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 둘이 있던 펀드가 망한 이유
2026-09-11 · 8분 읽기
1998년 9월 23일 오후, 뉴욕 연방준비은행 건물. 월가 주요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들이 한 방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서로 경쟁하느라 한자리에 앉는 일조차 드문 사람들이었죠. 그날 안건은 단 하나였습니다.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있는, 직원 200명 남짓의 헤지펀드 하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회의는 저녁 무렵에야 끝났습니다. 결론은 14개 금융회사가 36억 2,500만 달러를 모아 그 펀드를 떠안는다는 것. 경쟁자들이 함께 지갑을 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 펀드 하나가 쓰러지면 자기들도 함께 다칠 판이었으니까요.
펀드의 이름은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 줄여서 LTCM. 불과 아홉 달 전만 해도 월가에서 가장 존경받던 조직입니다. 운용진 명단에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두 명, 연방준비제도 부의장을 지낸 인물, 채권시장의 전설로 불리던 트레이더가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펀드가 넉 달 만에 46억 달러를 잃고 파산 문턱까지 밀려났습니다.

이 사건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건 손실 규모 때문만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정교한 수학으로, 가장 보수적이라고 믿었던 전략을 쓰다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모자라서 진 게 아니었습니다. 실력이 만들어 낸 확신 때문에 졌습니다.
월가가 드림팀이라 부른 사람들
LTCM은 1994년 2월 존 메리웨더가 세운 헤지펀드입니다. 헤지펀드는 소수의 거액 투자자에게서 돈을 받아 일반 펀드보다 훨씬 자유롭게 굴리는 사모 형태의 투자조합을 말합니다. 규제와 공시 의무가 가벼운 대신, 아무나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메리웨더는 살로먼브라더스 부회장 출신으로, 채권 차익거래 부문을 이끌며 이름을 날린 인물이었습니다.
이 펀드를 특별하게 만든 건 그가 불러 모은 얼굴들이었습니다. 마이런 숄즈와 로버트 머튼. 옵션 가격을 계산하는 블랙-숄즈 모형을 만든 공로로 1997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들입니다. 여기에 연방준비제도 부의장을 지낸 데이비드 멀린스까지 합류했습니다. 학계의 최고봉, 규제 당국의 핵심, 시장의 실전 고수가 한 지붕 아래 모인 셈이죠.

1994년 2월 24일 영업을 시작할 때 모은 자본은 10억 달러를 조금 넘었습니다. 갓 출범한 펀드로서는 당시에도 이례적인 규모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운용 조건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았습니다. 명단에 적힌 이름이면 설명은 충분했으니까요.
성적도 이름값을 했습니다. 1994년 20퍼센트, 1995년 43퍼센트, 1996년 41퍼센트. 1997년에도 17퍼센트를 냈습니다. 주식시장이 좋을 때만 반짝하는 펀드도 아니었고, 수익 곡선은 눈에 띄게 매끄러웠습니다. 1998년 초 LTCM의 자본은 47억 달러로 불어났고, 이 펀드에 돈을 빌려주겠다는 은행들이 줄을 섰습니다.
벌어진 틈은 반드시 좁혀진다는 믿음
LTCM의 주무기는 수렴 거래라고 불렸습니다. 원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성격이 거의 똑같은 두 채권의 가격 차이가 어떤 이유로 평소보다 벌어져 있다고 해 봅시다. 그러면 싼 쪽을 사고 비싼 쪽을 팔아 둡니다. 시간이 지나 차이가 원래대로 좁혀지면, 양쪽에서 이익이 남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미국 국채 가운데 방금 발행된 것과 몇 달 전에 발행된 것은 만기와 신용도가 사실상 같습니다. 그런데 새로 나온 채권은 거래가 활발해서 조금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LTCM은 이런 미세한 차이를 찾아내 양쪽에 반대로 걸어 두고, 틈이 좁혀지기를 기다렸습니다.
오를지 내릴지 방향을 맞히는 도박이 아니었습니다. 두 가격의 관계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데 거는 방식이었죠. 그래서 그들 스스로도 이것을 보수적인 전략이라고 여겼습니다.
