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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땅을 팔면 미국을 산다던 시절

1989년 12월 29일, 도쿄증권거래소의 그해 마지막 거래일. 닛케이225 지수는 38,915.87로 장을 마쳤습니다. 장중에는 38,957.44까지 올랐습니다. 그날 도쿄의 증권사 객장에서는 내년이면 지수가 4만을 넘고, 머지않아 5만에 닿을 거라는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오갔습니다.

그 숫자를 다시 보기까지 34년 2개월이 걸렸습니다. 닛케이가 1989년 마지막 종가를 넘어선 건 2024년 2월 22일, 39,098.68로 마감한 날이었습니다. 그사이 1989년의 그날 태어난 아이는 서른네 살이 됐습니다.

도쿄증권거래소 건물 바깥 모습
도쿄증권거래소 건물 외관.Syced · CC0 · 위키미디어 공용

한 나라를 대표하는 주가지수가 한 세대를 통째로 건너뛰는 일은 흔하지 않습니다. 그 34년 동안 일본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앞의 몇 해 동안 대체 얼마나 올랐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 길을 따라가 보면 자산 가격이라는 것의 성격이 꽤 또렷하게 보입니다.

엔화를 비싸게 만든 한 번의 회의

시작은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선진 5개국 재무장관 회의였습니다.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을 위해, 달러 가치를 낮춰 미국의 수출을 살리자는 합의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입니다. 달러가 싸진다는 말은 곧 상대편인 엔화가 비싸진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합의 뒤 엔화 가치는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엔이 비싸지면 일본 제품의 달러 가격이 올라 수출이 어려워집니다. 수출로 먹고살던 일본 경제에 급브레이크가 걸린 셈이었죠. 일본은행은 경기를 떠받치려고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1월부터 1987년 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재할인율이 5.0퍼센트에서 2.5퍼센트로 내려갔습니다. 당시로서는 기록적으로 낮은 수준이었습니다. 수출로 빠져나갈 길이 좁아진 돈은 나라 안에 고였습니다. 그 돈이 향한 곳은 땅과 주식이었습니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관행이 기름을 부었습니다. 은행은 담보로 잡은 땅값의 일정 비율까지 대출을 내줬습니다. 땅값이 오르면 담보 가치가 오르고, 대출 한도가 늘어납니다. 늘어난 대출로 다시 땅을 사면 땅값은 또 오릅니다. 가격이 오르는 이유가 '오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되는 고리가 만들어진 겁니다.

황궁 땅이 캘리포니아보다 비싸다는 계산

1980년대 후반 도쿄 땅값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비유가 있습니다. 도쿄 한복판의 황궁 부지, 넓이로 치면 1.15제곱킬로미터인 그 땅 한 덩어리의 값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전체 부동산보다 비싸다는 추산이었습니다. 일본 땅값을 다 합치면 미국 전체 땅값의 몇 배가 된다는 계산도 돌았습니다.

도쿄 황궁의 모습
도쿄 한복판에 자리한 황궁.Stefano Vigorelli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물론 이런 비유는 꼼꼼한 감정평가라기보다, 당시 공시지가와 실거래가를 넓이에 단순히 곱해 나온 숫자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핵심입니다. 그냥 곱했을 뿐인데 그런 숫자가 나온다는 것. 그 자체가 가격이 현실에서 얼마나 멀리 떠나 있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생활 속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골프장 회원권이 억 단위로 거래됐습니다. 기업들은 본업과 상관없는 부동산과 주식 투자로 이익을 냈고, 일본에서는 이를 '재테크'라고 불렀습니다. 제조업 회사가 물건을 팔아 번 돈보다 자산을 굴려 번 돈이 더 많은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일본 기업들은 바다 건너로도 나갔습니다. 뉴욕의 상징적인 건물 지분과 캘리포니아의 유명 골프장이 일본 자본에 넘어가자 미국 언론이 술렁였습니다. 일본에서는 이것이 국력의 증거로 읽혔습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건 국력이라기보다, 싼 돈이 잠시 만들어 낸 구매력이었습니다.

브레이크를 세게 밟은 사람들

금리 인상은 1989년 5월에 이미 시작돼 있었습니다. 재할인율은 그달 2.5퍼센트에서 3.25퍼센트로 올랐고, 10월에 3.75퍼센트, 12월에 4.25퍼센트가 됐습니다.

그해 12월 일본은행 총재에 오른 미에노 야스시는 자산 가격 급등이 경제를 병들게 한다고 봤습니다. 그는 인상 기조를 더 세게 밀어붙였습니다. 1990년 3월 5.25퍼센트, 그해 8월에는 6.0퍼센트까지 올라갔습니다.

1년 3개월 만에 금리가 2.5퍼센트에서 6퍼센트로 뛴 겁니다.

여기에 대장성이 부동산 대출 총량을 직접 묶는 조치까지 더했습니다. 은행이 부동산 관련 대출을 늘릴 수 있는 속도에 상한을 씌운 것입니다. 담보가 곧 연료였던 시장에서, 연료 공급을 끊어 버린 셈이었습니다.

