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는 왜 임대료로 더 많이 벌게 됐나
2026-09-25 · 8분 읽기
햄버거를 팔아서 번 돈보다 건물을 빌려주고 받은 돈이 더 많은 햄버거 회사가 있습니다. 맥도날드 이야기입니다. 2025년 이 회사의 총매출은 약 268억 8천만 달러였습니다.
그 가운데 회사가 직접 운영하는 매장에서 음식을 팔아 번 돈은 약 96억 9천만 달러. 가맹점에서 받은 임대료는 약 104억 4천만 달러였습니다. '맥도날드는 사실 부동산 회사'라는 말은 바로 이 숫자에서 나왔습니다.
어쩌다 햄버거 회사의 장부가 이렇게 됐을까요. 이야기는 70년도 더 전, 밀크셰이크 기계 여덟 대에서 시작됩니다.
여덟 대의 기계가 불러온 손님
1954년,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의 작은 햄버거 가게 앞에 쉰두 살의 외판원 한 명이 서 있었습니다. 밀크셰이크를 여러 잔 동시에 만드는 기계를 팔러 전국을 돌던 사람이었죠. 그를 이곳까지 오게 만든 건 주문 하나였습니다. 이 작은 가게가 그의 기계를 여덟 대나 주문한 겁니다.
한 대로 대여섯 잔을 만드는 기계이니, 여덟 대면 한 번에 마흔 잔이 넘습니다. 어느 도시의 번화한 식당도 그렇게는 팔지 못했습니다.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그는 직접 가게를 보러 갔습니다.
그의 이름은 레이 크록. 그날 그가 본 건 메뉴를 아홉 가지로 줄이고 주방을 공장 조립 라인처럼 배치한 가게였습니다. 리처드와 모리스 맥도날드 형제가 1948년에 가게를 그렇게 뜯어고치고 '스피디 서비스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이죠. 손님이 줄을 서면 수십 초 만에 15센트짜리 햄버거가 나왔습니다. 크록은 그 자리에서 계산을 시작했습니다. 이 구조를 미국 전역에 복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작게 지키려던 형제, 크게 벌이려던 외판원
맥도날드 형제는 1937년부터 로스앤젤레스 근교에서 음식 장사를 해 온 사람들입니다. 1948년 개조로 노린 건 확장이 아니라 비용 절감이었습니다. 메뉴가 적으면 재료 관리가 쉬워지고, 동작이 정해져 있으면 숙련되지 않은 직원도 빨리 일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감자만 튀기는 방식은 당시 식당업계에서 낯선 발상이었습니다.
형제는 1953년부터 이 방식을 남에게 파는 가맹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첫 가맹점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열렸죠. 하지만 두 사람은 판을 크게 벌이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쓰기에 충분한 돈이 이미 들어오고 있었고, 멀리 떨어진 가게를 관리하는 일이 얼마나 골치 아픈지도 알았습니다.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지 않겠다는 판단이었습니다.
크록의 생각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는 형제를 설득해 전국 가맹 사업을 대신 맡는 대리인 자리를 따냈고, 1955년 4월 15일 일리노이주 데스플레인스에 자기 손으로 첫 매장을 열었습니다. 첫날 매출은 366달러 남짓. 크록에게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형제의 방식이 캘리포니아 밖에서도 통한다는 확인이었죠.

그 뒤 크록이 집착한 건 규격이었습니다. 감자 튀기는 시간부터 매장 청결까지, 모든 걸 정해진 기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가맹점은 엄연히 남의 사업체입니다. 기준을 어기는 점주에게 본사는 무엇을 근거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까. 초기 계약에는 그 답이 없었습니다.
매출의 1.9퍼센트, 팔수록 쪼들리는 장사
크록이 형제와 맺은 조건은 단순했습니다. 가맹점 총매출의 1.9퍼센트를 수수료로 받고, 그중 0.5퍼센트를 형제에게 넘기는 구조. 가맹 수수료란 브랜드와 운영 방식을 빌려 쓰는 대가로 점주가 본사에 내는 돈입니다. 크록 손에 남는 건 매출의 1.4퍼센트였습니다.
점포 한 곳의 1년 매출이 20만 달러라고 해 볼까요. 1.4퍼센트면 2,800달러입니다. 본사는 그 돈으로 후보지를 조사하고, 설비 규격을 만들고, 감독 인력을 보내야 했습니다.
점포를 늘릴수록 먼저 써야 할 돈은 불어나는데, 들어오는 돈은 매출이 올라온 뒤에야 따라옵니다. 사업이 잘될수록 통장이 비는 구조. 생각보다 흔한 함정입니다.
