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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조금씩만 오르던 수익률의 정체

2008년 12월 10일, 뉴욕 맨해튼. 70세의 노신사가 두 아들을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 온 일이 통째로 거짓말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아들들은 그날 바로 변호사를 찾아갔고, 다음 날 아침 연방수사국(FBI) 요원들이 아버지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버나드 매도프. 한때 나스닥 이사회 의장을 지냈고, 월가에서 가장 존경받는 축에 들던 인물이었습니다.

버나드 매도프의 얼굴 사진
미국 법무부가 공개한 버나드 매도프의 얼굴 사진.미국 법무부 ·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공용

고백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달 초부터 그가 이끌던 자산운용사에는 고객들의 환매 요청이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환매란 맡긴 돈을 돌려 달라는 요구입니다. 금융위기로 다른 곳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계좌에서 현금을 빼려 한 거죠. 요청액은 70억 달러에 이르렀습니다. 매도프는 그 돈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체포 당시 고객 계좌 명세서에 찍힌 잔고를 모두 더하면 648억 달러였습니다. 물론 그런 돈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들어왔다가 사라진 원금은 170억 달러 안팎으로 추산됐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종이 위에만 존재하던 수익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매달 확인하며 흐뭇해했던 바로 그 숫자들입니다.

새 돈으로 옛 돈을 갚는 구조

폰지 사기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1920년 미국의 찰스 폰지는 국제우편 쿠폰의 나라별 가격 차이를 이용해 큰 수익을 낸다고 광고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굴리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의 돈을 먼저 들어온 사람에게 '수익금'이라며 나눠 줬을 뿐입니다. 새 돈이 끊기는 순간 끝나는 구조였기에, 그의 사업은 몇 달 만에 무너졌습니다.

매도프가 한 일도 원리는 같았습니다. 달랐던 건 기간과 규모입니다. 폰지의 사업이 1년을 못 버텼다면, 매도프의 운용 부문은 적어도 수십 년을 이어 갔습니다. 본인은 1990년대 초에 시작했다고 진술했지만, 수사 과정에서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정황도 제기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었을까요. 폰지는 몇 달 만에 원금의 절반을 불려 준다고 약속했습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숫자죠. 매도프가 약속한 수익률은 연 10% 남짓이었습니다. 훌륭하지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숫자입니다.

사기의 성패를 가른 것은 탐욕의 크기가 아니라 절제의 정도였던 셈입니다. 게다가 매도프에게는 폰지에게 없던 방패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같은 건물에서 실제로 돈을 벌고 있던, 진짜 사업이었습니다.

5,000달러로 시작한 진짜 회사

1960년, 매도프는 자기 돈 5,000달러와 장인에게 빌린 5만 달러로 증권회사를 차렸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의 큰손들 틈에서 그가 고른 자리는 시장조성자였습니다. 어떤 종목이든 '이 값이면 사겠다', '이 값이면 팔겠다'는 가격을 늘 내걸어 거래가 끊기지 않게 해 주는 역할입니다. 그는 이 일에 일찍부터 전산 시스템을 들였습니다.

선택은 적중했습니다. 그가 만든 전자 호가 방식은 훗날 나스닥이라는 시장의 기술적 토대 가운데 하나가 됐고, 그는 나스닥 이사회 의장까지 올랐습니다. 2008년 무렵 그의 회사는 미국 대형주 시장조성 업무에서 여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였습니다. 이 부문은 실제로 돈을 버는, 정상적인 사업이었습니다.

문제는 같은 건물 다른 층에 있던 자산운용 부문이었습니다. 이곳은 고객 돈을 받아 굴린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주식 한 주도 사지 않았습니다. 들어온 돈은 은행 계좌에 넣어 뒀다가, 누가 돈을 찾겠다고 하면 그 계좌에서 꺼내 줬습니다. 고객이 받아 보는 거래 내역서는 지난 주가를 보고 나중에 지어낸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정상 사업의 명성이 거짓 사업의 방패가 됐다는 데 있습니다. 나스닥 의장을 지낸 사람이, 증권업계 자율규제 기구에서 일하던 사람이, 규제당국에 자문까지 하던 사람이 돌려막기를 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이름이 곧 신용조회서였습니다. 실사를 맡은 기관들조차 이 정도 인물이면 누군가 이미 확인했겠거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너무 고른 수익률이라는 경고

