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p가 코스피를 멈춰 세운 날
2026-10-14 · 20분 읽기
2024년 8월 5일 월요일 오후 2시 14분. 증권사 객장과 스마트폰 화면의 숫자가 일제히 얼어붙었습니다. 한국거래소가 코스피 시장의 모든 종목 매매를 20분간 멈춰 세운 것입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지수가 전 거래일 종가 2,676.19에서 2,459.22까지 216.97포인트, 8.10% 떨어진 상태가 1분 넘게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규정대로라면 멈출 수밖에 없는 숫자였습니다. 코스닥은 그보다 18분 앞선 오후 1시 56분, 같은 이유로 이미 멈춰 서 있었습니다.
두 시장의 거래가 하루에 함께 중단된 것은 2020년 3월 19일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쳤던 그날 이후 1,600일 만의 일이었죠.
장이 끝났을 때 코스피는 2,441.55였습니다. 하루에 234.64포인트가 빠졌는데, 지수가 만들어진 뒤 가장 큰 하락 폭이었습니다. 코스닥은 88.05포인트, 11.30% 떨어진 691.28로 마감했습니다.
두 시장에서 하루 만에 사라진 시가총액은 약 235조 원. 코스피에서 924개, 코스닥에서 1,633개 종목이 내렸는데, 두 숫자 모두 역대 최다였습니다. 삼성전자도 10.3% 떨어진 7만 1,400원으로 장을 마쳤습니다. 2008년 10월 24일 이후 가장 큰 하락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날 한국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큰 기업이 망하지도, 정부가 흔들리지도, 전쟁이 터지지도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도 은행이 쓰러지거나 어느 나라가 부도를 내지 않았습니다.
있었던 일이라고는 하나뿐입니다. 바로 앞 주 수요일, 바다 건너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0.1%에서 0.25%로 올렸습니다. 0.15%포인트. 1억 원을 예금했을 때 1년 이자가 15만 원 더 붙는 정도의 변화입니다. 그 15만 원어치 변화가 어떻게 서울의 거래소를 멈춰 세웠을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싸게 빌려 비싸게 굴린다 — 세계의 돈줄이 된 나라
이야기는 '캐리 트레이드'라는 장사에서 시작합니다. 이자가 싼 나라의 돈을 빌려 이자가 비싼 나라의 자산에 넣고, 그 차이를 챙기는 거래입니다. 연 0.1%로 빌린 돈을 연 5%를 주는 미국 국채에 넣는다고 해 보죠. 환율만 가만히 있어 준다면, 가만히 앉아서 4.9%가 남습니다.
원리는 은행 창구에서 싼 대출을 받아 이자를 더 주는 상품에 넣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점은 빌리는 통화와 투자하는 통화가 다르다는 것. 그래서 환율이 움직이면 이익이 그대로 손실로 뒤집힐 수 있습니다.
이 싼 돈의 대표 공급처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은행은 1990년대 자산 거품이 꺼진 뒤 금리를 거의 0에 붙여 놓고 수십 년을 보냈고, 2016년부터는 아예 마이너스 금리까지 내려갔습니다. 세계 어디에도 일본만큼 싸게 돈을 꿔 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2022년 이후 미국 연준이 물가를 잡겠다며 금리를 5%대까지 끌어올리자 상황은 더 극단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5%포인트 넘게 벌어진 것입니다. 싸게 꿔서 비싸게 굴리는 장사의 수익률이 역사상 가장 좋아진 시기였습니다.
그 판이 얼마나 컸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릅니다. 캐리 트레이드는 어딘가에 등록하고 하는 거래가 아니라, 대출과 선물, 외환 스와프 같은 여러 창구에 흩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단서가 되는 숫자는 몇 가지 있습니다.