더 높은 벽은 은행이었습니다. 돈을 빌리려면 담보가 필요한데, 당시 크록의 회사가 가진 건 계약서 한 장과 미래의 수수료 수입뿐이었습니다. 금융기관 눈에 그건 담보가 아니었죠.
확장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빌리려면 자산이 필요한 순환. 그 안에 갇힌 크록은 자기 집을 담보로 잡고 개인 빚을 늘려 가며 버텼습니다. 좋은 사업 방식을 찾아낸 것과, 그 방식으로 돈이 도는 구조를 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습니다.
당신은 햄버거 장사를 하는 게 아닙니다
해법을 들고 온 사람은 1956년에 만난 해리 소너본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 체인 테이스티프리즈에서 재무 담당 부사장을 지낸 사람이었죠. 그의 제안은 이랬습니다. 가맹점에서 매출의 일부를 받아 오는 대신, 회사가 먼저 매장이 들어설 땅과 건물을 확보하고 그걸 가맹점에 빌려주자.
상대는 여전히 같은 점주입니다. 바뀌는 건 관계의 성격이었습니다. 수수료를 받는 쪽에서, 임대료를 받는 쪽으로. 훗날 영화 대사로 유명해진 문장, '당신은 햄버거 장사가 아니라 부동산 장사를 하고 있다'는 말의 뿌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실행 방식은 꽤 정교했습니다. 회사는 목 좋은 땅을 골라 장기 분할 매입 계약으로 확보하고, 땅 주인에게서 자기 권리를 뒤로 미뤄 주겠다는 동의를 받아 냈습니다. 그래야 그 땅을 근거로 건축 자금을 빌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지은 건물을 점주에게 빌려주면서, 임대료는 회사가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 합계에 일정 비율을 얹어 정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그 가산 비율이 40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임대료는 두 층으로 짜였습니다. 아래층은 매달 반드시 내야 하는 기본 임대료. 위층은 매출이 정해진 선을 넘으면 매출의 일정 비율을 더 내는 부분이었고, 이 비율은 5퍼센트 선에서 시작했습니다.
점주가 장사를 잘하면 본사 수입도 함께 늘고, 부진해도 기본 임대료는 들어옵니다. 이미 땅을 갖고 있던 점주에게도 회사는 같은 틀을 요구했습니다. 그 땅을 일단 회사에 임대하고, 다시 빌려 쓰라는 것이었죠.
이 일을 전담하려고 세운 회사가 프랜차이즈 리얼티 코퍼레이션입니다. 이름 그대로 가맹(프랜차이즈)과 부동산(리얼티)을 합친 조직입니다. 결정적인 변화는 임대료가 늘었다는 데만 있지 않았습니다. 회사 장부에 땅과 건물이라는 실물 자산이 쌓이기 시작했다는 것. 은행과 보험사에 내밀 담보가 드디어 생긴 겁니다.
땅을 쥐자 돈줄과 주도권이 함께 왔다
자산이 생기자 돈을 구할 문이 열렸습니다. 1960년 소너본은 한 보험사에서 연 6퍼센트로 26만 달러를 끌어와 점포 여섯 곳을 지었습니다.
1961년에는 세 보험사에서 담보 없이 15년 만기로 150만 달러를 빌렸습니다. 금리는 연 7퍼센트. 여기에 회사 지분 22.5퍼센트를 함께 넘겨야 했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무척 비싼 돈이지만, 당시 회사에는 그 돈 말고 성장을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현금흐름의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수수료는 점주가 얼마를 팔았느냐에 따라 오르내리지만, 임대료에는 반드시 들어오는 기본 몫이 있습니다. 반면 회사가 갚아야 할 대출 원리금은 계약으로 고정돼 있죠.
매출이 올라 비율 임대료가 붙기 시작하면, 그 차액은 고스란히 회사에 남습니다. 게다가 쌓인 부동산을 근거로 또 돈을 빌려 다음 점포를 지을 수 있게 됩니다. 땅이 다음 땅을 부르는 구조입니다.
덜 주목받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통제력이었습니다. 본사가 건물의 임대인이 되면, 점주가 기준을 지키지 않을 때 계약 갱신을 거절하거나 임대 관계를 끊을 수 있습니다. 브랜드 표준을 지키라는 요구가 부탁이 아니라 계약상의 권한이 되는 거죠. 오늘날 세계 어디서나 비슷한 맛, 비슷한 매장 운영이 유지되는 배경에는 이 구조가 있습니다.