매도프가 내세운 운용 방식은 '분할 전환 전략'이라는 이름의 옵션 전략이었습니다. 옵션이란 정해진 값에 사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하는 계약입니다. 대형주를 한 바구니 사 두고, 동시에 옵션을 사고팔아 주가가 크게 떨어질 때의 손실과 크게 오를 때의 이익을 함께 잘라 낸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수익률의 출렁임을 줄이는 데 쓸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실제 성적표는 이론이 설명할 수 있는 선을 넘었습니다. 연 10% 안팎의 수익이 나는데, 손실이 난 달은 거의 없었습니다. 같은 기간 미국 대표 주가지수는 열 달 넘게 하락한 해도 있었고, 2000년대 초 정보기술 거품이 꺼질 때는 몇 년 내리 부진했습니다. 그 모든 국면에서 매도프의 계좌만 거의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금융에서 수익과 위험은 붙어 다닙니다. 크게 벌 수 있으면 크게 잃을 수도 있습니다. 손실 없이 꾸준히 버는 전략이 정말 있다면, 금세 모두가 따라 해 그 수익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매도프의 성적표는 이 상식을 20년 가까이 거스르고 있었습니다.

5분 만에 숫자가 틀렸다는 걸 알아챈 사람

1999년, 보스턴의 한 자산운용사에서 일하던 해리 마코폴로스는 회사로부터 매도프와 비슷한 상품을 만들어 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수치를 받아 든 그는 5분 만에 숫자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에 걸쳐 그 판단을 수학으로 정리했습니다.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매도프가 말하는 전략으로는 그런 수익 곡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 봄, 그는 증권거래위원회(SEC) 보스턴 사무소에 첫 제보를 넣었습니다. 반응이 없었습니다. 2001년에는 더 자세한 자료를 다시 냈습니다. 역시 별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같은 해 금융 전문 매체와 경제 주간지가 매도프의 수익률은 설명되지 않는다는 기사를 실었지만, 파장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2005년 11월, 마코폴로스는 21쪽 분량으로 알려진 문서를 냈습니다. 제목부터 직설적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는 사기다.' 문서에는 서른 개 가까운 의심 항목이 번호를 달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몇 가지만 추려 보면 이렇습니다. 손실 난 달의 수가 비정상적으로 적다는 점. 그가 다룬다는 규모의 옵션을 실제로 거래하려면 시장 전체 거래량보다 많은 계약이 필요한데, 그런 거래를 했다고 말하는 상대방이 어디에도 없다는 점. 수백억 달러를 굴린다면서 회계감사는 직원 몇 명뿐인 무명 사무소가 맡고 있다는 점.

당국은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사기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나중에 공개된 감찰 보고서에 따르면, 규제당국은 16년에 걸쳐 여러 차례 매도프 관련 제보나 조사 기회를 접했지만 매번 핵심을 비껴갔습니다. 미등록 투자자문업 같은 절차 문제로 논점이 옮겨 가거나, 매도프 본인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식이었습니다.

2008년 겨울, 새 돈이 끊기다

돌려막기는 들어오는 돈이 나가는 돈보다 많을 때만 굴러갑니다. 2008년 가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자 그 균형이 깨졌습니다. 주식과 부동산에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현금이 필요했고, 손실이 없어 보이던 매도프 계좌부터 헐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12월까지 밀려든 환매 요구가 70억 달러였습니다. 새 돈으로 메울 수 있는 구멍이 아니었습니다.

12월 11일 체포된 그는 1,00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자택에 연금됐습니다. 2009년 3월 12일에는 증권사기와 전신사기, 자금세탁 등 11개 연방 범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재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인정한 겁니다. 같은 해 6월 29일, 법원은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0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2021년 4월 노스캐롤라이나의 연방교도소에서 82세로 숨졌습니다.