BIS(국제결제은행)가 2024년 9월에 내놓은 추산을 보면, 일본 밖 비은행 차입자에게 나간 엔화 국경 간 은행 대출은 2024년 1분기 2,710억 달러였습니다. 2021년 2분기 2,280억 달러에서 늘어난 수치입니다. 같은 시점 은행들이 일본 밖 비은행에 가진 엔화 채권은 모두 133조 엔, 약 8,800억 달러였습니다.
추정치는 기관마다 크게 엇갈렸습니다. 어떤 투자은행은 엔 캐리 전체 규모를 20조 달러, 일본 GDP의 다섯 배로 잡았습니다. 반면 BIS는 사태 직후 보고서에서 훨씬 좁게 봐, 무너진 포지션의 중간값을 40조 엔, 약 2,500억 달러로 추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료 공백 때문에 이 숫자가 실제보다 작게 잡혔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결국 요점은 이것입니다. 정확한 크기를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 자체가, 2024년 8월에 왜 아무도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7월 31일, 일본은행이 방향을 틀다
2024년 7월 31일 수요일,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가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했습니다. 무담보 콜금리 유도 목표를 0~0.1% 범위에서 0.25% 수준으로 올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국채 매입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계획도 함께 내놨습니다.

일본은행은 그해 3월 이미 마이너스 금리를 끝낸 터였고, 7월 인상은 그 연장선이었습니다. 금리 수준만 보면 여전히 세계 어느 중앙은행보다 낮았습니다.
그런데 시장이 읽은 메시지는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건 0.25%라는 높이가 아니라, 일본은행이 방향을 바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수십 년간 세계에 싼 돈을 대 온 창구가 서서히 닫힐 수 있다는 신호였죠.
캐리 트레이드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빌린 돈의 이자가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빌린 통화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엔화 가치가 오르면 갚아야 할 빚이 그만큼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도 그 전부터 엔화 약세를 버거워하고 있었습니다. 수입 물가가 치솟아 국내 여론이 나빠졌고, 외환당국은 7월에 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금리 인상까지 겹치자 엔화가 방향을 틀기 시작했습니다.
7월 초 달러당 161엔대였던 환율은 7월 말 150엔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몇 주 만에 엔화 가치가 7% 가까이 오른 셈인데, 선진국 통화로서는 대단히 빠른 속도입니다.
7월 말에서 8월 초 사이, 엔화를 빌려 팔아 둔 쪽은 조용히 빚을 되갚기 시작했습니다. 엔화를 다시 사서 갚으면 그 자체가 엔화를 더 강하게 만듭니다. 엔화가 강해지면 아직 남은 포지션의 손실이 커지고, 그쪽도 되갚기에 합류합니다.
금융시장에서는 이런 구조를 '되먹임 고리'라고 부릅니다. 불이 스스로 연료를 만들어 내는 상태죠. 다만 8월 2일 금요일까지, 이 고리에는 아직 성냥이 그어지지 않았습니다.
8월 2일 금요일, 성냥은 미국에서 그어졌습니다
2024년 8월 2일 금요일, 미국 노동부가 7월 비농업 고용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신규 고용은 11만 4,000명. 시장이 기대한 18만 5,000명을 크게 밑도는 숫자였습니다.
실업률은 6월 4.1%에서 7월 4.3%로 올랐습니다. 6월 고용 증가분도 17만 9,000명으로 낮춰 수정됐습니다. 미국 경제가 생각보다 빨리 식고 있다는 해석이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이 발표가 유독 민감했던 건 '샘 룰' 때문이었습니다. 실업률의 최근 3개월 평균이 지난 1년 동안의 3개월 평균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아지면 경기 침체가 이미 시작됐다고 보는 경험 법칙입니다. 7월 수치는 그 조건을 채웠습니다.
