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크 속 바닷물이 월가를 삼킨 1963년
2026-09-22 · 7분 읽기
검사원이 탱크 뚜껑을 엽니다. 긴 막대를 밀어 넣어 안에 든 것을 한 번 떠 올립니다. 맑고 깨끗한 식용유. 이상 없음. 그런데 그 막대가 닿지 않은 아래쪽에는 전혀 다른 것이 출렁이고 있었습니다. 바닷물이었습니다.
1963년 가을, 미국 뉴저지주 베이온의 항구에는 이런 거대한 저장탱크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서류상 그 안에는 식용유가 90만 쇼트톤 가까이 들어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전역의 대두유와 면실유를 전부 긁어모은 것보다 많은 양입니다. 실제로 들어 있던 기름은 5만 5천 쇼트톤 남짓. 나머지 자리는 바닷물이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 단순한 사실이 드러나기까지 여러 해가 걸렸습니다. 드러난 뒤에는 1억 8천만 달러가 넘는 돈이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은행과 금융기관 51곳이 물렸고, 뉴욕증권거래소 회원 증권사 한 곳이 무너졌으며, 미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 하나가 존립을 걱정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사건의 절정은 하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댈러스에서 총에 맞은 바로 그 주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수라장 한복판에서, 서른셋의 한 젊은 투자자는 모두가 달아나는 쪽과 정반대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기름이 물에 뜬다는 초등학교 과학 상식이 어떻게 월가를 뒤흔들었는지, 그리고 그 폐허 위에서 누가 무엇을 봤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샐러드유 왕'이라 불린 남자
주인공은 앤서니 티노 데 앤젤리스입니다. 1915년 뉴욕에서 태어나 정육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1955년 베이온에 얼라이드 크루드 베지터블 오일 리파이닝이라는 회사를 세웠습니다. 콩과 목화씨에서 짜낸 기름을 정제해 식용유로 파는 회사였습니다. 마침 미국 정부가 남아도는 농산물을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크게 벌이던 때였고, 그는 그 흐름에 정확히 올라탔습니다.
사업은 빠르게 커졌습니다. 유럽과 인도로 배를 띄우면서 그는 업계에서 '샐러드유 왕'으로 불렸습니다. 그런데 원자재를 대량으로 사고파는 사업에는 공통된 약점이 하나 있습니다. 물건을 미리 사 둬야 하는데, 그 물건값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원자재 업자들은 창고에 쌓아 둔 물건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립니다.
이때 등장하는 종이가 창고증권입니다. 창고회사가 물건을 맡아 보관하면서 '이만큼을 보관하고 있다'고 증명해 주는 문서인데, 은행은 그 종이를 담보로 잡고 돈을 내줍니다. 은행 직원이 직접 탱크에 기어올라 기름을 확인할 수는 없으니, 믿을 만한 제삼자가 대신 확인해 주는 구조입니다. 이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창고회사의 신용이죠.
베이온의 탱크를 검수하고 창고증권을 발행한 곳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창고 자회사였습니다. 여행자수표와 신용카드로 이름을 날리던, 미국에서 가장 신용이 단단하다고 여겨지던 바로 그 회사입니다. 아멕스의 이름이 찍힌 종이라면 의심할 까닭이 없다고 은행들은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이 이 사건의 진짜 출발점이었습니다.
물은 아래로, 기름은 위로
수법은 허무할 만큼 단순했습니다. 검사원은 탱크 뚜껑을 열고 긴 막대나 관을 넣어 내용물을 떠 올린 뒤, 그게 식용유가 맞는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기름은 물보다 가볍습니다. 탱크 대부분을 바닷물로 채우고 맨 위에만 기름을 얇게 띄워 두면, 위에서 떠 올린 표본은 언제나 순도 높은 식용유였습니다.
여기에 몇 가지 장치가 더해졌습니다. 탱크 안에 가짜 칸막이와 관을 설치해, 실제로는 비어 있는 공간을 가득 찬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검사 일정에 맞춰 밤새 같은 기름을 이 탱크 저 탱크로 옮겨 담아, 한 통의 기름을 여러 번 세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수고조차 건너뛰고 창고증권 자체를 위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검사원들은 왜 몰랐을까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는 창고 운영을 맡으면서 원래 그 시설에서 일하던 인력을 상당수 그대로 넘겨받았습니다. 감시해야 할 사람과 감시받아야 할 사람이 같은 동네 사람이었던 겁니다. 서류에는 세계 최고 신용도의 회사 이름이 찍혀 있었지만, 실제로 탱크 뚜껑을 여는 손은 전혀 독립적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기가 막힌 대목은 규모입니다. 이 한 곳의 시설이 보관 중이라고 주장한 기름의 양은 미국 전체 재고를 넘어섰습니다. 농무부 통계와 한 번만 맞춰 봤어도 곧장 드러났을 숫자입니다. 하지만 돈을 빌려준 51곳 가운데 누구도 그 대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앞사람이 이미 확인했으려니 믿었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11월
1963년 가을, 데 앤젤리스는 판을 더 키웠습니다. 빌린 돈으로 식용유 선물을 대량으로 사들여 가격 자체를 끌어올리려 한 겁니다. 선물은 미래의 정해진 날에 정해진 가격으로 물건을 사고팔기로 미리 약속하는 계약입니다. 계약금 성격의 증거금만 걸면 그보다 훨씬 큰 금액을 움직일 수 있죠. 방향이 맞으면 수익이 커지지만, 반대로 가면 손실도 같은 배수로 불어납니다.
11월 중순, 그는 면실유 선물 계약 대부분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하던 소련과의 대두 수출 거래가 틀어지면서 가격이 무너졌습니다. 증거금을 더 넣으라는 요구가 쏟아졌지만 그에게는 넣을 돈이 없었습니다. 11월 15일 조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며칠 뒤 얼라이드는 파산을 신청했습니다.
