받았고, 국민투표를 치렀고, 은행 문이 3주 동안 닫히는 일까지 겪었습니다. 인구 1,100만 명 남짓한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유럽 단일통화가 계속 존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까지 끌어냈습니다.

싼 이자가 덮어 둔 장부

그리스는 2001년 유로존에 들어갔습니다. 자국 통화 드라크마를 버리고 유로를 쓰기 시작하자 가장 먼저 달라진 건 이자였습니다. 그전까지 그리스 국채는 독일 국채보다 한참 높은 이자를 줘야 팔렸습니다. 그런데 유로를 쓰게 되자 두 나라 국채의 금리 차이가 거의 사라질 만큼 좁혀졌습니다. 시장이 그리스의 빚을 독일의 빚과 비슷한 위험으로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싼 이자는 축복처럼 보였습니다. 정부는 더 많이 빌렸고, 공공부문 임금과 연금은 불어났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같은 대형 사업도 이어졌습니다.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 구조적 문제는 호황 뒤에 가려졌습니다. 돈이 계속 들어오는 동안에는 빚의 크기가 잘 보이지 않는 법이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 흐름이 끊겼습니다. 세수는 줄고 지출은 늘어 적자가 벌어졌는데, 마침 새 정부가 들어와 장부를 열어 보니 숫자가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겁니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이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잇달아 내렸고, 그리스가 돈을 빌릴 때 물어야 할 이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나라 살림은 보통 옛 국채를 갚으려고 새 국채를 파는 방식으로 굴러갑니다. 사 줄 사람이 사라지면 그 바퀴가 멈춥니다. 2010년 봄, 그리스는 더 이상 시장에서 스스로 돈을 구할 수 없게 됐습니다.

돈을 찍을 수 없는 나라

여기서 유로존이라는 구조가 결정적인 변수가 됩니다. 자국 통화를 쓰는 나라는 빚에 몰렸을 때 마지막 카드가 하나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자국 통화로 된 빚을 갚는 것이죠. 물가가 오르고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대가를 치르지만, 적어도 못 갚아서 부도가 나는 일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에는 그 카드가 없었습니다. 유로를 찍는 곳은 아테네가 아니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ECB)이고, 통화정책은 유로존 회원국 전체를 보고 정해집니다. 그리스 정부가 급하다고 유로를 더 찍어 달라고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그리스 국채는 겉으로는 자국 통화로 발행한 채권이었지만, 실제로는 남의 나라 돈으로 진 빚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리스 중앙은행 본점 건물 외관
2020년 8월 17일에 찍은 그리스 중앙은행(그리스은행) 본점.George E. Koronaios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환율이라는 안전판도 사라졌습니다. 자국 통화가 있는 나라는 경쟁력을 잃으면 통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품이 저절로 싸지고 관광객도 늘어납니다. 고통스럽지만 회복의 통로가 열리는 셈입니다.

유로를 쓰는 그리스에는 그 통로가 막혀 있었습니다. 남은 길은 임금과 물가를 직접 깎아 내리는 이른바 '내부 평가절하'뿐이었습니다. 통화 대신 사람들의 월급이 절하되는 방식입니다.

유로존은 통화는 하나로 묶었지만, 재정은 각 나라에 맡겨 둔 채 출발했습니다. 통화동맹은 있는데 재정동맹은 없는 상태에서 회원국 하나가 무너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창설 당시 조약에는 분명한 답이 없었습니다. 그리스 위기는 그 빈칸을 가장 아픈 방식으로 드러냈습니다.

세 번의 구제금융, 그리고 긴축이라는 조건

첫 구제금융은 2010년 5월에 결정됐습니다. 유로존 회원국들과 IMF(국제통화기금)가 3년에 걸쳐 1,100억 유로를 빌려주기로 한 것입니다. 다만 프로그램이 도중에 교체되면서, 실제로 나간 돈은 유로존 529억 유로와 IMF 201억 유로를 합친 730억 유로였습니다.