소너본은 1959년 초대 사장 겸 최고경영자가 됐습니다. 그러나 확장 속도를 두고 크록과 부딪힌 끝에, 1967년 6월 8일 회사를 떠났습니다.
270만 달러에 넘어간 형제의 이름
1961년, 크록과 형제의 갈등은 더는 봉합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습니다. 크록이 물었습니다. 얼마면 손을 떼겠느냐. 형제의 답은 270만 달러였습니다. 세금을 떼고 두 사람이 각각 100만 달러씩 손에 쥐려면 그 정도가 필요하다는 계산이었죠.
회사 형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지만, 소너본이 외부에서 그 돈을 마련해 왔습니다. 부동산이라는 자산을 깔아 둔 회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 거래에는 유명한 뒷이야기가 따라붙습니다. 형제가 앞으로도 총매출의 0.5퍼센트를 계속 받기로 구두로 합의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약속은 계약서에 들어가지 않았고, 형제 측은 이후 그 몫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세부 사정은 기록이 엇갈려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문서로 남지 않은 합의가 어떤 결말을 맞았는지만큼은 분명합니다.
매듭이 하나 더 남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바로 그 가게입니다. 형제는 샌버너디노 1호점을 거래에서 빼 두었지만, 이제 맥도날드라는 이름을 쓸 권리가 없었습니다. 가게는 '빅 엠'이라는 새 간판을 달았고, 크록은 그 근처에 정식 맥도날드 매장을 열었습니다.
빅 엠은 6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시스템을 처음 만든 사람들이, 자기 이름이 붙은 가게 옆에서 밀려난 셈입니다.
회사는 1965년 주식시장에 상장하며 전혀 다른 규모의 자금을 끌어들였습니다. 모리스 맥도날드는 1971년에, 리처드 맥도날드는 1998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이 회사의 창업자로 불리는 이름은 형제가 아니라 크록입니다. 시스템을 발명한 사람과, 그 시스템으로 돈이 도는 구조를 설계한 사람. 역사가 기억한 쪽은 뒤쪽이었습니다.
간판은 햄버거, 장부는 부동산
2025년 말 기준 맥도날드 매장은 전 세계 45,356곳, 그중 약 95퍼센트가 가맹점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직접 관리하는 시장에서 매장 토지의 약 56퍼센트, 건물의 약 80퍼센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운영은 대부분 남에게 맡기고, 매장이 선 자리는 회사가 쥐고 있는 구조. 소너본의 제안이 70년 가까이 그대로 작동하고 있는 셈입니다.

숫자를 다시 한번 펼쳐 볼까요. 2025년 총매출 약 268억 8천만 달러 가운데 가맹 부문이 약 165억 5천만 달러였습니다. 그 안에서 임대료가 약 104억 4천만 달러, 브랜드 사용료에 해당하는 로열티가 약 60억 2천만 달러입니다.
임대료 하나만으로 전체 매출의 약 39퍼센트. 간판은 햄버거인데 가장 큰 수입원은 임대료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라 회계 항목에 적힌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개인투자자가 가져갈 건 특정 회사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읽는 방법입니다. 재무제표를 볼 때 우리는 대개 매출과 이익의 크기만 확인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정말 알아야 할 건 그 회사가 실제로 무엇을 팔아서 돈을 버느냐입니다.
매출을 항목별로 나눈 표와 부문별 실적을 들여다보면, 회사 이름이 주는 인상과 다른 그림이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제조업체는 물건을 팔아서보다 할부 금융에서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어떤 유통업체는 상품 마진보다 입점 수수료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구조는 그 회사의 약한 고리가 어디인지도 알려 줍니다. 임대료가 주 수입인 회사는 부동산 가치와 금리 변화에 민감하고, 수수료가 주 수입인 회사는 가맹점의 매출 부진에 더 직접 흔들립니다. 같은 업종으로 묶이는 회사들끼리도 이 지점에서 성격이 갈립니다.
1954년의 크록은 기계 여덟 대라는 이상한 주문을 그냥 넘기지 않았습니다. 숫자가 설명되지 않을 때 직접 확인하러 간 사람이었고, 몇 년 뒤에는 자기 사업이 어디서 돈을 버는지를 다시 설계한 사람이 됐습니다.
어떤 회사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회사가 파는 물건과 그 회사가 돈을 버는 방식이 정말 같은지 한 번 더 확인해 보는 것. 그 자체로 오래 도움이 되는 습관입니다. 화려한 설명보다 항목별 숫자가 회사의 정체를 더 정확하게 말해 주니까요. 맥도날드의 정체도 메뉴판이 아니라 장부에 적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