불똥은 그의 주문을 받아 주던 증권사들로 튀었습니다. 특히 아이라 하우프트 앤 컴퍼니는 고객 대신 증거금을 메워 주다 스스로 지급불능에 빠졌습니다. 이 증권사는 문제의 창고증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까지 빌린 상태였습니다. 기름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는 순간, 담보도 함께 증발했습니다. 한 사람의 거짓말이 증권사와 은행을 타고 번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습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그날 오후 거래를 앞당겨 멈췄고, 주말 내내 거래소 수뇌부는 두 개의 재앙을 한꺼번에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결론은 전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거래소가 자료에 따라 3,600만 달러로 전해지는 돈을 내놓아, 하우프트에 맡겨져 있던 약 2만 명 고객의 자산을 지켜 주기로 한 겁니다. 거래소가 회원사 고객을 위해 직접 지갑을 연 첫 사례였습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날아든 청구서
돈을 떼인 은행들의 눈은 창고증권에 이름을 올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 향했습니다. 창고 자회사에 날아든 청구액은 2억 1천만 달러. 그런데 그 자회사가 가진 자산은 13만 달러 남짓이었습니다. 법적으로 보면 모회사가 반드시 갚아야 할 의무가 분명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자회사를 정리하고 손을 터는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분명히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영진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갚는 쪽을 택했습니다. 일부 주주는 법적 의무도 없는 곳에 회사 돈을 쓴다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래도 회사는 협상을 이어 갔고, 결국 6천만 달러 규모의 변제안으로 사태를 마무리했습니다. 주주 입장에서는 당장 눈앞의 돈이 빠져나가는 결정이었습니다.
경영진이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이 회사가 파는 물건의 정체에 있었습니다. 여행자수표와 신용카드는 본질적으로 종이와 플라스틱 조각입니다. 그게 값어치를 갖는 이유는 단 하나, 이 회사가 뒤에 서 있으면 반드시 결제된다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깨지면 상품 자체가 사라집니다. 2억 달러를 아끼려다 회사가 존재하는 이유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시장은 그렇게 읽지 않았습니다. 사기극이 얼마나 더 커질지, 회사가 결국 얼마를 물어내야 할지 아무도 계산할 수 없었습니다. 불확실성 앞에서 사람들은 일단 팔았습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주가는 몇 달 사이 절반 가까이 빠졌습니다.
장부 대신 식당에 앉은 사람
그 무렵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작은 투자조합을 굴리던 서른셋의 워런 버핏은 다른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얼마를 물어내야 하는지 계산하는 대신, 사람들이 여전히 이 회사의 카드와 수표를 쓰고 있는지 알고 싶어 했습니다. 손실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고객이 떠나는 건 영구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마하의 식당에 앉아 계산대에서 이 회사 카드가 얼마나 오가는지 지켜봤고, 은행 창구에 들러 여행자수표가 전처럼 팔리는지 물었습니다. 조사를 돕던 헨리 브랜트라는 인물을 통해 가맹점과 호텔, 은행 직원, 카드 소지자들을 폭넓게 만나 보기도 했습니다. 스캔들이 신문 1면을 덮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지갑 속 습관은 바뀌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결론을 근거로 움직였습니다. 1964년부터 이 회사 주식을 사들였고, 1965년 말에는 이 한 종목이 조합 자산의 40% 안팎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분산투자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집중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훗날 성공 사례로 널리 회자됐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는 배상 규모조차 정해지지 않은 회사에 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건 선택이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둘 만합니다. 결과를 아는 지금 보면 당연해 보여도, 그때는 누구에게도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을 설계한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요. 데 앤젤리스는 사기와 공모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인정했고, 실형을 산 뒤 1972년에 풀려났습니다. 출소 뒤에도 가축을 소재로 한 또 다른 사기에 연루됐습니다. 그는 2009년 아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탱크 뚜껑을 열어 본다는 것
이 사건이 60년 넘게 회자되는 건 수법이 기발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담보는 종이가 아니라 물건입니다. 그런데 종이가 충분히 그럴듯하면, 사람들은 물건을 확인하는 수고를 건너뜁니다. 1억 8천만 달러가 사라지는 동안 아무도 탱크 뚜껑을 제대로 열어 보지 않았습니다.
검증하는 사람이 누구 편인가 하는 질문도 남습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이름이 찍힌 검사 보고서는 완벽해 보였지만, 실제로 검사하던 사람들은 검사받는 회사와 한 동네에서 얽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회계감사, 신용평가, 실사 보고서처럼 제삼자가 확인해 준다는 형식의 장치는 많습니다. 그 장치가 정말 독립적인지는 형식이 아니라 구조를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악재가 겹칠 때 가격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보여 줍니다. 1963년 11월의 주가는 사기의 실제 손실 규모를 반영한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손실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공포와, 같은 주에 대통령이 암살됐다는 충격이 한데 뒤섞인 숫자였죠. 시장 가격은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불안의 크기를 담을 때가 많습니다.
다만 조심할 대목이 있습니다.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 자체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습니다. 당시 한 투자자가 남들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건 가격이 싸서가 아니었습니다. 회사의 본업이 멀쩡한지 직접 확인할 방법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확인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서는 '싸다'는 판단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오래된 이야기가 남기는 건 하나의 습관입니다. 남들이 다 믿는 종이 앞에서, 한 번쯤 탱크 뚜껑을 직접 열어 보려는 마음. 기름은 늘 물 위에 뜹니다. 위에서 한 숟가락 떠 보는 것만으로는, 그 아래 무엇이 출렁이는지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