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지수가 인텔 없이 열린 날
2026-10-14 · 20분 읽기
2024년 11월 8일 금요일, 뉴욕 증시가 문을 열기 직전. 미국 주식시장의 얼굴이라 불리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30개 종목 명단에서 한 줄이 조용히 지워졌습니다. 인텔이었습니다.
1999년에 이 지수에 들어온 뒤 25년을 지켜 온 자리였습니다. 그 25년 동안 인텔은 한 회사의 이름이라기보다 반도체라는 산업 자체를 가리키는 말에 가까웠죠. 지수를 관리하는 S&P 다우존스 인디시즈는 일주일 전인 11월 1일 교체를 예고하면서, 반도체 업종을 더 대표성 있게 담기 위한 조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빈자리를 채운 이름은 엔비디아. 공교롭게도 인텔이 한때 사려다 그만둔 회사였습니다. 2024년 10월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2005년 당시 인텔 최고경영자(CEO)였던 폴 오텔리니는 엔비디아를 200억 달러에 인수하는 안을 이사회에 올렸습니다. 이사회는 그 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9년 뒤, 사지 않기로 했던 그 회사가 사지 않기로 한 쪽을 명단 밖으로 밀어낸 겁니다.
하지만 인텔의 추락을 '인수 한 건 놓친 이야기'로 정리해 버리면 핵심을 비껴갑니다. 인텔이 잃은 건 좋은 매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반도체 공장이라는 지위였죠. 10나노미터 공정 하나가 몇 년씩 밀리는 사이, 설계도 하고 공장도 직접 돌리던 이 회사의 구조는 강점에서 족쇄로 바뀌었습니다. 이야기는 거절의 일화에서 시작하지만, 결국은 공장 이야기입니다.

부품에 이름을 새긴 회사
1990년, 인텔 마케팅 담당자로 앤디 그로브 밑에서 기술 보좌역을 맡고 있던 데니스 카터가 이상한 기획 하나를 들고 나옵니다. 솔트레이크시티 광고회사의 파트너 존 화이트와 함께 짠 기획이었습니다. 소비자는 컴퓨터를 살 뿐, 그 안에 든 칩을 사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 칩에 브랜드를 붙여 보자. 1991년 공식 출범한 '인텔 인사이드'는 부품 회사가 완제품 소비자를 직접 겨냥한 거의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구조가 영리했습니다. 인텔은 자기 로고를 제품과 광고에 붙이는 PC 제조사에 광고비를 보태 줬습니다. 제조사는 공짜로 광고 예산을 늘릴 수 있었고, 인텔은 남의 광고 지면에 자기 이름을 깔 수 있었습니다. 서로 손해 볼 게 없는 거래였죠.
처음 들어간 돈은 2억 5천만 달러. 1992년 말에는 500개가 넘는 PC 제조사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대상이 되는 제조사 광고의 70퍼센트에 인텔 인사이드 로고가 실렸습니다. 컴퓨터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매장에서 그 스티커부터 찾게 됐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축이 맞물립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와 인텔의 x86 프로세서. 업계는 이 짝을 '윈텔'이라고 불렀습니다. x86은 인텔이 만든 명령어 체계, 쉽게 말해 소프트웨어가 칩에게 말을 거는 문법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PC 소프트웨어가 이 문법으로 쓰였습니다. 그러니 PC를 만들려면 x86 칩을 써야 했고, x86 칩을 제대로 만드는 회사는 사실상 인텔뿐이었습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붙잡아 두는 구조. 이것이 인텔의 진짜 성벽이었습니다.
성벽이 높으면 값을 부르는 쪽이 유리합니다. 인텔은 PC 한 대에서 가장 비싼 부품을 공급하면서 가장 높은 이익률을 가져갔습니다. 조립과 유통을 맡은 PC 제조사들이 얇은 마진을 두고 서로 다투는 동안, 인텔은 그 위에서 조용히 돈을 벌었죠.