두 번째는 2012년 2월 21일 합의된 프로그램으로, 1,300억 유로의 새 자금에 첫 번째 프로그램에서 쓰지 않고 남은 돈을 더한 규모였습니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1,418억 유로를, IMF가 120억 유로를 집행했습니다.

세 번째는 2015년 8월 유럽안정화기구(ESM)를 통해 최대 860억 유로까지 쓸 수 있게 승인된 프로그램이었고, 실제 집행액은 619억 유로였습니다. 세 번을 모두 합치면 그리스가 받은 돈은 2,887억 유로에 이릅니다.

이 돈에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ECB, IMF 세 기관이 분기마다 이행 상황을 점검했고, 이를 통과해야 다음 자금이 나갔습니다. 조건은 공공부문 임금과 연금 삭감, 부가가치세 인상,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규제 완화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부가 쓰는 돈은 줄이고 걷는 돈은 늘리라는 요구, 곧 긴축이었습니다.

긴축의 논리 자체는 단순합니다. 덜 쓰고 더 걷으면 빚 갚을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죠. 문제는 그 조치가 경제까지 함께 쪼그라뜨린다는 데 있었습니다. 월급이 깎이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세금이 덜 걷힙니다. 빚을 나누는 분모인 GDP까지 함께 줄어드니, 부채비율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실업률은 2013년 말 27.5퍼센트까지 올랐습니다. 네 명 중 한 명 넘게 일자리가 없었다는 뜻입니다. 위기 전과 비교해 그리스 경제 규모가 4분의 1가량 줄었다는 추산까지 나왔습니다.

역사상 가장 큰 빚 깎기

2012년 3월, 국가채무의 역사에 남을 일이 벌어졌습니다. 민간이 들고 있던 그리스 국채의 원금을 깎는 조정이 실행된 것입니다. 전문용어로는 민간부문 참여, 영어 약자로 PSI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은행과 연기금 같은 채권자들이 빌려준 돈의 일부를 포기하는 데 동의하는 절차입니다.

대상은 민간이 보유한 국채 약 1,970억 유로. 액면 원금의 53.5퍼센트가 깎였습니다. 참여율은 약 97퍼센트에 달했고, 이 조치로 그리스의 빚은 약 1,070억 유로 줄었습니다. 한 나라의 빚을 이만한 규모로 깎아 낸 사례는 그전까지 없었습니다.

채권자들이 순순히 동의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 정부는 이미 발행된 국채에 '집단행동조항'을 소급해 넣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일정 비율 이상의 채권자가 동의하면, 반대한 채권자에게도 같은 조건이 강제로 적용되도록 한 것입니다. 끝까지 버티면 더 좋은 조건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을 아예 막아 버린 셈이죠.

빚은 줄었지만 문제가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스 국채를 가장 많이 들고 있던 곳이 바로 그리스의 은행들과 연기금이었기 때문입니다. 깎인 만큼 국내 금융기관이 손실을 떠안았고, 그 은행들을 살리는 데 구제금융의 상당 부분이 다시 들어갔습니다.

은행 문이 닫힌 3주

2015년 1월 총선에서 긴축 반대를 내건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총리가 되면서 상황은 다시 격해졌습니다. 채권단과의 협상은 몇 달째 제자리를 맴돌았고, 그리스 은행에서는 예금이 계속 빠져나갔습니다. ECB가 긴급유동성지원이라는 이름으로 그리스 은행에 돈을 대 주고 있었지만, 협상이 깨지면 그 지원마저 끊길 수 있었습니다.

