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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년 회사가 주말 이틀 만에 사라진 이유

2008년 9월 14일 일요일 밤, 맨해튼 남쪽 끝의 뉴욕 연방준비은행 건물. 월가에서 가장 큰 금융회사의 대표들이 이틀째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붙들고 있던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리먼 브라더스를 누가 사 줄 것인가.

답은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새벽 1시 30분, 리먼은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신청서에 적힌 자산은 6,390억 달러, 부채는 6,130억 달러.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파산이었고, 그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뉴욕의 리먼 브라더스 본사 건물
파산 신청 당일인 2008년 9월 15일 뉴욕의 리먼 브라더스 본사.Robert Scoble · CC BY 2.0 · 위키미디어 공용

1850년 앨라배마의 작은 면화 중개상으로 출발해 남북전쟁도, 대공황도, 두 번의 세계대전도 넘긴 회사였습니다. 158년을 버틴 회사가 왜 주말 이틀을 넘기지 못했을까요. 이야기는 그보다 몇 년 앞, 미국의 평범한 주택가에서 시작됩니다.

먼저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리먼의 파산을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정확히는 도화선에 가깝습니다. 불은 이미 2년 전부터 미국 주택시장 밑바닥에서 타고 있었고, 리먼은 그 불길 위에 가장 깊이 발을 담근 회사였을 뿐입니다.

집값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

2000년대 초반 미국 사람들은 한 가지를 굳게 믿었습니다. 집값은 오르기만 한다는 것. 이 믿음이 맞다면 돈을 빌려주는 쪽은 걱정할 게 없습니다. 빌린 사람이 못 갚아도 집을 팔면 원금이 나오니까요. 그래서 은행들은 신용이 나쁜 사람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을 내줬습니다. 우량(프라임)보다 한 단계 아래라는 뜻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라고 불린 대출입니다.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은행들은 이런 대출 수천 건을 한데 묶어 채권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하나하나는 위험해도 수천 건이 한꺼번에 부실해질 리는 없다는 논리였죠. 신용평가사들이 여기에 최고 등급을 붙여 주자 연기금과 보험사, 해외 은행까지 사 갔습니다. 부실 대출이 '안전 자산'이라는 옷을 입고 전 세계로 흩어진 겁니다.

포장은 한 겹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채권들을 다시 묶고 쪼갠 CDO(부채담보부증권)까지 대량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상자 안에 상자가 몇 겹씩 들어가자, 그 속에 어떤 대출이 들었는지 파는 쪽도 사는 쪽도 알 수 없게 됐습니다. 모두가 겉에 붙은 등급 알파벳만 보고 사고팔았습니다.

전제가 무너진 건 2006년 무렵입니다. 집값이 오르기를 멈추고 꺾이자, 압류한 집을 팔아도 원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안전하다던 채권 값이 무너졌고, 2007년에는 이 상품을 잔뜩 쥐고 있던 펀드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습니다. 2008년 3월에는 투자은행 베어스턴스가 쓰러져, 연방준비제도의 지원을 받은 JP모건에 넘어갔습니다. 월가는 조용히 다음 차례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리먼이 가장 깊이 발을 담근 이유

리먼은 이 판에 남들보다 한 발 더 들어가 있었습니다. 2003년과 2004년에 걸쳐 대출을 직접 만들어 내는 회사들을 사들였는데, 그중 하나가 서브프라임 전문업체 BNC 모기지였습니다. 남이 만든 대출을 사다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출을 찍어 내는 공장을 통째로 가진 셈이었죠. 시장이 좋을 때 그 공장은 돈을 찍어 냈고, 시장이 꺾이자 손실을 찍어 냈습니다.

여기에 '레버리지'가 기름을 부었습니다. 지렛대라는 뜻으로, 자기 돈에 빚을 얼마나 얹어 굴리는지를 말합니다. 2007년 11월 리먼의 레버리지는 30.7배였습니다. 자기 돈 1달러로 30달러어치 자산을 굴렸다는 뜻이죠. 이런 구조에서는 자산 가치가 3퍼센트만 떨어져도 자기 돈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2004년에는 23.9배였으니, 위험이 쌓이는 동안 지렛대는 오히려 더 길어진 셈입니다.