정작 이 법칙을 만든 경제학자 클라우디아 샘은 곧바로 선을 그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노동시장 구조가 뒤틀려 있어 이번에는 잘못된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의 시장에는 그 설명을 들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침체 가능성이 커진다는 말은 곧 연준이 금리를 빨리 내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양쪽에서 동시에 좁혀집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수익 원천이 한쪽이 아니라 양쪽에서 함께 사라지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날 아시아 시장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일본 닛케이225는 5.81%, 대만 가권지수는 4.43% 떨어졌습니다. 코스피는 101.49포인트, 3.65% 내린 2,676.19로 마감했습니다. 장중에는 2,666.40까지 밀려 하락률이 4.01%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코스닥은 34.20포인트 내린 779.33으로 끝났습니다. 코스피 2,700선이 두 달 만에 무너진 날이었습니다.
숫자보다 더 무서운 것은 외국인의 선물 매도였습니다. 그날 외국인은 코스피 현물을 8,461억 원, 코스닥을 1,501억 원어치 순매도했습니다. 동시에 지수 선물을 1조 9,202억 원어치 팔았습니다. 장중 한때 선물 순매도는 2조 2,600억 원까지 불었습니다.
선물을 대규모로 팔면 프로그램 매매가 현물을 따라 팔게 되고, 다음 거래일 개장 전부터 하락 압력이 예약됩니다. 그리고 다음 거래일은 월요일이었습니다.
8월 5일 월요일 — 도쿄에서 서울로
8월 5일 아침, 큰 시장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을 연 곳은 도쿄였습니다. 닛케이225는 개장하자마자 밀렸고, 하락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종가는 31,458.42. 전일 대비 4,451.28포인트, 12.40% 하락이었습니다.
포인트로는 역대 최대 하락이었습니다. 종전 기록은 1987년 블랙 먼데이 바로 다음 날인 10월 20일의 3,836포인트였는데, 37년 만에 그 기록이 깨졌습니다. 하락률로는 1987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였습니다.
서울은 도쿄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열립니다. 코스피는 개장부터 밀렸고,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 낙폭이 가팔라졌습니다. 오전 11시 0분 20초, 코스피200 선물이 전일 종가 366.70에서 348.05로 18.65포인트, 5.08% 떨어진 상태가 1분간 이어졌습니다. 매도 사이드카 발동. 그해 들어 첫 발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이드카는 프로그램 매매를 5분간 멈추는 장치일 뿐, 하락 자체를 막지는 못합니다.
오후가 되자 코스닥이 더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오후 1시 5분 19초, 코스닥150 선물이 6% 넘게, 코스닥150 지수가 3% 넘게 동시에 떨어진 상태가 1분 이상 이어졌습니다. 코스닥에도 매도 사이드카가 걸렸습니다. 코스피와 코스닥에 같은 날 매도 사이드카가 함께 걸린 것은 2020년 3월 23일 이후 1,596일 만이었습니다.
51분 뒤인 오후 1시 56분, 코스닥 지수가 779.33에서 716.53으로 62.80포인트, 8.05% 떨어졌습니다. 서킷브레이커 1단계 발동. 코스닥 역사상 열 번째였습니다.
코스피의 차례는 18분 뒤에 왔습니다. 오후 2시 14분, 지수가 2,459.22까지 8.10% 떨어진 상태가 1분을 넘기면서 코스피도 멈췄습니다. 역대 여섯 번째 서킷브레이커였습니다. 20분간의 정지가 끝나고 거래가 다시 열렸지만, 분위기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코스피200 변동성지수(VKOSPI)는 그날 45.86으로, 하루에 110.66% 뛰었습니다. 2019년 4월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이었습니다.
아시아 전체가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대만 가권지수는 1,807.21포인트, 8.35% 떨어진 19,830.88로 마감해 2만 선을 내줬습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는 9.75% 내렸습니다.
뒤늦게 열린 뉴욕은 오히려 덜 빠졌습니다. S&P 500이 160.23포인트, 3.0% 내린 5,186.33으로 마감했습니다. 다우는 1,033.99포인트, 2.6% 내린 38,703.27, 나스닥은 576.08포인트, 3.4% 내린 16,200.08이었습니다. 종목별로는 엔비디아가 6.7%, 애플이 4.8%, 알파벳이 4.6% 떨어졌습니다.