앤디 그로브가 남긴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은 이 시기 인텔의 사내 문화를 대표하는 문장이 됐습니다. 그 편집증이 실제로 드러난 모습은 하나였습니다. 경쟁사의 추격을 공정 기술로 따돌리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걸 떠받친 건 공장이었습니다. 인텔은 설계만 잘하는 회사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시대 어느 회사보다 작은 트랜지스터를, 더 싸게, 더 많이 찍어 내는 회사였습니다. 경쟁사가 비슷한 설계를 들고 와도 인텔 공정에서 나온 칩이 더 빠르고 전력을 덜 먹었습니다.
설계가 비슷하면 공장에서 이긴 쪽이 제품에서도 이깁니다. 인텔의 전성기는 마케팅의 승리로 기억되지만, 실제로는 제조의 승리였습니다. 그래서 공장이 흔들리자 모든 것이 함께 흔들렸습니다.
공장이 있는 회사, 공장이 없는 회사
반도체 회사를 가르는 가장 쉬운 기준은 공장이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설계부터 생산, 검사, 포장, 판매까지 한 회사가 다 하는 방식을 종합반도체기업, 영어 약자로 IDM이라고 부릅니다. 인텔은 교과서적인 IDM이었고,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한 울타리 안에서 설계팀과 공정팀이 매일 얼굴을 맞대고 칩을 다듬을 수 있다는 것, 이 방식의 가장 큰 장점이죠.
반대편에는 공장을 아예 두지 않는 회사가 있습니다. 설계와 소프트웨어만 하고 생산은 남에게 맡기는 '팹리스'입니다. 팹(fab)은 공장, 리스(less)는 없다는 뜻. 엔비디아와 퀄컴, AMD, 애플의 칩 부문이 모두 팹리스입니다.
공장을 짓지 않으니 막대한 설비 투자 부담이 없습니다. 설계만 좋으면 좋은 공장을 골라 쓰면 됩니다. 대신 생산 능력은 남의 사정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생산을 맡아 주는 곳이 파운드리, 남의 설계도를 받아 칩만 찍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위탁생산 전문 업체입니다. 이 사업 모델을 만든 회사가 1987년 대만에서 세워진 TSMC입니다. TSMC는 자기 브랜드 칩을 팔지 않습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으니 애플도 엔비디아도 안심하고 설계도를 넘길 수 있었죠.
세계의 팹리스 회사들이 한 공장으로 몰리면, 그 공장은 누구보다 많은 물량을 다루게 됩니다. 그리고 물량이 많을수록 공정은 더 빨리 좋아집니다.
1990년대에는 IDM이 압도적으로 유리했습니다. 공정 기술의 선두는 인텔이었고, 바깥의 어떤 공장도 인텔의 공장을 따라오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 구조에는 숨은 조건이 하나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 공장이 세계 최고'라는 전제가 깨지면, 한 몸이라는 장점이 고스란히 약점이 된다는 것.
팹리스는 공장이 말을 안 들으면 공장을 바꾸면 됩니다. IDM은 그럴 수 없습니다. 공정이 늦으면 제품이 함께 늦고, 제품이 늦으면 공장을 채울 물량이 줄고, 물량이 줄면 공정을 개선할 돈과 데이터도 함께 줄어듭니다. 한번 걸려들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고리입니다.
2005년, 인텔이 고개를 저은 순간들
시계를 2005년으로 돌려 봅니다. 그해 애플은 매킨토시의 심장을 IBM·모토로라 계열의 파워PC에서 인텔 칩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합니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무대에서 알린 이 전환은 2006년에 마무리됐고, 이후 오랫동안 맥 안에는 인텔 칩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니 2005년과 2006년의 애플과 인텔은 사이가 아주 좋았습니다. 바로 그 무렵, 애플이 또 다른 기기에 들어갈 칩을 두고도 인텔을 찾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1차 근거는 2013년 5월, 퇴임을 앞둔 오텔리니가 미국 잡지 애틀랜틱과 한 인터뷰입니다. 그에 따르면 애플이 관심을 보인 칩이 하나 있었고, 애플이 지불하겠다는 가격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거기서 5센트도 더 낼 생각이 없었고, 그 가격은 인텔이 예상한 원가보다 낮았다고 합니다.
이 일화를 유명하게 만든 건 그가 덧붙인 한 문장입니다. 예상 원가는 틀렸고, 물량은 누가 생각했던 것보다 100배였다.