2015년 6월 27일 새벽, 치프라스 총리는 채권단의 제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시장은 이를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날 수도 있다는 신호로 읽었습니다. ECB가 긴급유동성지원 한도를 더 늘리지 않기로 하자, 그리스 정부는 6월 29일 은행 영업을 멈추고 자본통제에 들어갔습니다. 하루 인출 한도 60유로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이튿날인 6월 30일, 그리스는 IMF에 갚아야 할 돈을 제때 내지 못했습니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가 IMF 상환을 놓친 첫 사례였습니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시위대
2015년 6월 30일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의 시위 현장.Rogi.Official · CC BY-SA 3.0 · 위키미디어 공용

7월 5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그리스 국민은 채권단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반대 61.31퍼센트, 찬성 38.69퍼센트, 투표율은 62.5퍼센트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협상의 판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이 물러났고, 7월 13일 치프라스 총리는 오히려 더 강한 긴축 조건을 담은 합의에 서명했습니다.

은행 문은 7월 20일에야 다시 열렸습니다. 3주 만이었습니다. 자본통제는 그 뒤로도 조금씩만 풀렸고,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몇 년이 더 걸렸습니다. 국민투표에서 무엇을 고르든, 자기 통화가 없는 나라의 협상력은 극히 좁다는 사실. 그 3주가 보여 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유로존이 고쳐 놓은 것들

그리스가 흔들리는 동안 유로존은 한 가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어느 나라 국채가 위태로워지면 그 국채를 들고 있는 은행들이 함께 흔들립니다. 그러면 정부는 은행을 구하느라 다시 빚을 지고, 국채는 더 위태로워집니다. 정부와 은행이 서로의 약점을 키우는 이 악순환을 끊는 일이 이후 개혁의 핵심이 됐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은행동맹입니다. 나라마다 흩어져 있던 은행 감독 권한을 ECB로 모으고, 부실 은행을 정리하는 공동의 절차와 기금을 마련했습니다. 임시 기구였던 유럽재정안정기금은 상설 기관인 유럽안정화기구로 대체됐습니다. 위기가 터진 뒤 허겁지겁 회의를 여는 대신, 돈과 절차를 미리 갖춰 두기로 한 것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2012년 7월 26일 런던에서 나왔습니다. 마리오 드라기 당시 ECB 총재가 유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실제 정책 수단이 움직이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중앙은행이 마지막 방어선에 서겠다는 한마디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 금리가 내려갔습니다. 위기의 절반은 심리였다는 걸 보여 준 장면입니다.

그리스는 2018년 8월 20일 세 번째 프로그램을 마치고 구제금융 체제에서 벗어났습니다. 이후 회복은 느렸지만 꾸준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전망 기준으로 2025년 그리스의 실업률은 8.9퍼센트, 국가채무는 GDP 대비 146.1퍼센트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27.5퍼센트였던 실업률을 떠올리면 전혀 다른 나라의 숫자입니다.

빠져나갈 문이 몇 개인가

그리스 위기가 남긴 첫 번째 메시지는 숫자의 신뢰에 관한 것입니다. 시장이 견디지 못한 건 적자가 12퍼센트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 숫자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실적이 나쁜 회사보다 실적 발표를 거듭 정정하는 회사가 훨씬 위험합니다. 회계의 정확성은 지루한 항목처럼 보이지만, 무너질 때는 가장 먼저 무너집니다.

구조가 선택지를 정한다는 점도 기억할 만합니다. 같은 크기의 빚이라도 자기 통화를 찍을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결말은 전혀 다릅니다. 투자에서도 어떤 대상의 위험을 볼 때는 숫자의 크기만큼이나 그 숫자가 놓인 제도의 틀을 함께 봐야 합니다. 빠져나갈 문이 몇 개나 있느냐가 결국 버틸 수 있느냐를 가릅니다.

그리고 값싼 돈이 오래 이어질 때가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가 빚을 키운 건 위기가 닥친 때가 아니라, 이자가 낮고 아무도 걱정하지 않던 호황기였습니다. 위험은 모두가 안심할 때 쌓이고,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볼 때 조용히 자랍니다.

조건이 좋을 때 그 조건을 한 번쯤 의심해 보는 습관. 돈을 찍을 수 없었던 나라의 10년은, 그것이 가장 비싼 값을 치르지 않는 방법이라고 말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