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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조 달러로 버스도 못 탔던 나라

100,000,000,000,000. 2009년 1월 16일,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새로 내놓은 지폐에 적힌 숫자입니다. 100조 짐바브웨 달러. 영국 BBC는 이 지폐가 유통 첫날 미국 돈으로 약 30달러 가치였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이 지폐 한 장으로는 시내버스 요금조차 낼 수 없게 됐습니다.

짐바브웨 100조 달러 지폐 앞면
2009년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발행한 100조 짐바브웨 달러 지폐 앞면.짐바브웨 중앙은행 ·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공용

그보다 두 달 앞선 2008년 11월 중순, 짐바브웨에서 미국 1달러를 사려면 짐바브웨 달러 26억 2,198만 4,228달러가 필요했습니다. 끝자리까지 빼곡히 적힌 이 숫자는 어느 블로그의 과장이 아니라, 당시 기록으로 남은 환율입니다.

가게 계산대의 가격표는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새로 붙었습니다. 사람들은 월급을 받으면 은행 문을 나서자마자 무엇이든 사들였습니다. 돈을 손에 쥐고 있는 시간 자체가 손실이었으니까요.

짐바브웨 이야기가 경제사에서 거듭 인용되는 건 단지 숫자가 커서가 아닙니다. 한 나라의 돈이 종잇조각이 되는 과정이 어느 날 갑자기 터진 사고가 아니라, 10년 넘게 쌓인 선택의 결과였다는 점이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출발점은 2008년이 아니라, 11년 앞선 어느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네 시간

짐바브웨 달러가 무너진 날을 하나만 꼽으라면, 현지에서는 2008년이 아니라 1997년 11월 14일을 가리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날 짐바브웨 달러는 단 네 시간 만에 미국 달러 대비 가치의 72퍼센트 가까이를 잃었습니다. 같은 날 짐바브웨 증권거래소에서도 시가총액의 46퍼센트가 날아갔습니다. 현지 언론은 지금도 이날을 '검은 금요일'이라고 부릅니다.

방아쇠는 전쟁도, 외부 충격도 아니었습니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독립전쟁 참전용사 5만여 명에게 일시금을 주라고 재무부에 지시한 것, 그게 전부였습니다. 규모는 42억 짐바브웨 달러.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약 3퍼센트에 해당하는 돈이었습니다. 예산에 없던 지출이었고, 그 돈을 어디서 마련할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습니다.

시장은 그 빈칸을 스스로 채웠습니다. 세금으로 메울 수 없는 지출을 정부가 정했다면, 결국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메울 것이라고 본 겁니다. 중앙은행은 가진 외화를 풀어 환율을 지키려 했지만 동원할 수 있었던 돈은 1,500만 달러 수준이었고, 며칠 만에 밀려났습니다.

통화의 붕괴는 대개 이렇게 시작됩니다. 요란한 사건이 아니라,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조용한 계산에서.

농장이 사라지고, 인쇄기가 돌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부터 짐바브웨는 급진적인 토지 재분배에 들어갔고, 2000년대 초에는 그 속도가 한층 빨라졌습니다. 담배와 곡물을 수출하던 대규모 상업 농장들이 짧은 기간에 몰수되고 쪼개졌습니다.

문제는 농업이 그저 여러 산업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농업은 짐바브웨가 외화를 벌어들이는 가장 큰 창구였습니다. 동시에 농장과 농지는 은행이 돈을 빌려줄 때 담보로 잡는 자산이기도 했습니다.

수출이 줄자 외화가 말랐고, 담보 가치가 흔들리자 은행 대출이 얼어붙었습니다. 여기에 1998년부터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에 병력을 보내면서 군사비까지 불어났습니다. 들어오는 세금은 줄고 나갈 돈은 늘어나는 날들이 몇 해 동안 이어졌습니다.

이때 정부가 꺼내 든 방법이 이른바 '적자의 화폐화'입니다. 쉽게 말해 정부가 모자란 돈을 세금이나 국채로 마련하지 않고, 중앙은행이 새로 찍은 돈으로 메우는 방식입니다. 한두 번이면 응급처치로 끝나지만, 이것이 늘 쓰는 수단이 되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물가가 오르니 정부 지출이 늘고, 늘어난 지출을 또 찍어 낸 돈으로 메우는 고리가 완성되기 때문이죠.

정부는 물가를 통계가 아니라 명령으로 잡으려 했습니다. 2007년 6월 26일, 산업부 장관은 짐바브웨 안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절반으로 내리라고 지시했습니다. 따르지 않은 상인 1,300명 이상이 체포됐습니다.

