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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광고로 뽑은 23명에게 돈을 맡겼다

1983년 12월, 시카고의 한 사무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한 교실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블랙잭으로 먹고살던 프로 도박사, 던전 앤 드래곤 게임을 만든 디자이너, 하버드 MBA 출신 회사원, 공군 조종사 출신, 그리고 거래소 건물의 경비원.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것은 신문 구인란 한구석에 실린 광고 한 장이었습니다.

광고가 처음 실린 건 그해 늦가을, 월스트리트저널과 배런스였습니다. 리처드 J. 데니스가 상품선물 트레이더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죠. 조건이 묘했습니다. 매매 경험은 고려하지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전화 문의는 받지 않는다. 이력서와, 왜 지원하는지를 적은 한 문장을 시카고의 주소로 보내라. 합격하면 2주 동안 매매 개념을 배우고, 자기 돈이 아니라 광고를 낸 사람의 돈을 굴리게 된다고 했습니다.

광고를 낸 사람은 당시 삼십대 중반의 시카고 트레이더였습니다. 가족에게 빌린 1,600달러로 시작해 수억 달러를 벌었다고 알려진 인물이었죠. 그런데 그가 광고를 낸 건 일손이 모자라서가 아니었습니다. 동업자와 오래 이어 온 말다툼이 있었고, 그 다툼을 실제 돈으로 판정해 보기로 한 겁니다. 쟁점은 단 하나. 트레이더는 타고나는가, 아니면 길러낼 수 있는가.

2주 뒤, 교실의 사람들은 각자 계좌를 받습니다. 이 글은 그다음에 벌어진 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흔히 전해지는 결말과는 조금 다릅니다. 절반은 성공담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똑같은 규칙을 받고도 무너진 사람들의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경험은 필요 없음, 전화 사절

광고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데니스의 회사 C&D 커머디티스는 1983년 늦가을부터 이듬해인 1984년까지 월스트리트저널, 배런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같은 성격의 광고를 냈습니다. 광고비로 책정한 돈은 15,000달러였다고 전해집니다.

1984년판 광고에는 접수 마감이 10월 1일로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날 금융권의 채용 공고와 나란히 놓으면 황당할 만큼 설명이 빈약한 문서였죠. 무슨 일을 하는지도,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도 거의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조건을 하나씩 뜯어보면 묘한 느낌은 더 커집니다. 합격자는 데니스가 쓰는 매매 개념을 배웁니다. 그런데 그 개념으로 자기 돈을 굴리는 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데니스의 돈으로, 데니스를 위해서만 매매해야 했죠. 보상은 매매 이익의 일정 비율, 그리고 생활비 수준의 소액 고정급이 전부였습니다.

지원자 쪽에서 보면 꽤 불리한 거래입니다. 비법을 배워도 그 비법으로 독립할 수 없고, 돈을 벌어도 대부분은 자본을 댄 사람의 몫입니다. 실제로 한 참가자는 훗날 자신의 고정급이 연 18,000달러였고 식료품값을 내기에 딱 충분한 정도였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런데도 지원자는 1,000명이 넘게 몰렸습니다. 한 합격자는 그 광고를 처음 봤을 때의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뉴욕 양키스가 주전 유격수를 공개 모집하는 공고 같았다고요. 평범한 사람에게 꿈의 자리가 열린 것처럼 보였다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광고가 채용 공고인 동시에 실험 공고였다는 점입니다. 광고를 낸 사람이 원한 건 일손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는 일이었습니다. 지원자들은 자신이 실험 참가자가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서류를 보냈습니다. 이 비대칭이 뒤에 벌어지는 모든 일의 배경이 됩니다.

피트의 왕자와 수리논리학자의 오랜 말다툼

리처드 데니스는 1949년 1월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열일곱 살에 시카고상업거래소 플로어에서 주문을 실어 나르는 러너로 일을 시작했죠. 가족에게 1,600달러를 빌려 미드아메리카 상품거래소의 회원권을 1,200달러에 샀고, 1973년에는 자본이 10만 달러를 넘겼습니다.

이듬해인 1974년, 그는 대두 매매로 50만 달러를 벌어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드폴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 대신 피트, 즉 거래소의 매매 구역으로 돌아간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피트의 왕자라고 불렀습니다.