문제는 벌이가 너무 잘다는 데 있었습니다. 이런 가격 차이는 대개 소수점 아래에서 움직입니다. 100달러짜리 채권에서 몇 센트를 벌자는 일이니, 자기 돈만으로는 의미 있는 수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LTCM은 빌린 돈을 썼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25배, 그리고 1조 2,500억 달러
레버리지는 자기 돈에 남의 돈을 얹어 더 큰 규모로 투자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익이 나면 그 배수만큼 커지고, 손실이 나도 똑같은 배수로 커집니다. 1998년 초 LTCM의 자본은 47억 달러. 그런데 굴리던 자산은 약 1,290억 달러였습니다. 빌린 돈만 1,245억 달러가 넘었고, 부채 대 자본 비율은 25대 1을 웃돌았습니다.
25배 레버리지가 무슨 뜻일까요. 자산 가격이 4퍼센트만 거꾸로 움직여도 자기 자본이 몽땅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LTCM의 계산으로는, 자신들이 고른 포지션에서 그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극히 낮았습니다. 모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고, 그 모형은 노벨상을 받은 이론 위에 서 있었습니다.
장부에 잡히지 않는 부분은 더 컸습니다. LTCM이 맺어 둔 파생상품 계약의 명목 금액은 약 1조 2,5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명목 금액이란 계약이 기준으로 삼는 기초자산의 총액입니다. 실제로 오가는 돈과는 다르지만, 그 계약이 얼마나 큰 판에 걸려 있는지를 보여 주는 숫자죠. 직원 200명짜리 펀드 하나가 세계 금융시장 곳곳에 이만한 크기의 실을 걸어 두고 있었던 겁니다.
1998년 8월 17일, 모형 밖에서 온 사건
1998년 여름부터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한 해 전 아시아 외환위기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LTCM은 5월에 6.42퍼센트, 6월에 10.14퍼센트의 손실을 냈습니다. 창사 이래 처음 보는 성적이었지만, 운용진은 일시적인 흔들림으로 여겼습니다. 오히려 틈이 더 벌어졌으니 좁혀질 때 이익도 더 커질 거라고 보고, 포지션을 줄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98년 8월 17일. 러시아 정부가 자국 통화를 절하하고 국채 지급을 멈추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른바 모라토리엄, 빚 갚기를 일방적으로 미루는 조치입니다. 한 나라가 자기 나라 돈으로 찍은 국채를 갚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건 당시 기준으로 거의 상상 밖의 일이었습니다. 모형에 들어 있던 과거 데이터 어디에도 그런 사건은 없었습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LTCM의 논리를 정확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겁에 질린 투자자들이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이는 자산을 죄다 팔고, 가장 안전한 미국 국채로 몰려간 겁니다. 시장에서는 이를 안전자산 선호라고 부릅니다. LTCM이 싸다고 사 둔 자산은 더 싸졌고, 비싸다고 팔아 둔 자산은 더 비싸졌습니다. 좁혀져야 할 틈이 거꾸로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8월 한 달에만 LTCM은 자산 가치의 44퍼센트를 잃었습니다. 9월 2일 운용진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알리는 서한을 보내자, 상황은 더 꼬였습니다. 시장이 LTCM의 포지션을 짐작하고, 그 반대편에 먼저 올라타기 시작한 것이죠. 팔아야 할 때 팔 수 없는 상태, 즉 유동성이 바싹 마르는 국면이었습니다.
경쟁자들이 한 방에 모인 날
9월 초 23억 달러였던 LTCM의 자본은 빠르게 녹아내렸습니다. 9월 25일 무렵에는 4억 달러 수준까지 내려앉았죠. 자산 규모는 크게 줄지 않았으니, 실질 레버리지는 250배를 넘어섰습니다. 이 상태로 펀드가 쓰러지면 담보로 잡힌 자산이 한꺼번에 시장에 쏟아지고, 거래 상대방인 은행들이 줄줄이 손실을 입게 됩니다. 더 이상 한 펀드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나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연준은 세금을 한 푼도 넣지 않았습니다. 대신 LTCM과 거래하던 주요 금융회사들을 한자리에 불러, 다 같이 나눠서 이 펀드를 떠안으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냥 무너지게 두면 각자 입을 손실이 분담금보다 클 거라는 계산서를 내민 겁니다.

