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분 만에 사라진 회사, 나이트 캐피털
2026-09-12 · 8분 읽기
2012년 8월 1일 오전 8시 1분, 미국 증권사 나이트 캐피털의 시스템이 이상 징후를 알리는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97통. 그 안에는 파워 페그와 관련된 문구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늘 오는 잡다한 알림처럼 보였으니까요.
오전 9시 30분, 뉴욕 증시가 열렸습니다. 곧바로 시장에 설명하기 어려운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거래가 많지 않던 몇몇 종목이 아무런 뉴스 없이 요동쳤고, 매수와 매도 주문이 초당 수천 건씩 쏟아졌습니다. 어떤 종목은 개장 몇 분 만에 몇십 퍼센트가 튀었다가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시장 참가자들은 누군가 대단한 정보를 쥐고 움직인다고 의심했습니다.

진실은 훨씬 허무했습니다. 한 증권사의 서버 여덟 대 가운데 한 대에 옛날 코드가 남아 있었고, 그 코드가 9년 만에 깨어나 시장을 향해 무의미한 주문을 퍼붓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 45분 동안 회사가 떠안은 손실은 4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미국 상장 주식 거래의 10분의 1가량을 처리하고, 하루에 200억 달러 규모를 주무르던 회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회사는 그날 이후 사실상 독립된 기업으로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나이트 캐피털의 이야기는 금융 사고이면서 동시에 소프트웨어 사고입니다. 누가 거짓말을 하거나 규제를 어긴 게 아닙니다. 다들 하던 대로 일했는데, 지워지지 않은 낡은 코드 한 덩어리가 회사를 하루 만에 끝냈습니다. 자동매매가 기본값이 된 시대에 이 사건이 계속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입니다.
미국 주식 열 주 중 한 주를 처리하던 회사
나이트 캐피털은 1995년 미국 뉴저지에서 출발한 증권사입니다. 주력 사업은 시장조성이었습니다. 시장조성자란 언제든 사자 호가와 팔자 호가를 동시에 내놓고, 그 사이의 작은 차이를 이익으로 가져가는 역할을 말합니다.
개인투자자가 증권사 앱에서 매수 버튼을 누르면, 그 주문은 거래소로 곧장 가지 않고 시장조성자에게 넘어가 체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장이 굴러가게 만드는 배관 같은 존재죠.
2012년 여름의 나이트 캐피털은 그 배관 가운데 가장 굵은 줄기였습니다. 미국 상장 주식 거래량의 10% 안팎을 처리했고, 하루에 오가는 거래 금액은 200억 달러 규모였습니다. 규모만 보면 흔들릴 이유가 없는 회사였습니다.
다만 이 업종의 수익 구조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 건당 이익이 아주 작아서, 돈을 벌려면 어마어마한 건수를 아주 빠르게 처리해야 합니다. 사람이 판단할 틈은 없고, 모든 것은 프로그램이 합니다.
뒤집어 말하면, 프로그램이 잘못 돌아갈 때도 사람이 끼어들 틈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익이 자동으로 쌓이는 구조에서는 손실도 자동으로 쌓입니다.
8월 1일까지 맞추라는 시한
도화선은 뉴욕증권거래소가 새로 도입한 제도였습니다. 소매 유동성 프로그램, 영어 약자로 RLP. 개인투자자의 주문에 조금 더 좋은 가격을 붙여 줄 수 있게 한 장치였습니다. 거래소는 승인을 받아 이 제도를 2012년 8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시장조성자들에게 주어진 준비 기간이 한 달 남짓뿐이었다는 점입니다.
나이트 캐피털도 여기에 맞춰 주문 처리 시스템을 고쳐야 했습니다. 이 회사의 심장은 주문 라우터였습니다. 고객이 넣은 큰 주문 하나를 잘게 쪼개 여러 거래소로 나눠 보내는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기관이 10만 주 매수 주문을 넣으면, 시스템이 이를 수백 개의 작은 주문으로 나눠 보냅니다. 그리고 체결된 수량을 세어 가다가 10만 주를 다 채우면 멈춥니다. 새 제도에 맞춰 이 라우터에 기능 하나를 덧붙이는 것, 그것이 그해 7월의 과제였습니다.