거래인들로 붐비는 시카고상품거래소 객장 그림엽서
거래가 한창인 시카고상품거래소 객장을 담은 옛 그림엽서.Detroit Publishing Co. ·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공용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데니스의 고등학교 시절부터의 친구였습니다. 시카고대학에서 수리논리학 박사 과정을 밟다가, 논문 지도 체계가 바뀌는 와중에 학위를 마치지 않고 1970년대 중반 같은 거래소 플로어로 건너왔습니다. 그가 학교를 떠난 해는 자료에 따라 1973년으로도, 1974년으로도 적혀 있습니다.

두 사람은 C&D 커머디티스의 동업자가 됐습니다. 데니스가 감각으로 때려 맞히는 쪽이었다면, 에크하르트는 그 감각을 수식으로 옮겨 적는 쪽이었죠. 성향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한 회사를 꾸린 셈입니다.

둘이 늘 부딪히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데니스는 자기가 하는 일에 특별할 게 없다고 봤습니다. 규칙으로 적어 낼 수 있고, 적어 낸 규칙은 가르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에크하르트는 반대였습니다. 분석과 감정은 떼어 낼 수 없고, 기질은 수업으로 심어 줄 수 없다는 쪽이었죠. 머리가 좋은 것과 매매를 잘하는 것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널리 퍼진 이야기에서 이 다툼은 돈을 건 내기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실제로 금액을 걸었다는 기록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실험 그 자체가 판정 방식이었다고 전해질 뿐입니다. 잭 슈웨거의 책에 나온, 열 명에게 각자 100만 달러를 맡긴다는 식의 설정도 실제 조건과는 다릅니다. 통설과 기록이 어긋나는 첫 번째 지점입니다.

역할도 통설과 다릅니다. 통설 속 데니스는 스승이고, 에크하르트는 회의론자입니다. 그런데 교육생들이 배운 기계적 규칙을 설계하는 데 에크하르트가 깊이 관여했고, 선발과 관리에도 참여했다고 전해집니다. 가르칠 수 없다고 주장한 사람이 교재를 함께 쓴 셈이죠. 두 사람은 2016년 시카고상품거래소그룹에서 함께 상을 받았습니다.

1,000명 중 23명, 그리고 거북이라는 이름

선발은 이력서 한 장과 문장 하나로 시작됐습니다. 1차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편지와 시험지가 날아갔습니다. 시험은 참과 거짓을 고르는 문항 63개, 서술형 11개로 이뤄져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대학 입학시험 점수를 적어 내거나, 점수가 없다면 왜 없는지 설명하라는 요구도 있었습니다.

참거짓 문항은 매매 지식을 묻는 척하면서 사실은 성향을 캐묻고 있었습니다. 큰 하락 뒤 바닥에서 사야 큰돈을 번다. 살 때는 평균 단가를 낮추는 게 좋다. 이익을 실현해서 망하는 일은 없다. 거래의 아주 높은 비율이 이익이어야 한다. 하나같이 직관적으로 맞다고 느껴지는 문장이었고, 출제자가 기대한 답은 그 직관의 반대였습니다. 트레이더는 손실을 받아들이기를 좋아해야 한다는 문장도 끼어 있었습니다.

서술형은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당신이 했던 위험한 일을 하나 적고, 왜 그랬는지 쓰라. 희망과 두려움과 탐욕이 트레이더의 적이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매에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 이유는. 지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라고 요구하는 질문들이었습니다.

이렇게 걸러 낸 23명의 면면은 이 이야기의 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블랙잭 프로 도박사, 던전 앤 드래곤 게임 디자이너, 하버드 MBA 출신 회사원, 공군 조종사 출신, 변호사 겸 자영업자, 시카고상품거래소 건물의 경비원, 열여섯 살에 학교를 떠난 전직 배우. 이력서를 꾸며 낸 사람도 있었고, 이미 데니스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뉴욕의 사우나에서 신문을 넘기다 광고를 발견했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죠.

빌딩 숲 사이로 정면에 선 시카고상품거래소 건물
시카고상품거래소 건물. 왼쪽은 콘티넨털 일리노이 은행 건물, 오른쪽은 연방준비은행 건물이다.puroticorico · CC BY 2.0 · 위키미디어 공용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조합입니다. 전공은 경영학, 경제학, 음악, 회계, 지질학, 역사학에 언어학 박사까지 걸쳐 있었습니다. 직전 직업도 캐터필러 영업사원, 식당 부점장, 교사, 교도소 상담원, 배달원, 웨이터로 제각각이었고, 지원서 직업란에 무직이라고 쓴 사람도 있었습니다. 여성은 두 명이었습니다.