다만 여기서 선을 하나 그어 둬야 합니다. 가격과 물량에 관한 저 말은 오텔리니 본인이 8년쯤 지나 회고한 내용입니다. 애플 쪽이 당시 협상 조건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고, 거절된 칩이 정확히 어떤 제품용이었는지도 인터뷰에서 또렷하게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인텔이 아이폰 칩 공급을 거절했다'는 문장은 널리 퍼졌습니다. 하지만 확인된 사실은, 전직 최고경영자가 가격 때문에 큰 기회를 놓쳤다고 스스로 회고했다는 데까지입니다. 그 선 밖은 '그렇게 전해지는 이야기'로 두는 편이 정확합니다.
같은 2005년, 또 하나의 선택이 있었습니다. 앞서 본 뉴욕타임스 보도대로, 오텔리니가 밀었던 200억 달러짜리 엔비디아 인수안을 이사회가 받아들이지 않은 일입니다. 당시 인텔 안에도 그래픽 칩이 훗날 데이터센터의 핵심 부품이 될 수 있다고 본 사람들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인텔은 대신 자체 그래픽 프로젝트 '라라비'를 택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사람은 훗날 최고경영자가 되는 팻 겔싱거였죠. 라라비의 상용 제품 계획은 2009년에 접혔습니다.
비껴간 기회는 한 번 더 있습니다. 로이터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2017년과 2018년 사이 오픈AI와 여러 차례 협력을 논의했지만, 당시 비영리 연구조직이던 오픈AI에 투자하는 안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화를 늘어놓다 보면, 인텔의 추락이 회의실에서 몇 번 잘못 내린 결정 때문이었다는 결론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가 실제로 무너진 곳은 회의실이 아니라 공장 안이었습니다. 이제 그 공장으로 들어가 봅니다.
시계처럼 돌던 리듬이 멈추다
인텔에는 '틱톡'이라는 개발 리듬이 있었습니다. 한 해는 공정을 더 미세하게 줄이고, 다음 해는 그 공정 위에서 설계를 바꾸는 식으로 2년마다 한 세대씩 나아가는 방식입니다. 시계처럼 정확했습니다. 경쟁사는 인텔의 다음 제품을 뻔히 예측하면서도 따라잡지 못했죠.

공정의 세대는 보통 나노미터 숫자로 표시합니다. 숫자가 작아질수록 트랜지스터를 더 촘촘히 넣을 수 있어, 같은 면적에서 성능과 전력 효율이 함께 좋아집니다.
인텔은 14나노 공정까지 이 리듬을 지켰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10나노로 만들 첫 제품군, 코드명 캐넌레이크는 처음엔 2015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가 2016년으로 밀렸습니다. 다음 목표는 2018년. 2017년 초 전시회에서 인텔은 캐넌레이크가 들어간 노트북을 보여 주면서도, 제품 출시는 빠르면 2018년이라고 했습니다. 한 세대가 통째로 공중에 뜬 겁니다.
2018년 초, 인텔은 전년 말부터 모바일용 캐넌레이크 출하를 시작했고 그해 생산을 늘리겠다고 밝힙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실적 발표에서 10나노 출하는 소량에 그쳤다고 인정하고, 본격 양산을 2019년으로 미뤘습니다. 7월에는 그 시점을 다시 2019년 2분기 후반으로 늦췄습니다.
그사이 실제로 시장에 나온 10나노 제품은 2018년 5월 출시된 코어 i3-8121U, 단 한 종이었습니다. 한 세대를 대표해야 할 공정이 모델 하나로 연명한 셈입니다.
그 한 종의 운명도 상징적입니다. 이 칩은 레노버 노트북 한 모델과 인텔 자사 소형 PC에만 들어갔고, 내장 그래픽은 양산품에서 아예 작동하지 않는 상태로 출하됐습니다. 2021년 7월 인텔은 리눅스 드라이버에서 이 세대의 그래픽 지원을 빼겠다고 밝혔는데, 내장 그래픽이 켜진 양산품이 없었다는 사실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었죠.
단종 공지는 2019년 10월에 나왔습니다. 이 칩과 해당 소형 PC의 주문은 2019년 12월 말에, 출하는 2020년 2월 말에 끝났습니다.
