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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 만에 사라진 470억 달러

2019년 9월 30일, 위워크가 상장 신청을 스스로 거둬들였습니다. 불과 여덟 달 전인 그해 1월만 해도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470억 달러였습니다. 당시 뉴욕 증시에 상장된 웬만한 대형 제조업체보다 높은 값이었죠.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큰 사고가 터진 것도, 무서운 경쟁사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한 일이라고는 증권 당국에 상장 서류를 낸 것뿐이었습니다.

서류를 낸 날이 2019년 8월 14일, 상장을 철회한 날이 9월 30일. 정확히 6주 남짓입니다. 그 6주 동안 달라진 것은 하나였습니다. 그때까지 비공개였던 숫자와 계약 내용이 처음으로 바깥에 드러났다는 것.

위워크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를 무너뜨린 것은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회사가 스스로 제출한 서류였습니다. 사무실을 빌려 다시 빌려주는 사업이 어떻게 기술기업 대접을 받게 됐는지, 그리고 그 대접이 어떻게 한 달 반 만에 걷혔는지 공개된 기록을 따라가 봅니다.

맨해튼 미드타운의 위워크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에 있는 위워크.Ajay Suresh · CC BY 2.0 · 위키미디어 공용

사무실을 빌려 되파는 사업

위워크는 2010년 뉴욕 소호에서 애덤 노이만과 미겔 매켈비가 함께 세운 회사입니다. 사업 구조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건물주에게서 넓은 공간을 오랫동안 통째로 빌립니다. 칸을 나누고 인테리어를 하고 책상과 커피머신을 들여놓습니다. 그리고 개인이나 작은 회사에 월 단위로 다시 빌려줍니다.

이런 사업은 서비스드 오피스, 공유 오피스라는 이름으로 수십 년 전부터 있었습니다. 위워크가 달랐던 건 속도와 분위기였습니다. 공간을 세련되게 꾸미고, 입주사끼리 어울리는 행사를 열고, 전 세계 어느 지점이든 쓸 수 있는 회원권처럼 상품을 설계했습니다.

다만 이 구조에는 처음부터 뚜렷한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건물주와 맺는 계약은 보통 10년에서 15년짜리 장기 임대입니다. 반면 입주자와 맺는 계약은 월 단위로 해지할 수 있는 짧은 계약입니다. 들어오는 돈은 언제든 끊길 수 있는데, 나가는 돈은 십 년 넘게 묶여 있는 셈이죠. 경기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경기가 꺾이면 이 저울은 한쪽으로 크게 기웁니다.

그래도 위워크는 무섭게 커졌습니다. 2014년 12월 3억 5,500만 달러를 투자받으며 기업가치 50억 달러를 인정받았고, 뉴욕을 넘어 런던과 도쿄, 서울까지 지점을 늘려 갔습니다. 공간을 많이 확보할수록 회원이 늘고, 회원이 늘수록 다음 투자를 더 좋은 조건에 받는 흐름이 몇 해 동안 이어졌습니다.

공유 오피스 내부 공간
서울 종각역 근처 종로타워에 있는 위워크 공유 오피스 내부.Steve46814 · CC BY-SA 4.0 · 위키미디어 공용

임대업이 어떻게 기술기업 값을 받았나

위워크의 몸값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것은 일본 소프트뱅크였습니다. 창업자 노이만이 손정의 회장을 만난 것이 2016년. 소프트뱅크는 2017년 44억 달러를 넣기로 했고, 그해 위워크의 기업가치는 200억 달러로 뛰었습니다. 2019년 1월에는 20억 달러를 더 넣으면서 누적 투자액이 100억 달러에 이르렀고, 기업가치는 470억 달러가 됐습니다.

부동산을 빌려 되파는 회사에 왜 이런 값이 붙었을까요. 위워크 스스로 자신은 부동산 회사가 아니라고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공간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과 공동체를 판다고 했고,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로 공간 운영을 최적화하는 기술기업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이 구분은 말장난이 아니라 돈의 문제입니다. 부동산 임대업은 보통 번 돈의 몇 배 정도로 값이 매겨집니다. 반면 빠르게 크는 기술기업은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해도 매출의 몇 배, 때로는 열 배 넘는 값을 인정받습니다. 같은 사업이라도 어떤 이름표를 다느냐에 따라 기업가치가 몇 배씩 벌어지는 것입니다.