데니스가 왜 이런 조합을 골랐는지는 그가 믿은 가설을 보면 짐작이 갑니다. 매매 경력이 길수록 버려야 할 습관도 많습니다. 반대로 블랙잭이나 스포츠 베팅으로 확률을 다뤄 본 사람은, 한 번의 결과가 아니라 여러 번의 분포로 생각하는 훈련이 이미 몸에 배어 있습니다.

이 집단에 붙은 이름이 터틀, 거북이였습니다. 가장 널리 퍼진 설명은 싱가포르의 거북이 양식장 이야기입니다. 그곳을 둘러본 데니스가 거북이를 길러 내듯 트레이더를 길러 내겠다고 말했다는 거죠. 마이클 코벨의 책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 선물업계 명예의 전당 소개문 같은 공식 성격의 자료에도 싱가포르 거북이 농장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정도로 실려 있습니다.

다만 이 일화는 관계자의 회고를 옮긴 형태로만 전해집니다. 방문 날짜나 농장 이름 같은 뒷받침 기록이 공개된 적은 없습니다. 다른 설명도 있습니다. 한 교육생은 처음 붙은 이름이 제자들이라는 뜻의 다른 단어였다고 했고, 또 다른 참가자는 데니스가 1960년대 팝 그룹 더 터틀스를 좋아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기억했습니다.

이름의 유래를 따지는 일은 사소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이 실험을 둘러싼 거의 모든 이야기가 똑같은 구조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럴듯한 통설이 있고, 출처는 대부분 관계자의 회고이며, 숫자든 일화든 교차 검증이 쉽지 않습니다.

2주짜리 수업의 뜻밖의 단순함

1983년 12월, 첫 수업이 열렸습니다. 기간은 2주 남짓. 가르친 내용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어떤 신호가 나오면 들어가고, 어떤 신호가 나오면 나온다. 들어갈 때는 얼마를 걸고, 틀렸다면 어디서 포기한다. 경제 전망이나 수급 분석은 거의 다루지 않았습니다.

들어가는 신호의 뼈대는 돌파였습니다. 가격이 최근 일정 기간의 최고가를 넘어서면 상승 흐름이 시작됐다고 보고 따라 들어갑니다. 반대로 최근 일정 기간의 최저가를 깨면 하락 흐름으로 보고 반대편에 섭니다. 선물시장에서는 가격이 내려갈 때 돈을 버는 포지션도 올라갈 때와 똑같이 잡을 수 있기 때문에, 규칙은 양방향으로 작동하도록 짜여 있었습니다. 교재에는 기간이 짧은 체계와 긴 체계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발상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었습니다. 리처드 돈치안 같은 선배들이 이미 비슷한 개념을 다듬어 두었죠. 터틀 수업의 특징은 독창성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판단을 숫자로 못 박아 사람의 재량을 지워 버렸다는 데 있었습니다.

다룰 시장도 미리 정해져 있었습니다. 거래가 활발한 금리, 통화, 지수, 금속, 에너지 상품이 대상이었습니다. 포지션 한도 규제가 걸린 곡물, 그리고 거래 관행이 문제가 되던 축산물은 목록에서 빠졌습니다.

나오는 규칙도 같은 식이었습니다. 흐름이 반대로 꺾였다고 볼 만큼 가격이 되돌려지면 기계적으로 빠져나옵니다. 손실을 끊는 기준은 가격의 절대 수치가 아니라 변동성에 묶여 있었습니다. 얼마가 빠지면 손절한다가 아니라, 그 시장이 평소 흔들리는 폭의 몇 배까지 버틴다는 식이었죠. 손절 주문을 증권사에 미리 걸어 두는 대신, 닿으면 반드시 지키는 가격으로 머릿속에 넣어 두게 했다는 점도 특이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이 글에 적은 내용은 40년 전 교실에서 어떤 생각으로 규칙을 짰는지에 대한 설명일 뿐, 지금 따라 하면 되는 지침이 아닙니다. 실제 규칙 문서에는 시장별 계약 수 상한, 포지션을 추가로 늘리는 간격, 서로 비슷하게 움직이는 시장끼리의 합산 한도 같은 조건이 빼곡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보겠지만, 그 규칙을 그대로 받은 사람들의 결과조차 극단적으로 갈렸습니다.