이 지연이 치명적이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10나노가 밀리는 동안 인텔은 14나노 공정을 거듭 고쳐 쓰며 제품을 냈습니다. 같은 공정에서 설계를 조금씩 손보는 것만으로는 성능이 크게 오르지 않습니다. 반면 경쟁 진영은 더 미세한 공정으로 넘어가며 성능과 전력 효율을 함께 끌어올렸습니다.
2년마다 한 세대씩 전진하던 회사가 4년 넘게 같은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사이 벌어진 격차는 제품 한두 개로 메울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인텔이 멈춘 사이, 대만의 공장은 달렸다
인텔이 10나노와 씨름하던 바로 그 시기, TSMC는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7나노 공정이 2018년에 양산에 들어갔고, 5나노가 2020년, 3나노가 2022년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회사마다 공정 이름에 붙이는 숫자 체계가 달라서 단순 비교는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도 흐름의 방향만큼은 분명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공정 기술의 선두였던 회사는 뒤로 처지고, 남의 칩을 찍어 주던 회사가 앞으로 나섰습니다.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쪽은 AMD였습니다. AMD는 한때 자기 공장을 가진 IDM이었지만, 2009년에 생산 부문을 떼어 내고 팹리스가 됐습니다. 공장을 포기한 그 결정은 당시엔 후퇴처럼 보였죠.
그런데 TSMC의 7나노 공정이 열리자, AMD는 설계도만 들고 그 공장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4나노에 묶인 인텔의 칩과 7나노에서 찍어 낸 AMD의 칩이 같은 매대에 나란히 놓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꿈쩍 않던 구도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숫자로 보면 변화는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진행됐습니다. 시장조사업체 머큐리리서치 집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데스크톱 PC용 프로세서 출하량에서 AMD의 비중은 약 36퍼센트였습니다. 1년 전 27퍼센트에도 못 미치던 데서 크게 오른 숫자입니다.
노트북용은 26퍼센트, 서버용은 28.8퍼센트였습니다. 서버에서 인텔은 71퍼센트대를 지켰습니다. 그래도 한때 서버 시장을 사실상 혼자 가졌던 회사가, 10년 사이 경쟁자에게 3분의 1 가까이를 내준 셈입니다.
여기서 IDM 구조의 비용이 드러납니다. 공장은 한번 지으면 막대한 돈이 묶이고, 가동률이 떨어지면 그 자체로 거대한 적자를 만듭니다. 팹리스는 불황에 주문을 줄이면 그만이지만, IDM은 공장을 멈출 수 없습니다. 공정이 늦어 제품이 안 팔리는 시기에도 공장 유지비는 그대로 나가고, 그 돈은 다음 세대 공정을 개발할 재원에서 빠져나갑니다.
결국 인텔은 자사 일부 소비자용 제품의 핵심 부분을 TSMC에 맡겨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공장을 가졌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온 회사가, 제품 경쟁력을 지키려고 바깥 공장을 빌려 쓰게 된 것입니다.
애플이 떠난 날, 성벽에 금이 가다
2020년 6월 22일, 애플은 맥의 프로세서를 자체 설계 칩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년 안에 전환을 마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같은 해 11월 10일, 첫 자체 칩 M1이 공개됐습니다.
전환의 마침표는 2023년 6월 5일, M2 울트라를 넣은 맥 프로 발표였습니다. 그날 애플은 마지막 인텔 맥을 단종시켰습니다. 2006년에 시작된 인텔과 맥의 동거가 17년 만에 끝난 겁니다.
애플이 떠나서 아팠던 건 매출 규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맥은 전 세계 PC 시장에서 비중이 큰 편이 아니니까요. 진짜 아픈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애플이 자체 설계하고 TSMC 공정으로 찍어 낸 칩을 넣은 노트북이, 같은 시기 인텔 칩 노트북보다 전력을 덜 쓰면서 더 오래 버텼던 겁니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차이였습니다. 인텔의 공정이 뒤처졌다는 사실을 이보다 알기 쉽게 보여 준 전시물은 없었습니다.