결과는 곧바로 나타났습니다. 1990년 한 해 동안 닛케이는 39퍼센트 가까이 떨어졌습니다. 1992년 8월 19일 무렵에는 14,338까지 내려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점의 3분의 1을 조금 넘는 수준. 3년도 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 붕괴가 유독 아팠던 건 주식과 부동산이 함께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주식이 빠지면 부동산으로, 부동산이 빠지면 주식으로 피할 곳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두 자산은 은행 대출이라는 한 줄로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담보로 잡은 땅값이 떨어지자, 대출은 그대로 부실이 됐습니다.

좀비 기업과 디플레이션

여기서 일본 특유의 대응이 나옵니다. 부실을 한꺼번에 털어 내면 은행의 자기 자본이 크게 깎입니다. 그래서 은행들은 이미 이자도 못 내는 기업에 돈을 더 빌려주고, 그 돈으로 이자를 내게 하는 방식으로 장부를 버텼습니다.

이렇게 연명하는 기업을 '좀비기업'이라고 부릅니다. 영업으로 번 돈으로는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면서, 계속 대출을 받아 문을 닫지 않는 회사를 말합니다.

좀비기업이 늘면 문제는 그 회사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리됐어야 할 회사가 시장에 남아 가격을 끌어내리고 사람과 설비를 붙들고 있으면, 새로 시작하는 회사가 자리를 잡기 어렵습니다. 은행도 새 사업에 돈을 대는 대신, 기존 부실을 관리하는 데 매달리게 됩니다.

물가도 방향을 틀었습니다. 자산 가격이 무너지자 가계와 기업은 빚 갚기에 매달렸고, 소비와 투자가 함께 줄면서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물가가 내린다는 말은 소비자에게는 반갑게 들립니다. 하지만 빚진 쪽에는 정반대입니다. 갚아야 할 금액은 그대로인데, 돈의 가치는 올라가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기다렸습니다. 내년에 더 싸질 물건을 올해 살 이유가 없고, 내년에 더 쌀 땅을 올해 살 이유도 없습니다. 기다림은 수요를 줄였고, 줄어든 수요는 다시 가격을 눌렀습니다. 1991년부터 2003년까지 일본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14퍼센트에 머물렀습니다.

34년 2개월이라는 시간

정부와 일본은행이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재정을 풀어 공공사업을 벌였고, 금리는 결국 0퍼센트 근처까지 내려갔습니다. 2013년에는 '양적·질적 금융완화'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국채 매입에 나섰고, 2016년에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꺼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 빚은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으로 쌓였습니다.

그사이 주가는 몇 번이나 더 무너졌습니다. 2000년대 초에는 정보기술 거품이 꺼졌고, 2008년에는 세계 금융위기가 덮쳤습니다. 그래서 닛케이의 진짜 바닥은 1992년도, 2003년도 아닌 2009년 3월에 찍혔습니다. 7,054.98. 1989년 고점의 5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숫자였습니다.

회복은 더뎠지만, 오기는 왔습니다. 2024년 2월 22일 닛케이는 39,098.68로 마감하며 34년 2개월 만에 최고치를 새로 썼습니다. 그해 3월 4일에는 4만 선도 넘었습니다. 2026년 9월 현재 지수는 6만 선 위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 회복을 두고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았다'고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지수는 돌아왔지만, 그 34년 동안 일본의 명목 GDP와 실질임금이 걸어온 길은 전혀 다른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꼭대기에서 물린 개인투자자에게 34년은 사실상 평생입니다. 1989년에 마흔 살이던 사람은 지수가 고점을 되찾았을 때 일흔다섯이었습니다. '언젠가는 회복한다'는 말이 위로가 되려면, 그 언젠가가 내 인생 안에 들어와 있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돈보다 시간이었다

일본의 사례를 '어느 나라가 곧 같은 길을 간다'는 예언으로 쓰기에는 조건이 너무 다릅니다. 인구 구조도, 금융 시스템의 생김새도, 시장이 바깥에 열린 정도도 제각각입니다. 다른 나라에 그대로 갖다 붙이는 순간, 이 이야기는 교훈이 아니라 공포를 파는 문구가 돼 버립니다.

그래도 조건과 상관없이 남는 관찰이 몇 가지 있습니다. 자산 가격이 오를 때 사람들은 그 가격을 설명할 이유를 반드시 찾아냅니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국토가 좁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식 경영이 뛰어나다는 믿음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유는 대개 가격이 오른 다음에 만들어지고, 가격이 꺾이면 같은 이유가 조용히 자취를 감춥니다.

빌린 돈으로 산 자산과 내 돈으로 산 자산은, 하락장에서 완전히 다른 물건이 됩니다.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 얼마나 버틸지를 내가 정할 권리부터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나눠 담았다고 믿은 자산들이 같은 대출, 같은 담보로 묶여 있다면 그것은 분산이 아닙니다. 1990년 일본에서 주식과 부동산은 서로 다른 자산이 아니라 한 몸이었습니다.

그리고 회복에 걸리는 시간은 언제나 예상보다 깁니다. 시장이 결국 제자리를 찾는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자주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의 시간을 실제로 견디는 건 지수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이 무서운 건 손실의 크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길이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