개발자에게는 새 기능을 켜고 끄는 스위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새 스위치를 만드는 대신, 예전에 쓰다가 지금은 쓰지 않는 스위치 자리를 재활용했습니다. 코드를 다루는 현장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안 쓰는 자리이니 문제없으리라 판단한 거죠. 그 낡은 스위치의 이름이 바로 파워 페그였습니다.
파워 페그는 1990년대 말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테스트용 기능이었습니다. 다른 매매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려고 일부러 비싸게 사고 싸게 파는, 즉 손해를 보도록 설계된 코드였습니다. 실제 시장에서는 2003년부터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이 코드를 시스템에서 지우지 않고, 꺼 둔 채로 그냥 놓아두었습니다.
여덟 대 중 한 대
두 번째 씨앗은 그보다 앞서 심어져 있었습니다. 2005년, 회사는 시스템 일부를 정리하면서 체결된 수량을 세어 주문을 멈추게 하는 로직을 다른 모듈로 옮겼습니다. 새 구조에서는 잘 돌아갔지만, 이때부터 파워 페그는 스스로 멈추는 방법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다시 켜진다면, 목표 수량을 채우고도 멈추지 않고 주문을 계속 뿜어낼 상태가 된 겁니다. 아무도 이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꺼져 있는 기능이었으니 확인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2012년 7월 말, 새 코드를 실제 서버에 올리는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주문을 처리하는 서버는 모두 여덟 대. 담당 기술자는 일곱 대에 새 코드를 복사했지만, 한 대를 빠뜨렸습니다.

배포 결과를 자동으로 확인하는 장치도, 다른 사람이 교차 점검하는 절차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여덟 대 가운데 일곱 대는 새 코드로, 한 대는 옛 코드로 돌아가는 상태가 됐습니다.
이 조합이 왜 치명적인지는 8월 1일 아침에 드러납니다. 스위치가 켜지면 새 코드가 올라간 일곱 대는 새 기능을 실행합니다. 그런데 옛 코드가 남은 한 대는 같은 스위치를 전혀 다르게 읽습니다. 그 서버에게 그 스위치는 파워 페그를 켜라는 신호였습니다.
9년 동안 잠들어 있던 코드, 일부러 손해를 보도록 만들어졌고 멈추는 법마저 잃어버린 코드가 깨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경고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앞서 말한 오전 8시 1분의 메일 97통에는 파워 페그와 관련된 문구가 분명히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메일은 긴급 경보로 분류돼 있지 않았고, 받은 사람들도 늘 오는 잡다한 알림쯤으로 넘겼습니다. 회사가 무너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그때부터 한 시간 반이었습니다.
45분 동안 벌어진 일
9시 30분 개장과 함께 고객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문제의 서버로 넘어간 고객 주문은 212건. 정상이라면 이 212건은 잘게 쪼개져 체결되고 끝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파워 페그는 목표를 채웠는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문을 만들고 또 만들었습니다. 초당 수천 건의 주문이 시장으로 쏟아져 나갔습니다.
45분 동안 이 서버는 154개 종목에서 약 3억 9,700만 주를 사고팔았습니다. 체결 건수는 400만 건을 넘었습니다. 문제는 이 매매가 이익을 노린 게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파워 페그는 원래 비싸게 사고 싸게 팔도록 만든 코드입니다. 회사는 45분 내내 자기 돈으로 가장 불리한 가격에 사서 가장 불리한 가격에 되파는 일을 초고속으로 되풀이한 셈입니다.
회사 안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새로 배포한 코드가 문제라고 판단하고, 새 코드를 되돌리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이 조치가 상황을 더 키웠습니다. 멀쩡하던 일곱 대에서도 새 코드가 사라지면서, 그 서버들까지 같은 방식으로 파워 페그를 깨우기 시작한 겁니다.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내린 합리적인 판단이 불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결국 시스템 전체를 시장에서 떼어 내고서야 주문이 멈췄습니다. 그때까지 걸린 시간이 약 45분입니다. 회사는 다음 날 세전 기준 약 4억 4,000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듬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손실 규모를 4억 6,000만 달러 이상으로 기록했습니다. 주가가 폭락한 뒤 회사의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금액이었습니다.