더 중요한 건 x86이라는 성벽에 금이 갔다는 점입니다. 애플은 설계 체계를 Arm 계열로 바꾸면서도 소프트웨어 호환 문제를 스스로 풀어냈습니다. x86이 아니어도 쓸 만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증명되자, 다른 회사들도 같은 길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머큐리리서치 추정으로 2025년 4분기 PC용 프로세서에서 Arm 계열 비중은 13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서버 쪽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형 클라우드 업체들이 직접 칩을 설계해 파운드리에 맡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텔에게 이들은 최대 고객이면서 동시에 경쟁자가 됐습니다.
부품을 사는 쪽이 부품을 만들 능력을 갖추면, 공급업체의 가격 결정력은 빠르게 줄어듭니다. 가장 까다로운 고객이 가장 먼저 떠났고, 그 고객과 함께 'x86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전제도 무너졌습니다.
AI라는 두 번째 파도
인텔이 공정 지연에 발이 묶여 있던 사이, 반도체 시장의 무게중심이 옮겨 갔습니다. 대규모 인공지능(AI)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단순한 계산을 동시에 엄청나게 많이 처리해야 합니다. 이런 일에는 CPU(중앙처리장치)보다 그래픽 칩 계열의 구조가 훨씬 잘 맞습니다.
엔비디아는 여기에 CUDA라는 소프트웨어 환경을 오래전부터 붙여 두었습니다. 연구자들이 CUDA 위에서 코드를 쓰기 시작하자, 칩만 똑같이 만들어서는 그 생태계를 대체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인텔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2009년에 접은 라라비 이후에도 AI 칩 회사들을 사들였습니다. 2016년에 너바나시스템즈와 모비디우스를, 2019년에는 이스라엘의 하바나랩스를 20억 달러 규모에 인수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에는 너바나 계열 제품 개발을 접고 하바나 쪽에 힘을 싣는 등 방향이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인수는 많았고, 축은 자주 흔들렸습니다.
하바나에서 나온 가우디 계열 가속기는 지금도 팔리고 있지만, 대규모 학습 클러스터에서 의미 있는 점유율은 얻지 못했습니다. 이후 데이터센터용으로 준비하던 팰컨쇼어스는 상용 출시가 취소됐습니다.
2026년 기준으로 인텔이 내세우는 다음 카드는 데이터센터 GPU '크레센트아일랜드'입니다. 학습을 마친 AI가 실제로 답을 내놓는 추론 작업에 초점을 맞춘 제품으로, 2026년 하반기에 고객 샘플을 공급할 예정입니다. 랙 단위 제품인 재규어쇼어스는 2027년 이후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문제의 뿌리는 같습니다. AI 가속기 경쟁은 설계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최신 공정에서 거대한 칩을 수율 좋게, 즉 불량 없이 많이 뽑아내야 하고, 메모리를 층층이 쌓아 붙이는 고급 패키징도 안정적으로 돌려야 합니다. 공정 일정이 흔들리는 회사가 이 경쟁에 제때 뛰어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인텔이 AI 흐름에서 밀린 건 유행을 못 읽어서라기보다, 유행을 따라갈 제조 체력이 그 시점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사실에 가깝습니다.
배당이 끊긴 날, 명단에서 빠진 날
2024년 8월 1일 장 마감 후, 인텔은 실적 전망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밝히면서 대규모 감원 계획을 함께 내놓았습니다. 전체 인력의 약 15퍼센트를 줄이고, 배당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다음 거래일인 8월 2일, 주가는 26퍼센트 급락했습니다.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하루 낙폭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인텔 주식을 들고 있던 투자자들에게 배당은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를 설명해 주던 요소였는데, 그게 사라진 겁니다.
그해 숫자는 더 무거웠습니다. 2025년 1월 말 발표된 2024년 연간 실적에서 인텔의 매출은 531억 달러로 2퍼센트 줄었습니다. 인텔에 귀속되는 순손실은 188억 달러, 주당 4.38달러였습니다.
특히 눈에 띈 건 파운드리 부문입니다. 매출 175억 달러에 영업손실 134억 달러. 공장을 돌리는 쪽이 회사 전체의 손실을 키우는 구조가 재무제표에 그대로 찍힌 셈입니다.
그 사이 11월 1일, S&P 다우존스 인디시즈는 11월 8일 개장 전부터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서 인텔을 빼고 엔비디아를 넣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같은 발표에서 셔윈윌리엄스가 다우를 대체했고, 다우존스 공공사업 평균지수에서는 비스트라가 AES를 대체했습니다.