당시는 그런 이름표가 유난히 잘 통하던 때였습니다. 낮은 금리가 오래 이어지면서 갈 곳을 못 찾은 돈이 비상장 기업으로 몰렸고, 기업가치 10억 달러가 넘는 비상장 회사를 가리키는 '유니콘'이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비상장 상태에서는 투자자 몇 곳만 설득하면 값이 정해집니다. 상장은 시장 전체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죠. 위워크는 그 차이를 곧 뼈저리게 겪게 됩니다.

서류 한 부가 공개된 날

2019년 8월 14일, 위워크는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에 상장 서류를 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서류를 S-1이라고 부릅니다. 회사의 재무 상태와 위험 요소, 경영진과의 거래 내역까지 상세히 적어 공개해야 하는 문서입니다. 투자자를 보호하려고 만든 제도인데, 이날만큼 그 제도가 제 역할을 한 사례도 드물 겁니다.

먼저 드러난 것은 손실의 크기였습니다. 2018년 매출은 약 18억 달러, 순손실은 약 19억 달러였습니다. 1달러를 벌려고 1달러 넘게 쓴 셈입니다. 2019년 상반기에도 매출 약 15억 달러에 손실이 약 6억 9,000만 달러였습니다. 매출은 빠르게 늘고 있었지만, 손실도 나란히 늘고 있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장부 반대편에 있었습니다. 위워크가 앞으로 건물주들에게 내기로 약속한 임대료 총액은 수백억 달러 규모였습니다. 반면 입주자들에게서 받기로 확정된 돈은 그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앞서 말한 기간의 엇갈림이 숫자로 눈앞에 펼쳐진 겁니다.

기술기업이라는 설명을 받쳐 줄 근거도 약했습니다. 서류에는 공간 운영에 쓰는 자체 소프트웨어 이야기가 나왔지만, 매출의 대부분은 결국 공간 사용료였습니다. 기술로 따로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었던 것이죠.

낯선 지표, 낯선 거래들

위워크를 두고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것은 '커뮤니티 조정 에비타'라는 지표였습니다. 에비타(EBITDA)는 이자와 세금, 감가상각을 빼기 전의 영업이익을 뜻하는 흔한 지표입니다. 위워크는 여기서 마케팅비와 일반관리비, 신규 지점 개발과 디자인에 든 비용까지 빼고 계산한 숫자를 따로 만들어, 2018년 4월 채권을 발행할 때 공개했습니다.

회사는 이 숫자가 이미 자리 잡은 지점 한 곳의 수익성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식당 체인이 매장별 이익을 따로 공시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옹호론도 있었습니다. 다만 회계 기준에 없는 지표를 회사가 직접 만들어 이름 붙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빼 둔 비용을 되돌려 넣으면 손실이 그대로 드러났고, 시장은 이 숫자에 신뢰를 주지 않았습니다.

상장 서류에서 더 직접적인 반발을 부른 것은 창업자와 회사 사이의 거래였습니다. 노이만이 지분을 가진 건물 몇 곳을 위워크가 빌려 임대료를 내고 있었습니다. 노이만이 지배하는 법인이 'We'라는 상표권을 회사에 넘기고 590만 달러를 받은 내역도 공개됐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이 돈은 회사로 돌려보내졌습니다.

지배구조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위워크는 창업자 주식에 일반 주식의 20배에 이르는 의결권을 주는 구조였습니다. 이런 차등의결권은 창업자가 단기 실적 압박에 흔들리지 않게 해 준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돈을 내고도 의사결정에 거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큰 손실, 무거운 임대 부담, 창업자와의 거래, 약한 견제 장치. 이 모든 것이 한 문서 안에 나란히 놓이자 기관투자자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6주 만의 붕괴

시장이 매기는 값은 빠르게 내려갔습니다. 470억 달러로 거론되던 기업가치는 상장 논의 과정에서 100억 달러 근처까지, 일부 보도에서는 그보다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상장 전 투자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절차를 밟는 동안에도 수요가 붙지 않았습니다.