협상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워런 버핏이 골드만삭스 등과 손잡고 LTCM을 2억 5,000만 달러에 사들인 뒤 37억 5,000만 달러를 새로 넣겠다는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제안은 낮 12시 30분이라는 시한 안에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날 저녁 무렵, 14개 금융회사가 36억 2,500만 달러를 내고 펀드 지분 90퍼센트를 갖는 안에 합의했습니다. 베어스턴스와 크레디아그리콜은 끝내 참여를 거부했습니다.
그 뒤 LTCM은 새 주인들의 관리 아래 포지션을 천천히 정리해 나갔습니다. 얄궂게도 시장이 진정되자 일부 포지션은 정말로 예상대로 수렴했습니다. 출자한 금융회사들은 1999년 말까지 투입한 36억 달러를 대부분 돌려받았습니다. 펀드 자체는 2000년 초에 청산됐습니다.
틀린 것은 이론이 아니라 전제였다
이 사건을 노벨상 수학이 틀렸다는 이야기로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요약은 아닙니다. 블랙-숄즈 모형은 지금도 전 세계 파생상품 시장에서 쓰이고 있으니까요. 무너진 것은 이론이 아니라, 그 이론을 쓰면서 깔아 둔 전제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전제는 과거에 없던 일은 앞으로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LTCM의 위험 계산은 수년 치 시장 데이터에 기대고 있었는데, 그 안에 러시아 같은 나라가 자국 통화 국채를 갚지 않는 사건은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관측되지 않은 사건의 확률을 0에 가깝게 놓으면, 모형은 아주 안전해 보이는 답을 내놓습니다. 세상이 데이터보다 넓다는 사실은 모형 바깥에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서로 다른 시장은 서로 다르게 움직인다는 전제였습니다. LTCM은 미국, 유럽, 일본, 신흥국에 걸쳐 수백 개의 포지션을 나눠 담았고, 그것을 분산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공포가 닥치자 모든 시장이 한 방향으로 함께 쏠렸습니다. 평소엔 서로 무관해 보이던 자산들이 위기 때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것. 분산의 가장 큰 맹점입니다.
세 번째는 필요할 때 언제든 팔 수 있다는 전제였습니다. 모든 계산은 사 줄 상대가 늘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차지하는 덩치가 너무 커지면, 팔려고 내놓는 행동 자체가 가격을 무너뜨립니다. 규모가 커지는 순간, 투자자는 더 이상 시장을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의 일부가 됩니다.
천재들이 남긴 오답 노트
개인투자자가 이 이야기에서 먼저 챙길 것은 레버리지의 성질입니다. LTCM을 쓰러뜨린 건 틀린 판단이 아니라, 버틸 시간을 살 수 없었던 구조였습니다. 그들의 포지션 상당수는 나중에 실제로 수렴했습니다. 다만 그때까지 버틸 자본이 남아 있지 않았을 뿐이죠. 빌린 돈으로 하는 투자에서는 옳고 그름보다 먼저,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가 결판을 냅니다.
확신이 만드는 사각지대도 있습니다. LTCM 사람들은 실력이 모자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기에, 자신들의 계산을 의심할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손실이 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모형이 틀렸을 가능성 대신, 시장이 잠시 비정상이라는 해석을 골랐습니다. 가장 위험한 순간은 내가 왜 옳은지 너무 잘 설명할 수 있을 때 찾아옵니다.
위기 때는 상관관계가 1로 수렴한다는 오래된 경험칙도 다시 확인됐습니다. 상관관계는 두 자산이 얼마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나타내는 값으로, 1에 가까울수록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서로 다른 종목,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자산군에 나눠 담은 것은 평소엔 분산으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시장 전체가 겁을 먹은 날에는 그 경계가 거의 지워집니다. 분산은 위험을 줄여 주는 장치이지, 없애 주는 장치가 아닙니다.
1998년의 LTCM은 10년 뒤 세계 금융위기의 예고편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복잡한 파생상품, 눈에 보이지 않는 레버리지, 서로 얽힌 거래 상대방, 그리고 과거 데이터가 담지 못한 사건. 뼈대는 놀랄 만큼 닮아 있었습니다.
천재도 시장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은 그저 겸손하라는 격언이 아닙니다. 시장은 사람의 계산보다 언제나 조금 더 넓다는 것. LTCM은 넉 달 동안 46억 달러를 치르고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