지수 편출입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지수의 대표성을 맞추는 작업입니다. 그래도 1999년부터 25년 동안 그 명단에 있던 이름이 빠지는 일은 상징의 무게가 다릅니다.
여기서 개인투자자가 자주 오해하는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지수에서 빠진다고 회사가 끝났다는 선언은 아닙니다. 지수에 들어간다고 회사가 안전해졌다는 보증도 아니고요. 다우지수는 30개 종목으로 미국 산업의 얼굴을 보여 주려는 지수이고, 편출입은 그 얼굴을 다시 그리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인텔 주가는 제외 이후에도 계속 움직였습니다. 그 움직임을 결정한 건 지수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경영진도 바뀌었습니다. 2021년 2월 취임해 공장 중심의 재건을 밀어붙였던 팻 겔싱거의 퇴임이 2024년 12월 초 발표됐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데이비드 진스너와 제품 부문 책임자 미셸 존스턴 홀트하우스가 공동 임시 최고경영자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12일,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오래 일한 립부 탄이 새 최고경영자로 발표됐습니다. 그는 3월 18일 취임했습니다.
공장을 떼어 내고, 사람을 줄이고, 정부가 주주가 되다
구조를 바꾸는 작업은 이미 시작돼 있었습니다. 2024년 9월 16일, 겔싱거는 사내 메모에서 파운드리 사업부를 별도 자회사로 세우겠다고 밝혔습니다.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참여하는 자체 이사회를 두고, 외부 자금을 직접 끌어올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당시 보도에서는 이 자회사를 나중에 따로 상장하는 선택지도 검토 대상으로 거론됐습니다. 설계 부문과 공장 부문을 갈라, 공장 쪽이 외부 고객과 외부 돈을 받기 쉽게 만들겠다는 뜻이었죠.
2025년에는 감원과 투자 축소가 이어졌습니다. 그해 7월 인텔은 연말까지 핵심 인력을 7만 5천 명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밝히고, 독일과 폴란드에서 추진하던 공장 계획을 취소했습니다.
1년 반 전만 해도 공장을 더 짓겠다던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이 발표는 전략 수정이라기보다 자금 사정에 대한 고백에 가까웠습니다. 반도체 공장은 결심만으로 서지 않습니다.
가장 이례적인 일은 2025년 8월에 벌어졌습니다. 8월 22일, 미국 정부가 인텔 주식 4억 3,330만 주를 주당 20.47달러, 총 89억 달러에 인수한다는 내용이 발표된 겁니다. 지분율은 약 9.9퍼센트였습니다.
이 돈은 새로 편성한 예산이 아니었습니다. 반도체법에 따라 인텔에 배정됐지만 아직 지급되지 않은 보조금 57억 달러, 그리고 국방 관련 보안 생산 프로그램으로 책정된 32억 달러를 합친 것이었습니다. 보조금을 현금으로 주는 대신 지분으로 받아 간 셈입니다.
조건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정부는 이사회 자리나 경영에 관여할 권한이 없는 수동적 주주로 참여합니다. 주주 승인이 필요한 사안에서는 일부 예외를 빼고 이사회와 같은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장치 하나가 붙었습니다. 인텔이 파운드리 사업 지분을 51퍼센트 이상 보유하지 않게 되면, 정부는 주당 20달러에 5퍼센트를 더 사들일 수 있는 5년 만기 신주인수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신주인수권이란 정해진 값에 새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입니다. 파운드리를 완전히 떼어 내는 선택에 가격표를 붙여 둔 셈이죠.
민간 자금도 들어왔습니다. 2025년 엔비디아가 50억 달러를 투자하며 제품 협력을 함께 발표했고, 소프트뱅크도 20억 달러를 넣었습니다. 20년 전 인수를 검토했던 상대에게서 돈을 받는 구도가 된 겁니다.
이런 투자가 인텔의 기술을 당장 좋아지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다만 미국 안에 최신 공정 공장을 가진 회사가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정부와 민간이 함께 서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2026년, 모든 것이 걸린 공정 하나
2026년 10월 현재, 인텔의 거의 모든 것은 18A라는 공정에 걸려 있습니다. 18A는 '리본펫'이라는 새 트랜지스터 구조와, 칩 뒷면에서 전원을 공급하는 '파워비아' 기술을 함께 쓴 공정입니다.
