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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실에서만 착해지던 자동차

2013년 어느 날, 미국 서해안 고속도로를 디젤 승용차 세 대가 달리고 있었습니다. 트렁크에는 커다란 측정 장비가 실려 있었고, 배기관에는 관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애틀까지, 도심 정체 구간과 산길과 고속 주행 구간을 섞어 수천 킬로미터를 달리는 시험이었습니다.

시험을 의뢰한 쪽은 미국 정부가 아니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작은 비영리 연구단체였습니다. 그리고 이 조촐한 도로 시험이,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회사의 거짓말을 밟게 됩니다.

사실 이들의 원래 목적은 고발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디젤 승용차의 배출가스가 기준보다 훨씬 심하다는 의심이 쌓여 있었습니다. 반면 미국은 배출 기준이 유럽보다 엄격했죠. 그러니 미국에서 팔리는 디젤차를 도로에서 실제로 재 보면, '규제만 제대로 하면 디젤도 깨끗해질 수 있다'는 좋은 사례가 되리라 기대했던 겁니다.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시험실에 세워 놓고 재면 기준을 통과하던 차가, 도로에 나가자 질소산화물을 기준의 수십 배까지 뿜어냈습니다. 이 한 번의 도로 시험에서 시작된 일은 결국 폭스바겐 그룹에 300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물렸고, 유럽 자동차 산업의 방향 자체를 바꿔 놓았습니다.

'클린 디젤'이라는 약속

2000년대 후반, 폭스바겐은 미국 시장에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기름을 덜 먹고 이산화탄소도 덜 내면서 힘도 좋은 디젤 엔진. 여기에 매연 문제까지 해결했다며 '클린 디젤'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세운 겁니다.

하이브리드 차로 앞서가던 일본 업체들과는 다른 길로 승부하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광고는 디젤에 대한 미국 소비자의 편견을 정면으로 비웃는 식이었고,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지점은 질소산화물, 흔히 '녹스(NOx)'라고 부르는 물질이었습니다. 디젤 엔진은 연료를 아끼려고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연료를 태우는데, 그럴수록 질소산화물이 더 많이 생깁니다. 이 물질은 미세먼지와 스모그의 원인이 되고, 호흡기에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엔진 뒤에 따로 정화장치를 달아 걸러 내야 합니다. 문제는 이 장치를 열심히 돌릴수록 연비가 떨어지고 부품도 빨리 닳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연비와 성능, 정화 성능, 원가.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만족시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정직하게 풀려면 더 비싼 부품과 더 긴 개발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폭스바겐이 고른 건 세 번째 길이었습니다. 시험받을 때만 정화장치를 제대로 돌리고, 실제 도로에서는 슬쩍 힘을 빼는 것.

작은 연구단체가 켠 계측기

이 문제를 파고든 곳은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라는 비영리 연구단체였습니다. 이들은 2012년 말,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학의 대체연료 엔진 배출 연구센터에 도로 주행 측정을 맡겼습니다.

연구팀은 차에 실을 수 있는 이동식 배출가스 측정기로 2013년 초부터 디젤 승용차 세 대를 시험했습니다. 두 대는 폭스바겐 차, 한 대는 비교용으로 고른 다른 회사 차였습니다.

비교용 차는 도로에서도 대체로 기준 안에 머물렀습니다. 문제는 폭스바겐 차였습니다. 한 차종은 도로에서 질소산화물이 기준의 15배에서 35배까지 나왔습니다. 다른 차종은 5배에서 20배. 조건에 따라서는 40배에 이르는 수치도 보고됐습니다. 측정 오차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연구팀은 2014년 5월 보고서를 공개하고, 결과를 미국 환경보호청(EPA)과 캘리포니아 대기자원위원회에 알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시간이 꽤 걸립니다. 규제당국이 설명을 요구하자 폭스바겐은 기술적인 원인을 들며 소프트웨어를 고치겠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고친 뒤 다시 재도 도로에서의 수치는 그대로였습니다. 결국 당국이 인증을 내주지 않겠다고 압박하자, 2015년 9월 회사는 소프트웨어의 존재를 인정했습니다.