한국과 일본, 대만이 미국보다 두세 배 더 크게 맞았다는 점. 이 사실은 뒤에서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 — 그날의 비상 브레이크
그날 많은 투자자가 처음 본 두 단어가 있습니다.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 둘 다 시장이 지나치게 빨리 움직일 때 속도를 강제로 늦추는 장치지만, 작동 기준과 효과가 다릅니다. 사이드카는 선물 가격을, 서킷브레이커는 지수 자체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사이드카가 과속 차량 옆에 붙는 경고등이라면, 서킷브레이커는 아예 도로를 통제하는 조치에 가깝습니다.
사이드카는 코스피200 선물 가격이 전일 종가보다 5% 이상, 코스닥150 선물은 6% 이상 오르거나 내린 상태가 1분 이상 이어질 때 발동됩니다. 코스닥은 여기에 코스닥150 지수가 3% 이상 움직여야 한다는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발동되면 프로그램 매매의 호가 효력이 5분간 멈춥니다. 사람이 직접 내는 주문은 그대로 받고, 컴퓨터가 지수를 따라 자동으로 쏟아내는 주문만 잠깐 끊는 방식입니다. 하루 한 번만 발동되고, 장 종료 40분 전 이후에는 발동하지 않습니다.
서킷브레이커는 훨씬 센 장치입니다. 지수가 전일 종가보다 8% 이상 떨어진 상태가 1분 이상 이어지면 1단계가 발동됩니다. 모든 종목의 매매가 20분간 멈추고, 이후 10분간 동시호가로 거래가 재개됩니다. 15% 이상이면 2단계, 20% 이상이면 3단계이고, 3단계에서는 그날 장이 그대로 끝납니다.
1998년 도입된 이 제도가 코스피에서 쓰인 것은 2024년 8월 5일까지 여섯 번뿐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출렁임이 큰 코스닥에서는 그날이 열 번째였습니다.
당국도 장중에 움직였습니다. 그날 아침 기획재정부 주도로 관계기관 합동 점검 회의가 열려 24시간 모니터링 체제와 비상계획 대응 방침을 확인했습니다. 장이 끝난 오후 4시 30분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가 긴급 시장점검회의를 열었습니다.
당국은 낙폭이 과도하다고 평가하며 지나친 불안 심리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냈습니다. 증권업계에서는 코로나19 때처럼 반대매매, 즉 빚으로 산 주식을 증권사가 강제로 처분하는 일을 미뤄 달라는 요청이 나왔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런 조치가 필요해지기 전에 시장이 먼저 방향을 틀었습니다.
0.15%포인트가 세계를 흔든 이유 — 레버리지와 마진콜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죠. 0.15%포인트가 어떻게 이런 일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답은 금리의 크기가 아니라, 그 금리 위에 얹혀 있던 빚의 크기에 있습니다.
캐리 트레이드는 이자 차이에서 나오는 얇은 수익을 레버리지, 즉 빚으로 두껍게 만드는 장사입니다. 연 4%짜리 거래에 열 배를 걸면 연 40%가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열 배를 걸었습니다. 문제는 지렛대가 반대로 움직이면 손실도 똑같은 비율로 커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마진콜'이라는 장치가 붙습니다. 빌린 돈으로 거래하는 쪽은 담보를 맡기는데, 손실이 커져 담보 비율이 기준 아래로 내려가면 돈을 더 넣으라는 요구를 받습니다. 그게 마진콜입니다. 기한 안에 돈을 채우지 못하면 포지션은 강제로 청산됩니다.
중요한 건 이 요구가 손실이 난 그 거래에만 날아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급히 돈을 구해야 하는 쪽은, 가장 쉽게 팔리는 자산부터 팝니다.