진짜 비법은 얼마를 걸 것인가였습니다

교육생들이 훗날 입을 모아 꼽은 핵심은 들어가는 신호가 아니었습니다. 베팅의 크기였죠. 같은 신호를 보고 1계약을 살지 10계약을 살지 정하는 규칙이, 성적 곡선의 모양을 사실상 결정했습니다. 신호는 교재의 한 장에 불과했고, 크기 조절이 교재의 뼈대였습니다.

발상은 이렇습니다. 먼저 그 시장이 하루에 평균 얼마나 출렁이는지를 숫자로 잡습니다. 최근 약 20일 동안의 하루 변동폭을 평균한 값으로, 교재에서는 이것을 N이라 불렀습니다. 여기서 변동성이란 가격이 오르내리는 폭의 크기를 말합니다. 조용한 시장은 N이 작고, 난폭한 시장은 N이 큽니다.

중요한 건 그다음입니다. 포지션의 크기를, 가격이 N만큼 불리하게 움직였을 때 계좌의 1퍼센트가 줄어드는 수준에 맞춥니다. 그러면 난폭한 시장에서는 저절로 적게, 조용한 시장에서는 저절로 많이 들어가게 됩니다. 종목마다 다른 성질을 '같은 위험'이라는 공통 단위로 바꿔 버리는 장치입니다. 손실을 끊는 선도 N의 배수로 잡았기 때문에, 한 번 틀렸을 때 날아가는 금액은 어느 시장에서나 대체로 비슷했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바람이 센 날엔 돛을 줄이고, 잔잔한 날엔 돛을 폅니다. 바람이 어떻든 배가 기우는 각도는 비슷하게 유지하자는 생각이죠. 같은 1,000만 원을 걸어도, 하루에 1퍼센트씩 움직이는 대상과 5퍼센트씩 움직이는 대상은 실제로 짊어지는 위험이 다섯 배 다릅니다. 터틀 교재는 이 차이를 눈대중이 아니라 계산으로 처리했습니다.

이 설계가 왜 중요한지는 반대 경우를 떠올리면 금방 보입니다. 많은 개인투자자는 확신이 들 때 크게 걸고, 자신이 없을 때 작게 겁니다. 문제는 확신의 세기와 적중 확률이 서로 별 상관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교재는 확신이라는 변수를 계산에서 아예 지워 버렸습니다. 다만 이 발상을 안다고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에 벌어진 일이 그것을 보여 줍니다.

성적표, 그리고 엇갈리는 숫자들

수업이 끝난 1984년 1월, 교육생들은 계좌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시장별로 12계약까지만 허용하는 시험 기간이었습니다. 이를 통과한 사람에게는 25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 사이의 자금이 배정됐습니다. 1984년 12월에는 두 번째 기수가 같은 과정을 밟았고, 두 기수를 합쳐 스물한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이 터틀이 됐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얼마를 벌었을까요. 전해지는 총액은 자료마다 다릅니다. 4년에서 5년 동안 터틀 전체가 거둔 이익을 1억 달러 이상으로 적은 자료가 있고, 1억 5천만 달러로 적은 자료, 1억 7천 5백만 달러로 적은 자료도 있습니다.

데니스 본인은 총 1억 5천만 달러를 벌어 그중 1억 1천만 달러가 남았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세부 회계가 공개된 적이 없으니, 어느 숫자도 확정된 사실로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개인별 수치는 더 흐릿합니다. 한 교육생은 자신이 집단 전체 이익 가운데 3천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관계자들에게 반박당했습니다. 또 다른 참가자는 1986년에 65퍼센트 수익을 냈다고 밝혔습니다. 30년 뒤 인터뷰에서 몇몇은 손해는 안 봤다고만 할 뿐 구체적인 숫자는 말하지 않았고, 데니스와 에크하르트는 인터뷰 요청 자체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니 이 실험을 '평균 연 몇 퍼센트'로 요약하는 문장은 대체로 믿기 어렵습니다. 널리 인용되는 높은 연평균 수익률은 특정 몇 명의 특정 기간을 전체에 덧씌운 경우가 많습니다. 공개된 기록을 가진 터틀은 훗날 운용사를 세워 감사받은 성적표를 남긴 소수뿐입니다. 나머지의 숫자는 본인의 회고 말고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비교적 분명한 사실도 하나 있습니다. 1980년대 중반의 선물시장에는 몇 달씩 한 방향으로 밀고 가는 큰 흐름이 잦았습니다. 달러의 급등과 급락, 금리의 장기 하락, 원유와 곡물의 큰 파동이 그 시기에 겹쳤죠. 돌파를 따라가는 규칙이 가장 잘 먹히는 환경이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은 뒤에 남는 논쟁의 핵심 근거가 됩니다.