시험실에서만 켜지던 정화장치

이 소프트웨어는 흔히 '배출가스 차단 장치', 영어로 디피트 디바이스(defeat device)라고 불립니다. 원리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공인 배출가스 시험은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차를 굴림대 위에 올려놓고, 정해진 속도와 시간표에 따라 가속하고 감속합니다. 핸들은 돌아가지 않고, 네 바퀴 중 두 바퀴만 도는 경우도 있습니다.

엔진을 제어하는 컴퓨터는 이런 특징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핸들 조작이 없고, 속도 변화가 시험 규격과 똑같이 흘러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지금은 시험 중'이라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러면 정화 기능을 최대로 올려 기준을 통과하고, 시험 조건에서 벗어나면 다시 정화 기능을 낮춰 연비와 성능을 챙깁니다.

자동차가 언제 감시받는지 알고, 그때만 얌전하게 굴었던 셈입니다.

이 소프트웨어는 2009년형부터 2015년형까지, 전 세계 약 1,100만 대에 들어갔습니다. 그중 미국 판매분이 약 50만 대였습니다. 숫자가 이만큼 크다는 건, 몇몇 직원의 즉흥적인 장난이 아니라 여러 부서가 여러 해 동안 유지해 온 일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점이 이 사건을 단순한 품질 결함과 완전히 다른 성격으로 만들었습니다.

은색 폭스바겐 제타 TDI 승용차의 앞모습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촬영한 2014년형 폭스바겐 제타 TDI 디젤 승용차.MercurySable99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2015년 9월 18일, 통지서 한 장

2015년 9월 18일, 미국 환경보호청이 폭스바겐에 대기청정법 위반 통지를 보냈습니다. 문서는 길지 않았지만 내용은 분명했습니다. 이 회사가 배출가스 시험을 피하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를 차에 넣었다는 것.

다음 거래일부터 주가가 무너졌습니다. 소식이 알려진 뒤 며칠 사이에 시가총액의 3분의 1 가까이가 사라졌습니다. 참고로 이 회사 주가는 2008년에도 한 번 시장을 뒤집어 놓은 적이 있는데, 그때는 주가가 폭등해 공매도 투자자들이 손실을 본 전혀 다른 사건이었습니다.

폭스바겐 주가 추이를 나타낸 선 그래프
배출가스 조작이 드러난 뒤 폭스바겐 주가가 급락한 흐름을 나타낸 그래프.Dennis Bratland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닷새 뒤인 2015년 9월 23일, 마르틴 빈터코른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났습니다. 새 경영진은 사과와 함께 대규모 리콜과 조사 협조를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입은 상처는 회계로 정리되는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운 단어가 하필 '클린'이었으니까요. 독일 제조업의 정직함이라는 이미지 자체가 흔들렸고, 이 사건에는 곧 '디젤게이트'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청구서는 여러 장으로 날아왔다

비용은 여러 갈래로 청구됐습니다. 2016년 6월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민사 부문 합의에 이르며 최대 147억 달러를 내기로 했습니다. 해당 차량을 되사 주거나 수리해 주는 비용, 차주 보상금, 환경 피해를 메우기 위한 기금이 여기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약 20억 달러는 전기차 충전 시설을 짓는 데, 30억 달러 가까운 돈은 각 주의 배출 저감 사업에 쓰이도록 정해졌습니다.

형사 책임은 따로였습니다. 2017년 1월 폭스바겐은 미국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43억 달러 규모의 합의에 서명했고, 2017년 4월 법원이 28억 달러의 형사 벌금을 확정했습니다. 독일에서는 2018년 6월 검찰이 회사에 10억 유로의 과징금을 매겼습니다.

유럽 각국에서 차주들이 낸 민사 소송도 줄을 이었습니다. 2020년 무렵 집계로 이 사건이 폭스바겐에 물린 총비용은 330억 달러를 넘었고, 이후 늘어난 소송 비용까지 합치면 34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여기서 회사의 책임과 개인의 책임은 나눠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는 미국에서 혐의를 인정했고 제재도 확정됐습니다. 반면 개인에 대한 형사 절차는 나라마다 속도도, 결론도 달랐습니다.