결과는 짐작대로였습니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값에 물건을 팔 수 없게 된 제조업체들이 생산을 멈췄고, 식용유와 소금 같은 기초 생필품부터 진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0을 지우는 나라

숫자가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중앙은행은 화폐 단위를 잘라 내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8월에 0을 세 개 지웠습니다. 2008년 7월 말에는 100억 짐바브웨 달러를 1달러로 바꾸는 개편을 발표하면서 0을 열 개 더 지웠습니다. 2009년 2월에는 한 번에 0을 열두 개 지웠습니다. 3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사라진 0이 모두 스물다섯 개입니다.

부채꼴로 펼쳐 놓은 짐바브웨 지폐 여러 장
세 번째 짐바브웨 달러 지폐 27종을 부채꼴로 펼친 컴퓨터 그래픽.짐바브웨 중앙은행(발행), Minoa(그래픽) · 퍼블릭 도메인 · 위키미디어 공용

그사이 중앙은행은 정식 지폐가 아닌 '무기명 수표'를 돈처럼 돌렸습니다. 2003년 9월 26일 5,000달러권으로 처음 나온 이 종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더 이상 돈이 아니게 되는 날짜, 즉 유효기간이 미리 인쇄돼 있었던 겁니다. 정식 지폐를 찍는 절차보다 수표를 내고 거둬들이는 절차가 훨씬 빨랐기 때문에 고른 방식이었습니다.

마지막 무기명 수표는 2008년 5월 15일에 나온 5억 달러권이었습니다. 유효기간은 그때마다 계속 늘어났고, 5,000달러권 하나만 해도 유효기간을 바꿔 네 번이나 다시 인쇄됐습니다.

0을 지우는 일은 물가를 잡는 일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10만 원짜리 물건의 가격표를 100원으로 고쳐 쓰는 것에 가깝죠. 원인을 그대로 둔 채 표기만 바꾸면, 지운 0은 머지않아 다시 붙습니다. 실제로 짐바브웨에서는 매번 몇 달 만에 같은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더 현실적인 벽은 엉뚱한 곳에 있었습니다. 짐바브웨 지폐에 쓰이는 특수 용지를 대던 곳은 독일 뮌헨의 지폐 인쇄 전문 기업 기제케운트데브리엔트였습니다. 2008년 6월 말, 독일 외무장관이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고, 회사는 유럽연합(EU)의 제재 요구를 이유로 공급을 끊었습니다. 돈을 찍어 내던 나라가, 돈을 찍을 종이를 구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24.7시간마다 두 배가 되는 물가

짐바브웨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공식 물가 상승률은 2008년 7월의 연 2억 3,100만 퍼센트였습니다. 그 뒤로는 통계 발표 자체가 멈췄습니다. 숫자를 모으는 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스티브 행키 교수는 남아 있는 가격 자료를 긁어모아 정점을 추정했습니다. 2008년 11월 14일, 연 89.7 섹스틸리언 퍼센트. 9 뒤에 0이 스물두 개 붙는 수치입니다.

이 숫자를 사람이 체감할 수 있는 말로 바꾸면 이렇습니다. 물가가 24.7시간마다 두 배가 됐습니다. 아침에 본 가격이 다음 날 아침이면 두 배가 되는 속도. 이런 세상에서는 월급을 한 달 단위로 받는다는 개념이 무의미해지고, 외상이나 할부 같은 거래는 아예 성립하지 않습니다.

당시 타임지는 짐바브웨에서 우유 한 파인트가 30억 짐바브웨 달러였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돈으로는 30센트 남짓. 구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같은 기사는 그 우유조차 매대에서 찾기 어려웠다고 적었습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의 진짜 얼굴은 비싼 물건이 아니라, 아예 없는 물건입니다.

주식시장이 문을 닫은 석 달

물가가 이렇게 뛰는 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피난처는 주식입니다. 돈의 가치가 녹아내리는 동안에도 기업 지분은 공장과 땅 같은 실물 자산에 연결돼 있으니, 현금을 쥐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보는 거죠.

2008년 짐바브웨 증권거래소의 주가지수는 천문학적으로 뛰어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상승은 기업이 돈을 더 벌어서 생긴 게 아니었습니다. 가격을 재는 자, 곧 화폐 단위가 무너져서 생긴 숫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피난처마저 문을 닫았습니다. 2008년 11월, 중앙은행이 부도 날 수 있는 수표로 주식을 사들이는 거래를 단속하면서 거래소가 폐쇄됐습니다. 다시 문을 연 것은 석 달 뒤인 2009년 2월 19일이었고, 이때부터 거래 통화가 미국 달러로 바뀌었습니다.