2019년 9월 24일, 노이만이 CEO에서 물러났습니다. 아티 민슨과 서배스천 거닝햄이 공동 CEO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9월 30일, 회사는 상장을 미루고 본업에 집중하겠다며 상장 신청을 철회했습니다.

위워크에게 상장은 단순한 자금 조달 수단이 아니었습니다. 상장으로 들어올 돈과 그에 연동된 대출을 전제로 지점 확장 계획을 짜 둔 상태였습니다. 상장이 무산되자 당장 현금이 급해졌고, 회사는 자산 매각과 대규모 인력 감축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보도된 감원 규모는 전체 인력의 상당 부분에 달했습니다.

결국 소프트뱅크가 구원에 나섰습니다. 2019년 10월 소프트뱅크가 100억 달러 규모의 지원 방안을 내놓았는데, 이때 매겨진 기업가치는 80억 달러에 못 미쳤습니다. 아홉 달 전 470억 달러와 비교하면 6분의 1도 되지 않는 값입니다. 노이만에게는 대출과 주식, 자문 수수료를 합쳐 17억 달러 규모로 평가된 퇴직 조건이 제시돼 또 한 번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 뒤의 이야기

소프트뱅크의 손실은 숫자로 확인됩니다. 2020년 5월 손정의 회장은 위워크 투자가 어리석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했고, 회사 가치를 29억 달러 수준으로 다시 매겼습니다. 소프트뱅크는 이 투자와 관련해 여러 분기에 걸쳐 큰 손실을 장부에 반영했습니다.

위워크는 2021년 10월 21일 결국 증시에 들어옵니다. 다만 정식 IPO(기업공개)가 아니라 우회 상장이었습니다. 이미 상장돼 있는 껍데기 회사와 합치는 방식인데, 이때 인정받은 기업가치는 약 90억 달러였습니다. 정식 상장 절차를 거치지 않은 만큼 심사도 한결 가벼웠습니다.

그러나 구조적 약점은 그대로였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자리 잡으면서 사무실 수요는 줄었지만, 장기 임대료 부담은 줄지 않았습니다. 2023년 11월 6일 위워크는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신청 당시 자산은 약 150억 달러, 부채는 약 186억 달러였습니다.

위워크는 2024년 부채를 크게 덜어 내고 파산 절차에서 벗어났습니다. 부동산 관리 소프트웨어 회사 야디 시스템즈가 지분 60퍼센트를 확보해 최대 주주가 됐습니다. 회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470억 달러라는 값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름표보다 서류를 먼저 읽어야 하는 이유

가장 먼저 남는 것은 이름표의 힘과 한계입니다. 같은 사업이라도 부동산 임대업으로 불리느냐, 기술기업으로 불리느냐에 따라 값이 몇 배씩 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회사를 볼 때는 그 회사가 스스로를 뭐라고 부르는지보다, 돈이 실제로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로 나가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회사가 직접 만든 지표도 조심스럽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회계 기준에 없는 이름의 숫자가 보도자료 맨 앞에 나온다면, 그 숫자가 무엇을 빼고 계산한 것인지부터 확인해 볼 일입니다. 빼 버린 항목들 속에 정작 그 사업의 본질적인 비용이 들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공시 서류의 가치입니다. 위워크의 문제들은 누가 새로 파헤친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사가 스스로 제출한 문서에 이미 적혀 있던 내용이었습니다. 읽기 지루하고 분량도 많지만, 회사가 법적 책임을 지고 쓰는 문서는 홍보 자료와 무게가 다릅니다.

한 시대를 상징했던 기업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6주였습니다. 화려한 이야기와 건조한 숫자가 어긋날 때 어느 쪽을 먼저 봐야 하는지, 위워크는 서류 한 부로 보여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