미국에서는 엔지니어 제임스 량이 수사에 협조하며 혐의를 인정해 40개월 형을 받았습니다. 미국 내 규제 대응을 맡았던 올리버 슈미트는 7년 형을 받았습니다.

독일에서는 수사와 재판이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2025년 5월, 브라운슈바이크 법원이 전직 관리자 네 명에게 사기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두 명에게는 각각 4년이 넘는 형과 2년이 넘는 실형이, 나머지 두 명에게는 1년이 넘는 집행유예가 내려졌습니다.

가장 널리 이름이 알려진 빈터코른 전 CEO의 경우는 다릅니다. 그를 상대로 한 독일 형사 재판은 건강상 이유로 여러 차례 멈췄고, 지금까지 유죄 판결이 확정된 바 없습니다. 조직의 맨 꼭대기가 언제부터 무엇을 알고 있었는가. 이 사건에서 가장 오래 다뤄진 질문이지만, 법적으로는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영역입니다.

디젤이 저물고 전기차가 떠오르다

규제부터 바뀌었습니다. 시험실에서만 통과하는 차를 막으려면 도로에서 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유럽연합(EU)은 실제 도로 주행 배출을 측정하는 새 시험 체계를 도입해 2019년부터 본격 적용했고, 이 방식은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인도, 일본 등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규제가 서류를 들여다보는 일에서, 도로에 나가 직접 재는 일로 옮겨 간 겁니다.

시장은 그보다 빨랐습니다. 유럽 신차 판매에서 디젤이 차지하던 비중은 2015년 52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2023년에는 13.6퍼센트로 내려앉았습니다. 소비자 신뢰가 무너진 데다, 도시마다 디젤차 운행을 제한하는 규제가 늘어난 결과였습니다. 유럽 자동차 업계가 수십 년간 쌓아 온 디젤 기술 자산이 순식간에 값을 잃었습니다.

도로 위에 걸린 대기오염 저감용 속도 제한 표지
독일 뮌헨 란츠후터 알레에 대기오염을 줄이려고 내건 속도 제한 표지.Henning Schlottmann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이 전기차였습니다. 가장 극적으로 방향을 튼 곳은 다름 아닌 폭스바겐 자신이었습니다. 회사는 사건 이후 전기차 전용 설계와 배터리 확보에 대규모 투자를 발표하고, 전용 전기차 모델들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디젤에서 쌓은 우위가 사라진 마당에 달리 고를 길이 마땅치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유럽 전체로 보면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까지 합친 전기차의 신차 판매 비중은 2020년대 중반 25퍼센트 선을 넘어섰습니다.

시험이 끝난 뒤에도 같은 숫자일까

이 사건이 먼저 알려 주는 것은 감시자의 자리입니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의 조작을 처음 확인한 곳은 예산이 넉넉한 정부 기관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측정을 해 보던 작은 연구단체였습니다. 큰 기관이 크다는 이유로 모든 걸 보고 있으리라는 가정은 자주 틀립니다. 어떤 산업을 판단할 때, 규제기관 말고 누가 실제로 확인하고 있는지 따져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검사받는 숫자와 실제 숫자는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남습니다. 회사가 내놓는 지표에는 정해진 방식대로 잰 값이 많습니다. 그 방식이 현실과 얼마나 닮았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배출가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정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모든 성과 지표에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회사 차원의 인정과 개인의 형사 책임을 나눠 읽는 습관도 필요합니다. 폭스바겐은 혐의를 인정하고 막대한 제재를 받았지만, 개인에 대한 판단은 나라마다 다른 결론에 이르렀고 일부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사건의 크기와 개인 책임의 확정은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회사의 부정이 산업 전체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디젤게이트는 폭스바겐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유럽 자동차 산업이 디젤에서 전기로 무게를 옮기는 시점을 몇 년 앞당겼습니다. 오래된 강점이 하루아침에 짐으로 바뀌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납니다. 지금 가장 튼튼해 보이는 기술과 사업 모델이 어떤 전제 위에 서 있는지, 한 번씩 들여다볼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시험실에서만 착해지던 자동차는 결국 고속도로 위에서 들통났습니다. 숫자가 진짜인지 알고 싶다면, 시험실 밖에서 다시 재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