2025년 10월에 대량 생산 단계에 들어갔지만, 수율은 아직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 아래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 데이비드 진스너는 원가 목표를 달성하는 시점을 빠르면 2026년 말로 이야기했습니다.
18A로 만든 첫 소비자용 제품은 2026년 초 전시회에서 공개된 코어 울트라 시리즈 3, 코드명 팬서레이크입니다. 인텔은 200개가 넘는 시스템 설계가 진행 중이며, 이전 세대보다 다중 작업 성능이 최대 60퍼센트 좋아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수치는 인텔 자체 측정치입니다.
서버용 첫 18A 제품인 클리어워터포레스트는 2026년 초에 소개돼 그해 안에 출하될 예정이며, 최대 288개의 효율 코어를 담습니다. 데스크톱용 노바레이크는 2027년으로 밀릴 가능성이 거론됩니다.
파운드리 부문의 숫자는 나아지고 있지만 갈 길이 멉니다. 2026년 2분기 파운드리 매출은 58억 달러로, 1년 전 44억 달러보다 늘었습니다. 영업손실은 32억 달러에서 21억 달러로 줄었습니다.
영업이익률도 마이너스 71.7퍼센트에서 마이너스 36.2퍼센트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외부 고객에게서 나온 매출은 2억 9,300만 달러에 그쳤습니다. 개선의 대부분은 인텔이 자기 제품을 자기 공장에 맡긴 결과라는 뜻입니다.
파운드리 사업의 성패는 결국 외부 고객에 달려 있습니다. 다음 세대 공정인 14A는 빛으로 회로를 새기는 값비싼 최신 노광 장비를 쓰는데, 인텔은 이 공정의 대량 생산 시점을 2028년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2026년에 확인된 외부 고객 사례로는 보안 장비 업체 포티넷이 인텔 4 공정으로 전용 프로세서를 만드는 건이 있습니다. 4월에는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실적 발표에서, 텍사스에 추진하는 대형 AI 칩 생산 단지에 인텔 14A를 쓸 계획이라고 말한 것이 로이터를 통해 보도됐습니다. 다만 인텔이 14A의 외부 고객 이름을 공식적으로 확정해 밝힌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2026년의 인텔을 읽는 틀은 단순합니다. 공정 일정을 지키는가. 수율이 원가 목표에 닿는가. 외부 고객이 실제 계약으로 들어오는가. 셋 다 분기마다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이고, 홍보 자료의 형용사와는 성질이 다릅니다.
반도체 업황을 지켜보는 한국 투자자에게 인텔이 흥미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회사의 분기 보고서는 공정 경쟁이 실제로 어떻게 돈이 되는지, 혹은 왜 돈이 되지 않는지를 가장 날것으로 보여 줍니다.
사람의 오판이었나, 구조의 한계였나
인텔이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된 답이 없습니다. 한쪽은 경영 판단을 봅니다. 아이폰 칩을 가격 때문에 놓쳤다는 회고, 200억 달러에 엔비디아를 사자는 안이 이사회에서 막혔다는 보도, 오픈AI 투자를 지나쳤다는 이야기가 이 주장의 재료입니다. 여기에 단기 재무 성과를 앞세운 경영이 길게 봐야 하는 공정 개발 투자를 눌렀다는 비판이 덧붙습니다.
다른 쪽은 제조 기술의 구조적 한계를 봅니다. 10나노 세대에서 인텔은 한 세대에 너무 많은 신기술을 한꺼번에 넣으려 했고, 그중 어느 하나가 어긋나자 전체가 멈췄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거론됩니다. 최신 노광 장비를 들이는 시점에 대한 판단, 그리고 규모의 문제입니다. 세계의 거의 모든 팹리스 물량을 받아 공정을 담금질하는 파운드리의 학습 속도를, 혼자서는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죠. 이 시각에서 보면 인텔의 실패는 누군가의 오판이 아니라 IDM이라는 방식의 한계입니다.