쥐고 있던 자산도 위험했습니다. 2007 회계연도 말 리먼이 들고 있던 부동산 관련 자산은 1,110억 달러로, 자기 자본의 네 배가 넘었습니다. 그해 10월에는 비싸게 산다는 신용평가사들의 지적에도 대형 아파트 리츠 아크스톤 인수를 밀어붙였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부동산에서 발을 빼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2008년 6월, 리먼은 상장 이후 처음으로 분기 적자를 냈습니다. 2분기에만 28억 달러. 모기지 관련 자산 등에서 37억 달러를 손실로 털어 낸 결과였습니다. 회사는 곧바로 60억 달러를 새로 끌어왔지만, 시장은 이미 리먼의 장부를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의심할 만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파산 뒤 법원이 선임한 조사관 안톤 발루카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리먼은 분기 결산일마다 자산을 잠깐 장부 밖으로 빼 두는 회계 기법을 썼습니다. 사내에서 '리포 105'라고 불린 거래입니다. 그렇게 결산일 장부에서 사라진 자산은 2007년 4분기 386억 달러, 2008년 1분기 491억 달러, 2분기에는 503억 8천만 달러로 분기마다 불어났습니다. 내부에서도 이를 눈속임, 심지어 끊지 못하는 약이라고 불렀고, 재무 총괄 책임자 마틴 켈리는 이 거래에 실질이 없었다고 진술했습니다.

9월, 마지막 일주일

그해 여름 내내 리먼은 돈을 넣어 줄 상대를 찾아다녔습니다. 그중 하나가 한국산업은행이었습니다. 산업은행이 리먼에 자본을 넣는 협상은 국내에서도 큰 화제였지만, 9월 9일 협상이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날 리먼 주가는 하루 만에 35퍼센트 넘게 빠져 9.10달러가 됐습니다.

이튿날 리먼은 3분기 손실이 39억 3천만 달러에 이르고 56억 달러를 추가로 털어 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주가는 1년 전 고점에서 90퍼센트가 빠져 있었습니다. 회사는 자구책을 내놨지만, 시장이 원한 건 계획이 아니라 당장의 현금이었습니다.

사실 이 무렵 리먼의 목을 조른 건 손실 그 자체보다 돈을 빌리는 방식이었습니다. 투자은행은 매일 시장에서 단기로 돈을 빌려 하루를 넘깁니다. 담보를 맡기고 하룻밤 돈을 빌리는 레포(환매조건부채권) 거래가 대표적입니다. 이 구조는 상대가 계속 빌려줄 때만 굴러갑니다. 거래 상대들이 리먼의 담보를 못 믿겠다며 하나둘 발을 빼자, 리먼은 손실로 쓰러지기 전에 현금이 말라 쓰러지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9월 12일 금요일 저녁,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월가 주요 금융회사 대표들을 뉴욕 연준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요지는 짧았습니다. 정부 돈은 쓰지 않을 테니, 업계가 스스로 해법을 찾으라는 것. 시한은 아시아 시장이 열리는 월요일 아침까지, 주말 이틀이었습니다.

뉴욕 연준에서 보낸 주말 이틀

인수 후보는 둘이었습니다. 미국의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영국의 바클레이스. 토요일 아침 뱅크오브아메리카 실사팀이 결론을 냈습니다. 리먼의 자산이 500억에서 650억 달러가량 부풀려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고경영자 켄 루이스의 판단은 빨랐습니다. 리먼은 어차피 무너지고, 다음 차례는 메릴린치다. 그는 곧장 메릴린치의 존 테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토요일 밤에는 바클레이스 쪽으로 무게가 실렸습니다. 민간 금융회사들이 돈을 모아 500억에서 600억 달러어치 부실 자산을 떠안고, 나머지를 바클레이스가 사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뉴욕 연준이 조건을 하나 달았습니다. 인수가 끝날 때까지 바클레이스가 리먼의 빚을 보증하라는 것. JP모건이 베어스턴스를 살 때와 같은 조건이었습니다.

여기서 바다 건너 영국 법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런 보증을 하려면 주주총회 승인이 필요했고, 절차에만 30일에서 60일이 걸렸습니다. 영국 금융감독청은 이 요건을 면제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일요일 오전 9시 30분, 바클레이스의 존 발리와 로버트 다이아몬드가 폴슨 쪽에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알렸습니다. 영국 재무장관 앨리스테어 달링은 훗날 자신이 이 거래를 막았다며, 영국 납세자에게 미국 은행을 떠받치게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연준이 직접 보증을 서는 방안도 나왔지만 폴슨이 거부했습니다. 수백억 달러를 미국 정부가 떠안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연준 의장 벤 버냉키는 훗날, 리먼에게는 빌려줄 만한 담보가 충분하지 않았고 돌려받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없는 곳에 연준이 돈을 빌려줄 수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리먼의 최고경영자 리처드 펄드는 담보는 충분했다고 반박했습니다.