아파트 입구 앞에서 기다리는 사진기자들
가택연금 중인 매도프의 뉴욕 아파트 입구 앞에서 기다리는 사진기자들.Red Carlisle · CC BY 2.0 · 위키미디어 공용

주변 사람들의 결말도 무거웠습니다. 동생 피터 매도프는 2012년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며 가짜 거래 내역을 만든 프랭크 디파스칼리는 유죄를 인정한 뒤 선고를 기다리다 201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남 마크 매도프는 아버지 체포 2주년이던 2010년 1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차남 앤드루는 2014년 병으로 숨졌습니다.

피해자는 개인만이 아니었습니다. 매도프에게 직접 돈을 맡긴 계좌 말고도, 여러 나라의 중개 펀드들이 고객 돈을 모아 매도프에게 넘기고 있었습니다. 유럽과 중남미의 은행, 대학 기금, 자선재단, 은퇴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 사슬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16년에 걸친 회수 작업

사건 직후 전문가 대부분은 돈을 되찾을 가능성을 비관했습니다. 결과는 달랐습니다. 법원이 선임한 파산관재인 어빙 피카드는 이 사업의 성격에 주목했습니다. 애초에 투자가 없었으니, '수익'이라며 받아 간 돈은 사실 다른 피해자의 원금이었습니다. 그는 이 논리로 오래전에 돈을 빼 간 초기 투자자들과 중개 펀드들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가장 큰 성과는 2010년 제프리 피코워 유산 측과의 합의였습니다. 규모는 72억 달러. 미국 역사상 단일 민사 환수 사례로는 최대였습니다. 2026년 초 기준 관재인이 회수한 금액은 약 153억 달러입니다. 인정된 청구액을 기준으로 평균 73%가량이 피해자에게 돌아갔고, 청구가 인정된 계좌 가운데 상당수는 전액을 돌려받았습니다.

미국 법무부가 따로 운영한 피해자 기금도 있었습니다. 주로 중개 펀드를 거쳐 간접 투자한 탓에 관재인 절차의 대상이 되기 어려웠던 사람들을 위한 기금입니다. 이 기금은 2024년 12월 마지막 배분을 끝으로 문을 닫았고, 약 4만 1,000명이 인정 손실의 94%에 가까운 금액을 돌려받았습니다. 두 절차는 계산 기준이 달라 회수율 숫자도 다르게 나옵니다.

다만 이 회수율은 실제로 넣었다가 잃은 원금이 기준입니다. 명세서에 찍혀 있던 648억 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이 부자라고 믿고 그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에게, 원금을 대부분 돌려받았다는 사실이 곧 원상 회복을 뜻하지는 않았습니다.

경고는 있었다, 들리지 않았을 뿐

이 사건에서 가장 오래 기억할 대목은 경고가 없었다는 게 아닙니다. 경고가 있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이 9년 동안 세 차례 자료를 내밀었고, 언론도 의문을 던졌으며, 업계 안에서도 이상하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래도 돈은 계속 들어갔습니다. 문제를 지적한 쪽보다, 지적당한 쪽이 더 믿을 만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투자자들이 실제로 확인한 건 무엇이었을까요. 대부분은 매달 우편으로 오는 거래 내역서, 그리고 먼저 투자한 지인이 문제없이 돈을 찾았다는 경험담이었습니다. 둘 다 결국 매도프 쪽에서 나온 정보였습니다. 자산이 어디에 어떤 형태로 보관돼 있는지, 그 보관을 다른 누군가가 확인하고 있는지를 물어본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수익률의 '모양'도 다시 볼 만합니다. 우리는 보통 수익률이 높은지만 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수익률이 지나치게 고른 것도 신호라는 걸 알려 줬습니다. 시장은 원래 울퉁불퉁합니다. 울퉁불퉁하지 않은 성적표가 있다면, 그 매끈함이 어디서 왔는지 물어야 합니다. 다른 모든 자산이 흔들리는 시기에도 그 매끈함이 유지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이 오히려 매력이 됐다는 사실도 곱씹어 볼 만합니다. 매도프는 아무나 받아 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풍겼고, 소개를 받아 겨우 들어갔다는 경험이 투자자에게는 검증을 대신했습니다. 남들이 못 들어가는 곳에 들어왔다는 감각은 판단을 무디게 만듭니다.

648억 달러짜리 명세서는 끝내 종이였습니다. 우리가 확인했다고 믿는 것이 정말 누구에게서 나온 정보인지, 그 출처를 한 번 더 따져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