사실 두 설명은 서로 엮여 있습니다. 공정이 늦어 제품이 약해지고, 제품이 약해 현금이 줄고, 현금이 줄어 다음 공정 투자가 눌리고, 투자가 눌려 공정이 또 늦어집니다. 논쟁의 실질은 이 고리를 어디서 끊었어야 했느냐입니다.
경영 판단을 보는 쪽은 고리에 들어가기 전에 방향을 틀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합니다. 구조를 보는 쪽은 일단 고리에 들어선 뒤에는 어떤 경영자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비슷한 사례를 떠올리는 분도 많을 겁니다. 필름 시장을 지배하다 디지털로 넘어가지 못한 코닥, 휴대폰 1위에서 스마트폰 시대에 밀려난 노키아, 쿼츠 기술에 흔들린 1970년대 스위스의 기계식 시계 산업.
그러나 인텔의 사정은 이 셋과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인텔은 시장의 변화를 몰라서 밀린 게 아닙니다. 변화를 알면서도, 그 변화를 따라갈 공장을 제때 만들지 못했습니다. 기술 방향을 잘못 짚은 게 아니라 실행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이 사례는 따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8A와 14A가 일정과 수율을 지켜 내고 외부 고객이 들어온다면, 인텔의 지난 10년은 뼈아픈 지연으로 기록될 겁니다. 그렇지 못하면 같은 10년이 IDM 방식의 종착점으로 기록되겠죠. 결론은 앞으로 몇 년 동안의 분기 보고서들이 쓰게 될 것입니다.
스티커 한 장에서 시작된 회사가 남긴 것
이 이야기에서 가져갈 것이 하나 있다면, 성벽의 정체를 헷갈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인텔의 성벽은 브랜드도, x86이라는 이름도 아니었습니다. 2년마다 한 세대씩 공정을 전진시키는 실행 능력이었습니다.
브랜드와 표준은 그 실행 능력이 낳은 결과물이었고, 실행이 멈추자 결과물도 빠르게 빛을 잃었습니다. 어떤 기업의 경쟁력을 볼 때는 그 회사가 가진 것보다 그 회사가 반복해서 해내는 일을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속도도 생각해 볼 대목입니다. 인텔의 추락은 하루짜리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에 밀린 일정이 2018년의 제품 공백으로, 2020년의 고객 이탈로, 2024년의 적자와 지수 제외로 이어졌습니다. 거의 10년이 걸렸죠.
뉴스 한 건으로 모든 게 뒤집히는 일은 드뭅니다. 정말 중요한 변화는 대개 몇 년에 걸쳐, 작은 일정 지연의 모습으로 먼저 나타납니다. 실적 발표에서 숫자보다 일정 이야기를 먼저 보는 습관이 도움이 되는 이유입니다.
지수와 명단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우지수든 다른 어떤 지수든, 명단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이 그 회사의 미래를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인텔은 25년 동안 그 명단의 한 줄이었고, 그 25년의 후반부 내내 문제가 쌓이고 있었습니다.
반대로 명단에서 빠진 뒤에도 기업은 계속 존재하고 사업을 합니다. 명단은 과거를 요약하는 도구입니다. 투자자가 알고 싶은 건 대개 앞일이고요.
반도체 업황을 읽는 틀도 다시 볼 만합니다. 반도체는 하나의 산업이 아니라 설계, 생산, 장비, 소재, 메모리가 저마다 다른 주기로 움직이는 묶음입니다. 인텔의 부진은 반도체 전체의 부진이 아니었고, 같은 기간 파운드리와 가속기 쪽은 오히려 커졌습니다.
어떤 뉴스가 반도체에 좋다, 나쁘다고 말할 때 그 안에서 누가 설계하고 누가 찍어 내고 누가 장비를 파는지 갈라 보는 것만으로도 판단은 훨씬 정확해집니다.
인텔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이 글은 어떤 종목을 사거나 팔라는 이야기가 아니며, 지나간 주가의 흐름도 그저 기록으로만 적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30년 가까이 세상의 거의 모든 컴퓨터 안에 이름을 넣었던 회사도, 공장 하나의 일정이 밀리는 동안 그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
어떤 성벽도 매일 쌓지 않으면 무너집니다. 1991년 스티커 한 장으로 시작한 이 회사가 2024년 11월에 남긴, 가장 값비싼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