그래서 엔화 때문에 생긴 마진콜이 한국 반도체주를 팔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엔화를 빌려 미국 기술주와 신흥국 주식에 넣어 둔 쪽은, 엔화가 강해져 생긴 구멍을 메우려고 자기 포트폴리오에서 잘 팔리는 자산을 내다 팝니다. 그 목록에 코스피 대형주가 들어 있었습니다.
2024년 상반기 한국 증시는 외국인 수급과 반도체·AI 테마에 크게 기대 있었습니다. 이런 시장은 급하게 돈이 필요한 투자자에게 현금인출기처럼 쓰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곳과 피해를 본 곳이 달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BIS는 사태 직후 보고서에서 이 과정을 '경기순응적 디레버리징'이라고 불렀습니다. 빚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시장의 흔들림을 키우는 현상입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변동성이 커지고, 변동성이 커지면 거래소와 증권사가 요구하는 담보가 늘어납니다. 담보를 맞추려면 또 팔아야 하고, 팔면 가격이 더 떨어집니다.
포지션을 줄이려는 각자의 합리적인 행동이 모여 시장 전체를 더 위험하게 만드는 셈입니다. BIS는 이번에는 시장 기능 자체가 마비되는 사태는 피했지만, 이런 일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구조적 특징은 여전히 정책 과제로 남는다고 적었습니다.
VIX 65, 그 숫자는 진짜 공포였을까
그날의 공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 준 숫자는 VIX였습니다. VIX는 S&P 500 옵션 가격에서 거꾸로 계산해 낸 변동성 지표로, 시장이 앞으로 한 달 동안 얼마나 출렁일 것으로 보는지를 숫자로 바꾼 것입니다. 보통 15 전후에서 움직이고, 20을 넘으면 불안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8월 2일 종가는 23.39였습니다. 그런데 8월 5일 미국 정규장이 열리기 전, 이 숫자가 65.73까지 치솟았습니다.
65는 평범한 숫자가 아닙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충격을 빼면, 전 기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장중 수치였습니다. 참고로 2008년 10월 24일 장중 최고는 89.53, 2020년 3월 16일 종가는 역대 최고인 82.69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VIX의 종가는 38.57이었습니다. 장중 최고치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죠. 하루 안에 65에서 38로 내려왔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었습니다.
BIS는 이 간극을 따로 들여다봤습니다. 결론은 65라는 숫자의 상당 부분이 실제 거래가 아니라 호가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VIX는 체결가가 아니라 사겠다는 값(매수 호가)과 팔겠다는 값(매도 호가)의 중간값으로 계산됩니다. 정규장이 열리기 전에는 거래가 거의 없고, 그날 호가를 내던 딜러들은 한쪽으로 쏠린 주문 앞에서 두 값의 간격을 크게 벌렸습니다.
외가격 풋옵션, 즉 지금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 가운데 일부는 호가 간격이 평소 중간값의 25% 수준에서 80% 넘게까지 벌어졌습니다. 평소의 열 배까지 벌어진 종목도 있었습니다.
VIX 계산식은 행사가격이 낮은 옵션에 큰 가중치를 줍니다. 그래서 이렇게 벌어진 호가가 지수를 크게 밀어 올렸습니다. BIS는 그날 급등의 86% 정도가 깊은 외가격 풋옵션에서 나왔다고 분석했습니다.
당시 딜러들은 30만 계약, 명목으로 약 1,600억 달러어치 풋옵션을 팔아 둔 상태였고, 그 부담 때문에 호가를 보수적으로 벌렸습니다. 정규장이 열려 거래량이 들어오자 호가 간격이 좁아졌고 VIX도 빠르게 내려왔습니다. 공포가 가짜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그 숫자를 그대로 공포의 크기로 읽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남았습니다.