손실이 이토록 빨리 쌓인 이유는 45분 동안 오간 주식 규모를 보면 짐작이 갑니다. 3억 9,700만 주는 평범한 회사라면 몇 달 치 거래량입니다. 그 물량이 전부 자기 계정에서, 최악의 가격으로 오갔습니다. 사람의 실수는 아무리 커도 속도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계의 실수에는 그 한계가 없습니다.
17년을 쌓은 회사, 하루 만에 무너지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8월 1일 나이트 캐피털 주가는 33% 떨어졌고, 다음 날까지 고점 대비 75% 가까이 빠졌습니다.
더 아픈 건 신뢰가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주문을 맡기던 대형 증권사들이 하나둘 거래를 끊었습니다. 시장조성은 자본과 신용으로 하는 사업인데, 회사는 그날 아침 그 둘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자본을 구할 시간은 주말을 낀 며칠뿐이었습니다. 8월 5일과 6일에 걸쳐 제프리스가 주도하고 블랙스톤, 게트코, TD아메리트레이드, 스티펄, 스티븐스가 참여한 투자자 그룹이 4억 달러를 넣기로 합의했습니다.
회사는 파산을 면했지만 대가는 가혹했습니다. 새로 발행된 주식에 기존 주주의 지분은 크게 쪼그라들었고, 회사의 주인은 사실상 바뀌었습니다.
그 뒤는 정리 수순에 가까웠습니다. 2013년 나이트 캐피털은 구조를 짠 투자자 가운데 하나인 게트코와 합병해 KCG 홀딩스가 됐습니다. 그리고 2017년 KCG가 버투 파이낸셜에 인수되면서 나이트라는 이름은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1995년부터 쌓아 올린 17년이 45분 만에 무너졌고, 그 뒤를 정리하는 데 5년이 걸린 셈입니다.
규제 당국의 결론도 나왔습니다. 2013년 SEC는 나이트 캐피털이 시장 접근과 관련한 위험 관리 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며 1,200만 달러의 제재금을 물렸습니다. 당국이 문제 삼은 건 코드의 버그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배포 절차, 경보 체계, 손실 한도를 걸어 두는 안전장치가 회사 규모에 걸맞지 않게 허술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매수 버튼 뒤에 숨은 것들
이 사건이 개인투자자에게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는, 우리가 누르는 매수 버튼 뒤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긴 사슬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문은 증권사와 중개 시스템, 시장조성자, 거래소를 거쳐 체결됩니다. 이 사슬의 어느 한 마디에서 기술적 사고가 나면, 주가는 기업 사정과 아무 상관 없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뉴스도 실적도 없는데 어떤 종목이 개장 직후 이상하게 튀는 날이 있습니다. 그 배경에 이런 종류의 사고가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자동화된 시스템의 사고는 속도도 다릅니다. 사람의 실수는 대개 알아차릴 시간을 남겨 주지만, 프로그램의 실수는 알아차리기도 전에 끝나 있습니다. 나이트 캐피털이 손실을 깨닫고 대응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이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보다 짧았습니다.
알고리즘 매매나 자동 손절 도구를 쓰는 개인투자자라면 참고할 만합니다. 잘 작동할 때가 아니라 잘못 작동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부터 확인해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낡은 것을 방치하는 데에도 비용이 듭니다. 파워 페그는 9년 동안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다들 꺼져 있으니 괜찮다고 여겼고, 지우는 일은 늘 다음 순위로 밀렸습니다. 조직에 쌓인 낡은 규칙과 관행도 대개 그렇게 남습니다. 평소에는 비용이 보이지 않다가, 하필 가장 바쁜 날 청구서가 한꺼번에 날아옵니다.
그리고 규모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미국 주식 거래의 10분의 1을 처리하던 회사가 45분 만에 무너졌습니다. 큰 회사라서 망하지 않는 게 아니라, 큰 회사는 사고가 나면 그 사고가 더 빨리 커질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기업을 볼 때는 얼마나 크고 얼마나 잘 버는지와 함께, 일이 틀어졌을 때 무엇이 그 회사를 붙잡아 줄지를 같이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2년 여름의 45분이 남긴 것은 결국 그 질문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