석 달 동안 투자자들이 겪은 일은 수익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가진 주식을 팔 방법 자체가 없었습니다. 당시 현지 애널리스트들은 거래 재개를 기다린 투자자 상당수가 주식을 사려는 쪽이 아니라, 팔아서 생활비를 마련하려는 쪽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거래가 다시 시작됐을 때, 살 사람들의 손에는 달러 현금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자국 화폐의 장례식

2009년 1월, 짐바브웨 정부는 미국 달러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 같은 외국 돈을 쓰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용했습니다. 이어 4월 12일 짐바브웨 달러의 효력을 정지시켰고, 그달 안에 화폐 발행 자체를 멈췄습니다.

자기 나라 돈을 포기하고 남의 나라 돈을 쓰는 '달러화'는 통화 주권을 내려놓는 것에 가까운 선택입니다. 그래도 이미 아무도 받지 않는 돈을 계속 찍는 것보다는 나은 길이었습니다.

공식 장례식은 6년 뒤에 치러졌습니다. 2015년 6월 15일부터 9월 30일까지, 중앙은행은 남아 있는 짐바브웨 달러 예금을 미국 달러로 바꿔 주는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통장에 17경 5,000조 짐바브웨 달러 이하가 남아 있던 사람은 금액과 상관없이 미국 돈 5달러를 받았습니다. 그보다 많은 금액에는 3경 5,000조 짐바브웨 달러당 1달러라는 환율이 적용됐습니다. 중앙은행 총재는 이것이 '보상이 아니라 교환 절차'라고 설명했습니다.

장롱 속 현금에는 따로 기준이 붙었습니다. 2008년에 나온 지폐는 250조 짐바브웨 달러를 미국 1달러로, 액면에서 0을 열두 개 잘라 낸 2009년 지폐는 250짐바브웨 달러를 1달러로 계산했습니다. 한 사람이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50달러까지였고, 그 이상은 계좌로 들어갔습니다.

수십 년 모은 저축이 지폐 다발째 몇 달러로 바뀌는 경험. 한 나라 국민 전체가 같은 해에 그 일을 겪었습니다.

그 뒤로도 짐바브웨는 자국 화폐를 되살리려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2019년 6월에는 새 짐바브웨 달러를 다시 도입했습니다. 2024년 4월 5일에는 외화와 금, 다이아몬드를 준비자산으로 삼은 ZiG라는 통화를 내놨습니다. 출발 당시 금 준비는 약 2.5톤, 1억 8,500만 달러 규모라고 발표됐습니다.

그러나 ZiG는 같은 해 9월 27일, 하루 만에 43퍼센트 평가절하됐습니다. 미국 1달러당 13.56이던 환율이 24.4로 바뀐 겁니다.

금을 쌓아 두고, 이름을 바꾸고, 발행 한도를 약속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 번 무너진 신뢰를 되찾는 일이 화폐를 새로 찍는 일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만 거듭 확인됐을 뿐입니다. 2008년을 직접 겪은 사람들 상당수가 지금도 생활비를 미국 달러로 주고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숫자가 오르는데 가난해지는 경험

경제학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기준선은 보통 '월간 물가 상승률 50퍼센트'로 잡습니다. 1956년 경제학자 필립 케이건이 제시한 기준으로, 한 달에 물가가 절반 넘게 오르기 시작하는 순간을 경계로 본 것입니다. 짐바브웨가 정점에서 보여 준 숫자 앞에서는 이 기준선이 비교 대상조차 되기 어렵습니다.

정말 눈여겨볼 것은 그사이 넘어선 문턱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1997년의 네 시간, 2007년의 가격 명령, 2008년의 통계 중단. 하나하나가 돌아설 수 있었던 지점이었습니다.

짐바브웨에서 가장 자주 뽑아내는 교훈은 '돈을 함부로 찍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투자자의 자리에서 보면 더 손에 잡히는 대목이 둘 있습니다.

먼저, 숫자가 오른다고 가치가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2008년 짐바브웨 증시의 지수 상승률은 어떤 기준으로 봐도 세계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은 줄고 있었습니다. 수익률을 재는 단위 자체가 녹아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평소에는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또 하나, '언제든 팔 수 있다'는 전제는 늘 보장되지 않습니다. 석 달간 문을 닫은 거래소 앞에서 투자 판단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좋은 자산을 고르는 일과, 필요할 때 그 자산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뒤의 것은 평온한 시장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다가, 가장 필요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짐바브웨의 지폐들은 지금 수집가의 책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100조 달러 지폐는 액면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 거래되는 기념품이 됐습니다. 그 지폐가 기념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더 이상 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만드는 것은 종이에 적힌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를 지키겠다는 약속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 버스표 한 장 값도 못 되는 100조 달러 지폐보다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전시물은 드뭅니다.