일요일 밤, 판이 끝났습니다. 같은 날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메릴린치를 주당 29달러에 사기로 합의했고, 리먼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당국은 월요일 개장 전에 파산을 신청하라고 몰아붙였고, 리먼은 새벽 1시 30분에 신청서를 냈습니다. 얄궂게도 뉴욕 연준이 담보 범위를 넓혀 주겠다는 서한을 보낸 것은 그날 아침 7시 45분, 신청이 이미 끝난 뒤였습니다.

파산 다음 날부터 벌어진 일

9월 15일 월요일 아침, 런던과 뉴욕의 리먼 직원들은 상자를 들고 건물을 나섰습니다. 전 세계 직원은 약 2만 6천 명, 계열사와 관계사는 3천 곳 가까이, 돈을 받아야 할 채권자는 93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날 뉴욕 증시는 무너졌습니다. 다우지수가 504포인트, 4.4퍼센트 떨어졌고 S&P 500은 4.7퍼센트, 나스닥은 3.6퍼센트 빠졌습니다. 리먼 주식은 하루 만에 94퍼센트가 사라졌고, 보험사 AIG도 60.8퍼센트 급락했습니다. 2001년 이후 최악의 하루였습니다.

진짜 공포는 이튿날 찾아왔습니다. 9월 16일, 미국의 대표적인 머니마켓펀드 리저브 프라이머리 펀드가 들고 있던 리먼 기업어음 7억 8,500만 달러어치를 가치 없음으로 처리했습니다. 1주당 1달러로 지켜지던 가치가 0.97달러로 떨어졌습니다. 고작 3센트였지만, 머니마켓펀드는 원금이 깨지지 않는 현금 같은 상품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 믿음이 깨지자 돈을 빼려는 사람들이 몰려 자산이 626억 달러에서 353억 달러로 쪼그라들었고, 기업들이 운영자금을 빌리던 단기자금 시장이 얼어붙었습니다.

같은 날 미국 정부는 태도를 바꿨습니다. 연준은 AIG에 최대 850억 달러를 24개월간 빌려주고 그 대가로 지분 79.9퍼센트를 받기로 했습니다. 리먼은 내버려 두고 AIG는 살린 겁니다. AIG가 무너지면 시장 전체가 흔들린다는 이유였지만, 그렇다면 리먼은 무엇이 달랐느냐는 논란은 지금도 이어집니다.

불길은 국경을 넘었습니다. 세계 증시에서 사라진 시가총액은 약 10조 달러, 미국 가계 자산은 석 달 사이 5조 달러가 증발했습니다. 미국 의회는 7,000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 구제 프로그램을 통과시켰고, 리먼의 북미 사업은 결국 바클레이스가 사 갔습니다. 한국도 그해 가을 원화 가치와 주가가 함께 곤두박질치며 여파를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홍콩 거리에 걸린 검은 현수막들
2010년 11월 홍콩 센트럴에 걸린 리먼 브라더스 금융상품 피해 고객들의 현수막.Rengeeluo · CC BY-SA 3.0 · 위키미디어 공용

리먼이 남긴 네 가지 교훈

하나, 지렛대는 양쪽으로 똑같이 움직입니다. 1달러로 30달러를 굴리면 좋을 때 수익은 크게 불어나지만, 나쁠 때 손실도 똑같이 불어납니다. 빚을 얹어 키운 규모는 좋을 때는 실력처럼 보입니다. 나빠지는 순간, 그 규모가 남은 시간을 정합니다.

둘, 장부는 현실을 바꾸지 못합니다. 결산일마다 장부를 가볍게 보이게 한 기법은 실제 위험을 조금도 줄이지 않았습니다. 평온할 때는 아무도 그 차이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하지만 돈줄이 마르면, 상대는 장부가 아니라 담보의 실물을 들여다봅니다.

셋, 망하는 이유와 멈추는 이유는 다릅니다. 리먼은 손실 때문에 망하기 전에, 현금이 말라 먼저 멈췄습니다. 자산이 얼마인지보다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가 생사를 가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넷, 구조의 기준은 생각보다 쉽게 흔들립니다. 베어스턴스는 지원을 받았고, 리먼은 받지 못했고, 하루 뒤 AIG는 받았습니다. 위기 한복판의 결정은 깔끔한 원칙보다 그 순간의 판단과 여론, 법적 제약이 뒤엉킨 결과였습니다.

158년을 버틴 회사가 주말 이틀 만에 사라졌습니다. 누군가 반드시 막아 줄 거라는 믿음이 얼마나 얇은지, 리먼은 그 이틀로 보여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