같은 규칙, 전혀 다른 결과

이 실험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성공담이 아니라 편차입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사람에게, 같은 시기에, 같은 규칙을 배웠습니다. 자금도 같은 주인에게서 나왔습니다. 정보 격차는 전혀 없었죠. 그런데도 결과는 극단적으로 벌어졌습니다.

첫 기수는 출발부터 고전했습니다. 거래를 시작하고 반년쯤 지났을 때 첫 기수의 평균 자산이 절반 가까이 줄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984년에 20퍼센트 넘게 손실을 본 참가자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듬해 50퍼센트가 넘는 수익으로 돌아섰지만, 첫해의 손실은 훗날 공개된 그의 운용 성적표에서 빠져 있었습니다. 그 누락을 지적한 건 같은 기수의 동료였습니다.

규칙을 그대로 지키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는 숫자가 설명해 줍니다. 한 교육생이 나중에 두 체계를 합쳐 검증해 보니, 최악의 구간에서 자산이 80퍼센트까지 줄어드는 경로가 나왔습니다. 수업에서 들은 수준은 50퍼센트 정도였는데 말이죠.

80퍼센트가 줄어든 자산이 원래대로 돌아오려면 400퍼센트를 벌어야 합니다. 규칙을 지킨다는 건 이런 구간을 눈 감고 통과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사람이 무너지는 지점은 대체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손실이 연달아 날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구간이 길어질 때. 들고 있는 포지션이 손실 제한선 근처에서 흔들릴 때. 규칙을 어긴 사람들은 하필 어기는 것이 가장 치명적인 순간에 어겼습니다. 몇몇은 프로그램 초기에 조용히 탈락했습니다.

규칙을 지키고도 불행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1986년에 두 자릿수 하락 한 번 없이 좋은 성적을 냈는데도 배정 자금과 성과 보수가 깎였습니다. 5년 전속 계약이 남아 있었지만, 그는 1987년 7월 떠났습니다.

자본을 쥔 쪽이 배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구조에서는, 규칙을 지키는 것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남아 있었던 겁니다. 흔히 전해지는 성공담에서는 이 대목이 거의 빠져 있습니다.

30년 뒤 한 참가자가 남긴 평가가 이 지점을 가장 정확하게 짚습니다. 매매는 가르칠 수 있다. 다만 아무에게나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같은 교실에 앉았던 사람이 내린 조건부 결론입니다. 데니스의 주장과 에크하르트의 주장을 절반씩 인정한 문장이기도 합니다.

1988년 봄, 먼저 무너진 건 선생이었습니다

실험은 성공 선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88년 초, 데니스는 프로그램을 갑작스럽게 닫았습니다. 교육생 가운데는 전속 계약 기간이 남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 데니스는 아버지를 잃은 상태였다고 전해집니다.

배경에는 데니스 자신의 손실이 있었습니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에 그가 잃은 돈은 1천만 달러였다고 전해지고, 1987년부터 1988년까지 합치면 5천만 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1988년 4월, 그가 운용하던 자산은 55퍼센트 가까이 줄어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달 터틀들의 손실은 10퍼센트에서 12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차이를 만든 건 규칙이 아니라 레버리지였습니다. 레버리지는 자기 자본보다 큰 금액을 움직여 손익을 함께 키우는 것을 말합니다. 한 참가자는 데니스가 짊어진 위험이 교육생들의 100배쯤 됐을 거라고 추정했습니다. 같은 흐름이 꺾였을 때 가장 크게 다친 사람이, 규칙을 만들고 가르친 쪽이었던 거죠. 교육생들이 그해에도 전체로는 이익을 보태 줬다는 점이 더 묘합니다.