하루 만의 반등, 그리고 남은 상처
가장 혼란스러웠던 것은 그다음 날이었습니다. 8월 6일 화요일 오전 9시 6분, 코스피와 코스닥에 동시에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습니다. 이번에는 위쪽이었습니다. 코스피200 선물이 전일 종가 330.45에서 347.20으로 5.06% 올랐고, 코스닥150 선물은 1,136.00에서 1,226.80으로 7.99% 뛰었습니다.
매도 사이드카가 걸린 바로 다음 날 매수 사이드카가 걸린 것입니다. 매수 사이드카 자체도 약 4년 2개월 만이었습니다. 하루 사이 같은 장치가 정반대 방향으로 작동한 셈입니다.
그날 코스피는 80.60포인트, 3.30% 오른 2,522.15로 마감했습니다. 코스닥은 41.59포인트, 6.02% 오른 732.87이었습니다. 전날 폭락분의 3분의 1 정도를 하루 만에 되찾은 셈입니다.
일본은 더 극적이었습니다. 닛케이225는 10.23% 오른 34,675.46으로 마감했습니다. 포인트 기준 역대 최대 상승이었고, 상승률로는 2008년 10월 이후 최고였습니다. 토픽스도 9.3% 올랐습니다.
반등이 시작되자 빚으로 산 주식의 뒷정리가 드러났습니다.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산 주식의 규모, 즉 신용융자 잔고는 8월 6일 19조 554억 원에서 7일 17조 7,191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하루에 1조 3,363억 원이 사라진 것으로, 당시 하루 기준 역대 최대 감소였습니다. 8일에는 17조 1,268억 원까지 내려가 그해 최저치를 찍었습니다.
반대매매 금액은 6일 433억 원으로 그해 최대치를 기록한 뒤, 7일 214억 원, 8일 130억 원으로 줄었습니다. 지수는 돌아섰지만, 빚을 내 들어간 투자자 상당수는 이미 포지션을 잃은 뒤였다는 뜻입니다.
이 사건의 가장 불친절한 얼굴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폭락은 하루였지만, 그 하루를 레버리지로 버티지 못한 사람에게는 되돌릴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수는 몇 주 안에 상당 부분 회복됐습니다. 하지만 8월 5일 오후에 강제로 정리된 계좌는 그 회복에 끼지 못했습니다.
급락 자체보다 레버리지가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방향을 맞혔느냐가 아니라, 버틸 수 있었느냐가 결과를 갈랐습니다.
“시장이 불안할 때는 금리를 올리지 않습니다”
시장을 실제로 진정시킨 것은 정책이 아니라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8월 7일 수요일, 일본은행 우치다 신이치 부총재가 공개 강연에 나섰습니다. 금융시장이 불안정할 때는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그는 당분간 지금 수준의 금융완화를 확실히 이어 가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최근의 주가 변동이 통화정책 운영의 핵심 변수라고 했고, 엔화 약세가 되돌려지는 흐름 역시 정책 운영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습니다.
일주일 전 금리를 올린 중앙은행의 2인자가, 추가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사실상 공개 선언한 셈입니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습니다. 강해지던 엔화가 되돌려졌고, 일본 주식은 올랐습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를 서둘러 되감을 이유 하나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다시 내린 것도, 돈을 푼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뀐 것은 말의 온도뿐이었습니다.
이 장면을 두고는 평가가 갈렸습니다. 한쪽에서는 중앙은행이 시장 변동에 너무 빨리 굴복했다고 봤습니다. 물가를 목표로 삼아야 할 기관이 주가를 보고 정책을 조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다른 쪽에서는 금융시장이 망가지면 실물경제도 다치니 정상적인 위기 관리였다고 봤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 발언이 2024년 8월의 불을 끈 것은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면 이 일이 남긴 가장 실용적인 정보는 따로 있습니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일본은행의 말 한마디에 그만큼 예민하다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건 0.25%라는 지금의 금리 수준이 아니라, 앞으로 어디까지 올릴지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기대가 바뀌면 수조 원대 포지션이 며칠 안에 움직입니다.