당시 그는 외부 투자자의 돈을 받아 굴리는 공모 펀드도 맡고 있었습니다. 손실이 불어나자 투자자들이 소송을 냈고, 그가 스스로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1990년, 250만 달러가 넘는 금액으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잘못을 인정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 조건이었고, 이후 몇 년간의 매매 이익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나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1988년 봄 이후 외부 자금 운용을 접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에 다시 남의 돈을 굴렸지만, 2000년 여름의 손실 뒤 그 사업도 닫았습니다. 공모 펀드에 대해서는 암 치료제가 된다 해도 다시는 맡지 않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그는 정치 활동과 재단 활동으로 옮겨 갔고, 2009년 선물업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비밀 규칙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

교육생들은 10년 동안 규칙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는 약정에 묶여 있었습니다. 기간이 끝난 뒤에도 대부분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선생에 대한 예의 때문이기도 했고, 아직 그 규칙으로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약정이 끝난 줄도 모르고 인터뷰를 거절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상황을 바꾼 건 돈을 받고 규칙을 팔기 시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 '터틀 규칙'이라는 이름을 단 교재와 강의가 상당한 값에 거래되기 시작했습니다. 파는 사람 중에는 실제 참가자도 있었고, 아닌 사람도 있었습니다. 원래 규칙을 만든 두 사람의 동의를 받은 경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2003년, 첫 기수 참가자 커티스 페이스가 규칙 전체를 정리한 문서를 무료로 풀었습니다. 그는 원 저작자들의 동의 없이 규칙이 팔리는 현실을 꼬집으며, 그것을 노골적이고 기회주의적인 지식재산 절취라고 불렀습니다. 공짜로 뿌리면 파는 쪽의 장사가 무너질 거라는 계산이었죠. 문서 끝에는 혜택을 본 사람들에게 데니스와 에크하르트, 동료 터틀들의 이름으로 자선단체에 기부해 달라는 부탁도 담겼습니다.

같은 문서에서 그는 흥미로운 단서를 하나 달았습니다. 규칙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결정적인 건 규칙을 믿고 끝까지 지키는 능력이라는 것. 규칙을 공개하면서 그 규칙의 값어치를 스스로 깎는 말을 함께 한 셈입니다. 그 뒤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교육 산업으로 흘러갔습니다. 2007년 마이클 코벨이 참가자들을 취재한 책을 냈고, 페이스 본인도 책을 썼습니다.

반대로 성적표를 남긴 소수는 조용히 운용만 했습니다. 체서피크 캐피털, EMC 캐피털, 라바 마켓 리서치처럼 감사받은 기록을 공개한 운용사들이 그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체서피크를 세운 참가자는 훗날 1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굴렸다고 전해지고, EMC를 이끈 참가자는 2013년 5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책과 강의로 간 사람과 운용 기록으로 남은 사람이 갈린 지점은, 대체로 실제 성적이 있었느냐였습니다.

모두가 아는 규칙도 여전히 통했을까

규칙이 공개된 뒤 떠오르는 가장 자연스러운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제 누구나 아는 규칙이 됐는데, 그래도 돈이 벌렸을까. 터틀 체계를 과거 데이터에 되돌려 검증한 작업들은 일관된 모양을 보여 줍니다. 1986년 이후 성적이 크게 꺾이고, 1996년부터 2009년까지는 거의 평탄했습니다.

그렇다고 추세추종이라는 발상 자체가 죽은 건 아닙니다. 추세추종은 오르는 것을 따라 사고 내리는 것을 따라 파는, 방향이 잡힌 흐름에 올라타는 접근을 말합니다.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200년 넘는 기간을 검증한 연구에서는 이 전략의 장기 성적이 꾸준한 편이었습니다.

다만 같은 연구는 2011년 무렵부터 성적이 평탄해졌다는 점도 함께 지적합니다. 며칠 단위의 짧은 흐름을 노리는 방식은 1990년대 이후 뚜렷하게 힘이 빠졌다고 봅니다.

왜 꺾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갈립니다. 한쪽은 시장 구조가 바뀌었다고 봅니다. 같은 전략을 쓰는 돈이 늘면서 돌파 지점에서 챙길 몫이 줄었다는 거죠. 다른 쪽은 구조가 아니라 환경 탓이라고 봅니다. 큰 한 방향 흐름 자체가 드물었던 시기였을 뿐, 큰 흐름이 다시 오면 성적도 돌아온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2022년처럼 금리와 원자재가 한 방향으로 크게 움직인 해에는 이 계열의 성적이 되살아났습니다.

분명한 것도 있습니다. 규칙을 아는 것과 규칙으로 돈을 버는 것 사이에는 10년 넘게 벌어질 수 있는 틈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교롭게도 규칙이 공짜로 풀린 2003년 전후는 이 전략에 가장 재미없는 구간이었습니다. 문서를 받아 든 사람 대부분이 그 지루함을 버티지 못했으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르친 것인가, 골라낸 것인가

그래서 이 실험은 무엇을 증명했을까요. 데니스 쪽의 해석은 간단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2주를 가르쳐 이익을 내게 만들었으니 매매는 가르칠 수 있다. 그는 훗날 매매가 자기 생각보다도 더 가르칠 수 있는 것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반대 해석은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증명된 건 '가르칠 수 있다'가 아니라 '골라낼 수 있다'라는 주장입니다. 1,000명 이상에서 23명을 추리는 데 63문항 시험과 서술형, 성향 심사가 동원됐습니다. 확률적 사고가 이미 몸에 붙은 사람들을 골라낸 뒤의 성공이라면, 그게 교육의 성과인지 선발의 성과인지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블랙잭 프로까지 들어 있었다는 명단은 그 의심을 키웁니다.

다른 하나는, 증명된 건 '그 시대 그 시장에서 통했다'는 것뿐이라는 주장입니다. 1980년대 중반은 큰 흐름이 길게 이어진 시기였고, 같은 규칙의 성적은 1986년 이후 꺾였습니다. 규칙을 함께 설계한 에크하르트조차 체계적 매매를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은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결과의 큰 편차가 결국 기질 문제를 가리킨다는 자기 주장도 끝내 거두지 않았죠. 그는 뒤에 자기 회사를 세워 운용을 이어 갔습니다.

두 해석 가운데 하나를 고르기는 어렵습니다. 23명의 개별 성적표가 전부 공개된 적이 없고, 비교할 대조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통제된 실험이 아니라 한 번의 흥미로운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는 과학보다 역사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40년 넘게 인용되는 건, 어쩌면 결론이 깔끔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규칙을 아는 것, 지키는 것, 그리고 통하는 것

이 이야기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건 수익 금액입니다. 하지만 기록을 끝까지 따라가 보면 눈에 남는 건 다른 쪽입니다. 같은 규칙을 같은 날 같은 교실에서 받은 사람들의 결과가 왜 그렇게까지 갈렸을까. 성공한 소수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조용히 탈락한 사람들의 이름은 대부분 남지 않았습니다.

그 답에 가장 가까운 건 데니스 자신이 남긴 말입니다. 자기 매매 규칙을 신문에 그대로 실어도 아무도 따르지 않을 거라는 말. 실제로 규칙은 2003년, 신문보다 더 널리 공개됐습니다. 그 뒤로 터틀만 한 성적을 낸 사람의 명단이 길어졌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습니다. 정보가 모자라서 못 벌었던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베팅 크기에 대한 생각도 남습니다. 교육생들이 공통으로 꼽은 핵심은 무엇을 사느냐가 아니라 한 번에 얼마를 거느냐였습니다. 변동성이 큰 대상에 같은 금액을 걸면 사실은 더 크게 건 것이라는 발상은, 종목 고르기에만 쏠린 시선을 조금 옮겨 놓습니다. 어떤 수치를 따라 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위험을 금액이 아니라 흔들림의 크기로 재는 관점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선생의 결말이 있습니다. 규칙을 만들고 가르친 사람이 1988년 봄 자기 학생들보다 몇 배 더 크게 다쳤고, 외부 자금 운용을 두 번이나 접었습니다. 규칙을 아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다르고, 지키는 것과 그 규칙이 통하는 환경에 서 있는 것은 또 다릅니다.

40년 전 시카고의 교실이 남긴 가장 쓸모 있는 교훈은 아마 수익률 숫자가 아닐 겁니다. 아는 것, 지키는 것, 통하는 것. 이 셋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