그 뒤로 전 세계 트레이더들은 일본은행 간부들의 발언을 미국 연준만큼이나 열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2년 뒤 — 2026년의 엔화와 엔 캐리
일본은행은 그 뒤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4년 7월 0.25%에서 출발한 금리는 단계적으로 올라 2026년 1월에는 0.75%였습니다. 같은 해 6월 1.00%가 됐고, 9월 18일에는 1.25%로 다시 0.25%포인트 올랐습니다.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가 아니었습니다. 금융정책결정회의 표결은 9명 가운데 7명 찬성, 2명 반대. 1.25%는 1995년 이후 31년 만의 최고 수준입니다. 일본은 이제 더 이상 제로금리 국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엔화는 강해졌을까요. 정반대였습니다. 2026년 7월 말 달러당 엔화는 163엔을 넘겨 1986년 12월 이후 가장 약한 수준까지 갔습니다. 2024년 8월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렸던 141~143엔대와 비교하면 훨씬 약해진 것입니다. 2026년 10월 중순 환율은 158엔 안팎에서 움직였습니다.
금리를 네 배 넘게 올린 나라의 통화가 2년 전보다 더 싸진 것. 교과서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입니다.
이유는 금리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데 있습니다. 미국 연준은 2026년 9월 기준금리를 3.75~4.00%로 올렸습니다. 일본이 1.25%까지 올라와도 격차는 2.5%포인트 넘게 남습니다. 여기에 일본의 확장 재정 기조와 고유가가 겹쳐 엔화 수요를 눌렀습니다.
금리 인상 발표 직후 오히려 엔화가 약해지는 장면도 되풀이됐습니다. 시장이 인상 폭과 속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외환당국의 대응은 2024년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2026년 7월 31일부터 8월 1일 사이,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엔화를 사들이는 개입을 거듭했습니다. 미국 재무부도 뉴욕 연방준비은행을 통해 유로를 팔고 엔화를 사면서 힘을 보탰습니다.
미일 공동 개입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처음이었고, 엔화를 함께 사들이는 방향의 공동 개입은 1998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개입 직후 환율은 156엔대로 돌아왔습니다. 한 달 사이 일본 재무성이 쏟아부은 금액은 15조 엔을 넘겨, 역대 최대 규모로 집계됐습니다.
그래도 엔 캐리 포지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26년 중반 미국 CFTC(상품선물거래위원회) 집계에서, 레버리지 펀드의 엔화 순매도 포지션이 2007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다시 불어났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2024년 8월에 청산된 포지션보다 더 크다는 평가도 함께였습니다.
그 뒤 9월 금리 인상과 개입을 거치며 이 포지션이 절반 넘게 줄었다는 집계도 나왔지만, 남은 규모 역시 여전히 큽니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시장에 쌓인 엔화 매도 잔고가 워낙 방대해, 금리 차가 좁혀지는 과정에서 청산 압력이 되풀이해 나타날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남은 논쟁 — 방아쇠는 정말 엔 캐리였나
2년이 지난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은 질문이 있습니다. 2024년 8월 5일의 폭락을 만든 것이 정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었느냐는 것입니다.
같은 시기에 세 가지 뉴스가 한꺼번에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미국 고용지표의 악화, 그리고 그 전부터 진행되던 AI 관련주 조정. 세 사건이 나흘 안에 겹쳤으니, 어느 것이 얼마만큼의 몫을 차지했는지 가려내기가 어렵습니다.
엔 캐리가 주범이라고 보는 쪽의 근거는 피해의 분포입니다.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핵심이었다면 미국 주식이 가장 많이 빠졌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날 S&P 500은 3.0% 내리는 데 그쳤습니다.
같은 날 닛케이는 12.40%, 코스닥은 11.30% 빠졌습니다. 코스피는 8.77%, 대만 가권은 8.35%였습니다. 반면 세계 지수인 MSCI 전세계지수는 3.4%, 영국 FTSE 전종목지수는 2.2% 하락이었습니다.
레버리지가 몰려 있던 아시아 시장과 모멘텀 종목, 소형주가 유난히 더 맞았다는 것. 이는 경기 전망보다는 포지션 청산에 가까운 패턴입니다.
반대쪽 근거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락의 출발점은 분명 8월 2일 미국 고용지표였고, 미국 기술주는 그 전부터 2분기 실적 발표 이후 조정 국면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엔 캐리 청산이 그렇게 결정적이었다면, 우치다 부총재의 말 한마디로 며칠 만에 상당 부분 되돌려진 것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시장은 8월 중순 이후 빠르게 안정됐고, 미국 증시는 그달을 플러스로 마쳤습니다. '레버리지로 증폭된 기술적 사건'이었다는 해석이 여기서 나옵니다.
규모를 가늠하려는 시도도 엇갈렸습니다. JP모건의 외환 전략 담당자는 8월 6일, 투기적 영역에서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50~60% 정도 진행됐을 뿐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그 뒤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중간 어딘가에 있습니다. 미국 고용지표가 방아쇠를 당겼고, 엔 캐리 청산이 그 충격을 몇 배로 키웠으며, 8월의 얇은 유동성과 휴가철이 증폭률을 더 키웠다는 것입니다. 원인과 전달 경로를 나눠서 보는 설명 방식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2024년 8월 5일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평소라면 하루 1~2% 하락으로 끝났을 뉴스가 레버리지라는 증폭기를 통과하면 어떤 숫자가 되는지 보여 준 실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증폭기는 지금도 꺼져 있지 않습니다.
멈춰 선 20분이 남긴 것
2024년 8월 5일이 한국 투자자에게 남긴 첫 번째 사실은 불편합니다. 내가 가진 종목의 실적이나 한국 경제의 체력과 아무 상관 없는 이유로, 내 계좌가 하루에 10% 넘게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날 코스닥에서만 1,633개 종목이 내렸습니다. 종목을 잘 골랐는지와는 상관없는 하락이었습니다. 세계 어딘가에서 급하게 현금이 필요해진 투자자가 잘 팔리는 자산을 내놓는 순간, 한국 증시는 그 목록의 앞쪽에 있습니다.
레버리지에 대한 교훈도 있습니다. 지수는 몇 주 안에 상당 부분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신용융자 잔고는 8월 6일부터 8일 사이 1조 9,000억 원 넘게 줄었고, 반대매매는 6일에 그해 최대치를 찍었습니다. 강제로 정리된 계좌는 뒤이은 반등을 함께 누리지 못했습니다.
방향을 맞혔느냐가 아니라 버틸 수 있었느냐가 결과를 갈랐습니다. 이건 특정 전략이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버틸 수 없는 구조로 들어가면 판단이 맞아도 결과를 받아 들 수 없다는, 단순한 산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26년의 숫자들이 알려 주는 것도 있습니다. 일본 금리는 1.25%로 31년 만의 최고치가 됐지만 엔화는 2024년보다 더 약해졌고, 7월 말에는 163엔을 넘겨 미일 공동 개입까지 나왔습니다. 엔화 매도 포지션은 한때 2007년 이후 최대 규모로 다시 쌓였습니다.
2024년 8월에 한 번 터졌다고 해서 그 구조가 해체된 것은 아닙니다. 조건만 맞으면 언제든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상태로,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겸허함입니다. 2024년 7월 말,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다는 투자은행들 가운데 그 주말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정확히 내다본 곳은 없었습니다. 사태가 끝난 뒤에도 무너진 포지션의 크기를 두고 추정치가 수십 배까지 벌어졌습니다.
전문가들조차 크기를 모르는 변수가 내 계좌를 흔들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래서 어떤 하루가 와도 시장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자기 자리를 만들어 두는 것. 2024년 8월 5일 오후 2시 14분, 멈춰 섰던 그 20분이 가르쳐 준 것은 아마 그 정도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